“문화와 역사의 집약체 말라카”

동남아시아 여행은 익숙함과 새로운 신비함이 공존하는 여행지 같다. 같은 아시아권이지만 전혀 다른 문화와 생활, 그리고 인종의 모습까지. 그래서 멀지않고 가까운 곳임에도 이곳에 오면 나는 어김없는 이방인이 된다. 그중에서도 말레이시아 그곳에 작은 도시인 말라카의 첫인상은 후덥지근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 그리고 쿠알라룸푸르 대도시의 모습과는 달리 한적한 시골의 모습 등이 생김새도 피부색도 다른 필자를 철저하게 낯선 이방인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행기고가 강일모 kang1mo@nate.com

 

▲ 종커스트리트

말라카는 말레이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말라카해협에 속한다. 말라카 주 주도로 말라카 강 어귀에 있으며 강의 좌편에는 세인트폴 언덕이 솟아 있는데 이 언덕위에는 유서 깊은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말라카는 한때 해상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14세기에 수마트라섬에서 온 파라메스바라가 이곳을 중심으로 이슬람 왕국을 건설하였으며 그 지리적 조건으로 동서무역의 중계지로 번창하였다. 1511년 아시아에 진출한 포르투갈에 의해 왕국이 멸망하고 아시아 최초의 유럽식민지가 되어 향료 무역과 그리스도교의 선교 기지로 삼았다. 1641년 네덜란드가 침략해 빼앗아 지배하였고 1824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렇듯 한때 많은 나라들의 무역의 교두보가 되었던 말라카. 지금은 그 찬란했던 시대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간직한 다양한 나라의 모습들, 그리고 그 문화를 하나로 다시 말라카만의 문화로 만들어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신선한 낯설음, 말라카
쿠알라룸푸르에서 1박2일의 일정을 마친 우리는 다음 여행지인 말라카로 가기위해 우리나라로 치면 남부 터미널격인 TBS로 향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TBS로 가기 위해서는 KL센트럴역에서 ER선인 KLIA Transit를 타고 반드르타식 셀라탄역에 내리면 TBS와 연결이 되어있다. TBS에서 버스로 싱가폴도 갈 수 있으니 다음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폴로 가는 여행도 해 볼 생각이다.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자 어느새 도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울창한 밀림과도 같은 숲이 펼쳐졌다. 그와 함께 해가 쨍하고 나다가도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알 수 없는 날씨가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점점 말라카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라카의 첫인상에서는 한적함과 낯설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당연히 외국이고 처음 오는 여행지는 낯설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세계 어디를 가도 금방 적응을 하였던 그동안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그 낯설음은 상당히 신선한 느낌이었다. 말라카는 앞서 말했듯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곳이고 중국의 공주들이 시집을 오는 나라 중 하나였기 때문에 다양한 유럽의 문화와 함께 우리와 비슷한 동양인의 모습도 찾아 볼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문화와 역사의 집약체 같은 지역이다. 실제로 거리를 가다보면 동남아시아인들 외에도 여러 인종을 볼 수 있고 그중에도 이 작은 도시에 차이나타운이 있어 중국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여러 나라의 문화와 인종을 바라보면서 이곳이 주는 낯선 느낌이 이번엔 어떤 여행을 선물할지 기대에 부풀었다. 말라카는 그동안 국내에는 여행정보가 거의 없어 가장 크고 오래된 호텔중 하나인 에콰토리얼호텔로 숙소를 정했다. 에콰토리얼호텔은 1912년에 지어진 오래된 호텔로 작은 도시의 호텔이 그러하듯이 대단한 규모는 아니지만 오랜 역사와 그 지역만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호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든 음식에 대한 거부감 없이 잘 먹는 편이지만 더위에 지쳐서인지 친근한 맛의 음식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에콰토리얼호텔에 있는 페라나칸 레스토랑인 세리 페라나칸으로 향했다.‘페라나칸’이라는 말은 중국인 남성과 말레이시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말로써 남성은‘바바’, 여성은‘논야’라 부르며 그 외에도 인도네시아, 태국,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문화가 가미되었다고 한다. 세리 페라나칸은 페라나칸 요리가 나오는 레스토랑으로 중국식 말레이시아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먹는 중국음식과 모양새도 다르지 않고 약간의 독특한 향신료 맛이 날 뿐이었다. 특히 이슬람국가이다 보니 닭요리나 해산물 요리가 많았는데 낯선 땅의 엄청난 더위에 지쳐있었기에 우리에게 조금은 친숙한 페라나칸 요리가 필자에겐 너무나 고마울 뿐이었다.

말라카 운송수단 트라이쇼 & 전망대 타워 타밍사리타워
식사를 마치고 시내투어를 위해 호텔을 나오자 호텔 앞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트라이쇼가 대기 중이었다. 트라이쇼는 우리나라의 삼륜자전거와 비슷하다. 세 바퀴를 가진 자전거 뒤에 의자를 놓고 화려하게 장식을 한 채 주요 관광지를 돈다. 말라카에 온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타볼만한 운송수단이다. 필자는 다른 사람보다 건장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타기가 꺼려졌는데 그때 한 건장한 아저씨께서 오셔서 타도 고장나지 않을 테니 부담 가지지 말고 타 보기를 권했다. 처음 타라고 권유할 때만 해도 이 아저씨도 필자도 서로에게 이리 힘든 일이 될 줄 몰랐다. 트라이쇼는 호텔앞에서나 말라카 시내에서 어디서든 탈 수 있다. 다만 위치마다 조금씩 요금이 다르고 기본적으로 한 시간을 탑승하는 것으로 한다. 남자둘이 자전거를 타니 심심하기도 하고 어색해서 헛웃음만 지을 때쯤 네덜란드 광장의 오르막이 나타났고 트라이쇼를 운전하던 아저씨는 점점 힘들어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아저씨께 너무 죄송해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해져 갔다. 그 와중에도 말라카 시내곳곳에는 어딜 가도 가수 싸이의‘강남 스타일’이 흘러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곳곳에 음악으로 우리나라를 알린 싸이가 자랑스러웠고 필자 또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에 어개가 으쓱해질 무렵. 드디어 목적지인 타밍사리타워에 도착했다. 무거운 손님을 태우느라 평소보다 몇 배는 고생하셨을 아저씨에게 좀 더 많은 팁을 드렸더니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웃으시면서“코리아 굿!”을 외치고 떠나셨다. 타밍사리타워는 높이 110m에 원반형의 테이블이 천천히 돌면서 올라가는 형식인데 최고 80m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밑에서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푸른하늘에 하얀탑, 그리고 천천히 올라가는 원반형의 물체가 흡사 UFO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렇게 천천히 올라가다 놀이공원의 자이로드롭처럼 한번에 내려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필자의 바람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말라카에 사람들은 전부 이곳 타밍사리타워에 모여 있는 듯 긴 줄이 서있었는데 한국이었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이때 아니면 다시 언제 경험해 볼지 알 수 없기에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고 줄에 합류하였다. 어느 정도의 대기시간이 지나고 탑승할 차례가 되었고 천천히 올라가는 모습이 밖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리 내발이 지상과 멀어지는 모습에 약간은 긴장이 되었지만 360도로 천천히 회전하며 올라가면서 말라카 시내 전경이 한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긴장감은 이내 조금씩 사라졌다. 어느새 최고 높은 지점까지 올라가서 바라본 말라카의 모습은 색감이 예쁜 색종이로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놓은 작품처럼 아름다웠다. 멀리로는 바다가 보이고 그 근처에는 바다를 덮어 간척지로 땅을 만들고 세운 도시의 모습도 보였다. 멀지 않은 곳에는 뿌연 물이 흐르는 말라카강과 운하도 보였는데 저곳으로 세계 각국의 배들이 말라카를 찾았을 걸 생각하니 당시의 화려함에 대한 환상과 지금은 이렇게 작은 도시로 변해버린 안타까움이 함께 밀려들었다. 정상에서의 관람도 끝나고 이제 천천히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내가 탄 건 혹시 훅하고 내려가지 않을까 조마조마 했지만 역시나 혼자만의 상상으로 끝나고 말았다. 말레이시아 특유의 푸르고 맑은 하늘과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바다, 그리고 말라카를 둘러싸는 강과 운하 이 모든 것을 80m높이에서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 타밍사리타워. 밤에도 운행한다니 연인과 함께 말라카를 찾을 분들에겐 말라카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해주고 싶다.

말라카강에서의 유람, 리버크루즈
타밍사리타워에서 내려 세관전시관과 몇 개의 박물관을 관람하고 말라카 첫째 날 마지막 일정인 리버크루즈를 타러 갔다. 리버크루즈는 크루즈라고 보기보단 작은 배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 모양새가 흡사 일본여행 때 탔던 호리카와 유람선과 비슷했다. 총40명 정도 승선이 가능하며 운행시간은 40분에서 1시간정도라고 한다. 1400년대 항구중심도시였던 말라카는 해상교통의 요충지이며 동남아시아에서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인 도시였다고 한다. 그런 위치적 특성상 많은 외침을 받으며 오랜 시간 지배를 받았고, 그런 시간들이 말라카에 중요한 문화유산은 많이 남겼는데 말라카 리버크루즈를 타고 이동하면서 이들의 흔적을 쫓을 수 있었다. 리버크루즈가 출발하는 지점에는 강 주변으로 호텔과 주택들이 많았는데 바로 옆에 있던 멋진 건물은 셀랑고왕국의 소유인 호텔이라고 했다. 다음에 다시 말라카를 찾는다면 저 멋진 건물에 꼭 투숙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수심은 5미터 정도로 많이 깊은 편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어두운 강 색깔로 인해 수심을 알 수 없어 더 깊어 보이던 말라카 강. 후덥지근한 날씨였지만 배 앞머리에 탑승해 강을 가로지르며 튀어오는 물방울과 바람으로 더위를 조금 식힐 수 있었다. 강을 따라 어느 정도 올라 갔을 때 아주 거대한 물레방아가 보였는데 한때는 강물의 수심이 물레방아의 가장 높은 위치까지 올라왔었다고 한다. 지금은 수심이 낮아져 물레방아는 전시용으로 놓여있는데 그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마주 오는 배들과 훈훈하게 인사도 나누며 유유히 강을 거슬러 올라 가고 있을 때 배에 무언가 툭툭 부딪혀 오는 것이었다. 놀래서 내려다 보니 이구아나가 강을 헤엄치고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배를 타기 전 강에 이구아나가 산다는 말을 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선 애완동물 샵에서나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이라 직접 마주칠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주택가와 밀집한 이곳에 야생동물이 사람들과 어울려 유유히 살아가고 있었다. 한편 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중에는 주택가도 있지만 카페나 레스토랑도 있다. 건물들마다 독특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는데 익숙한 한자가 새겨진 건물부터 만두나 자장면같은 음식이나 과일 등이 그려진 건물 등 다양한 민족이 사는 곳인 만큼 민족의 특성을 나타내는 벽화들이 강을 따라 늘어선 건물마다 특징을 가지고 그려져 있어 벽화만 보고 강을 따라가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 다음날 이 길을 따라 직접 걸어도 보았는데 시간에 쫒기지 않고 아무도 아는 이 없는 이곳에 낯선 풍경, 낯선 사람들이 주는 설레임을 안고 걷는 느낌이 꽤나 좋았다. 걷다 지치면 카페에 들어가 차를 한잔 마셔도 좋고. 크루즈의 일정이 끝나갈 때쯤 강한바람과 비가 내려 우비로 갈아입어야 했으나 빗소리와 함께하는 크루즈 여행도 꽤나 낭만적이었다.

말라카 차이나타운, 종커스트리트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세계 어디를 가도 차이나타운은 있다’고 한다. 그만큼 세계 곳곳에 화교들이 진출해 있는데 말라카에도 역시 차이나타운인 종커스트리트가 있었다. 종커스트리트는 말라카에서도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으로 과일부터 꼬치구이 등 다양한 먹거리와 수제공예품, 잡화를 파는 노점들과 상점이 즐비한 거리이다. 거리에 들어서면서 처음 본 것은 하늘에 떠있는 100m는 넘을 듯한 커다란 용이었다. 그 용의 뒤로는 삼숙공이라고 적혀있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종커스트리트 명물인 첸돌로 유명한 가게이기도 하다. 첸돌은 말레이시아식 빙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1층과 2층은 기념품과 음식들을 파는 곳인데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을 시식 할 수 있었는데 아주 달콤한 화이트커피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필자는 이곳의 명물인 첸돌을 하나 주문하고 기다렸다. 곱게 간 얼음에 삶은 팥과 콩 종류인 듯한 재료가 올라가고 기다란 젤리가 올려져있다. 그 위에 설탕시럽과 연유, 코코넛 크림 등을 뿌려서 먹는데 달달하면서도 코코넛 크림의 부드러움이 혀에 착착 감겨왔다. 왜 말라카에 오면 첸돌을 먹으라고 하는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얼핏 재료만 보면 팥빙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지만 맛이 확연히 달라 국내에도 들어오면 반응이 뜨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첸돌을 먹고 나오자 다시 종커스트리트 거리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외국에서의 밤비는 불편함이 아닌 낭만과 운치를 더해주었다. 분위기에 취해 홀로 비오는 거리를 하염없이 걷다 포르투갈식 음식점에 들려 저녁을 먹었다. 전체적인 맛은 말레이시아식 음식과 별반 다르지 않아 말레이시아 음식이 포르투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인지 포르투갈이 말레이시아 영향을 받은 것인지 잠시 궁금해졌다. 기본적으로 커리와 밥을 주문하고 새우요리와 함께 말레이시아에서 정말 많이 먹었던 닭요리,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생선요리까지 거하게 먹고 타이거 맥주 몇 병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와 말라카에서 첫날을 마감했다.

말라카 시티투어
말라카 두 번째 날의 아침이 밝고 말라카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유적지들을 찾기로 했다. 거듭 말하지만 말라카는 말레이시아에서도 역사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그 나라들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는 도시이다. 또한 말레이시아 토착문화와 무역이 활발하던 지대라 외부의 침입이 많았고 그로인한 영향도 많이 받은 곳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아시안 문화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서구세력에 의한 유럽문화까지 혼재한곳이기에 그만큼 다양한 역사유적이 있는 곳이다. 둘째 날은 현지인들이 에이 파모사 요새라 부르는 산티아고 요새, 술탄팰리스, 세인트폴언덕과 그 위에 교회, 그리고 주변 박물관까지 가볼 요량이었다. 호텔을 나와 2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곳은 술탄팰리스. 이름처럼 왕이 살던 왕궁이라고 한다. 말레이시아 전통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끼워 맞춰 지은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1986년 옛 문헌을 토대로 새롭게 복원하여 지금은 문화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말레이 왕조시대 유물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다. 술탄팰리스를 나오면 바로 옆에는 산티아고 요새의 일부가 남아있는데 말레이시아 현지인들은 에이 파모사라고 부른다고 했다. 에이 파모사의 유래는‘파모사라는 포르투갈의 수호성인 성 야곱을 가리키는 산티아고’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1511년에 지어진 산티아고 요새는 한때 난공불락으로 그 위세를 떨쳤지만 네덜란드와 영국의 침략으로 많이 파손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당시 복원하여 사용하였으나 오랜 시간 관리가 되지 않아 현재는 정문만 남아있다. 성 곳곳에는 오래된 성곽의 흔적과 녹슬어 있는 철 조각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당시 요새의 위용을 자랑하듯 요새 앞에 커다란 대포들이 요새 앞을 지키고 있다. 요새 안으로 들어가면 연필로 직접 말라카의 명소들을 그려 판매하는데 한국에서 왔다하니 한국의 어느 만화가가 다녀 갔다며 그가 그린 그림도 보여주었다. 약간은 쓸쓸함이 남은 에이 파모사 요새를 지나 세인트폴 언덕으로 발길을 옮겼다. 세인트폴 언덕은 지대가 높아 한국의 한여름보다 더운 말레이시아 날씨에 올라가기엔 곤욕이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발길을 돌리기가 아쉬워 열심히 올라갔다. 언덕의 정상에 다다를때쯤 노점상이 하나있었는데 시원한 음료를 팔기에 하나사서 먹으려는 찰나 고양이 한 마리가 미동도 없이 누워있기에 당연히 인형인줄 알았는데 살아있는 녀석이라 소스라치게 놀랐다. 놀란 마음에 더위가 가라앉는듯 했다. 세인트 언덕위에 있는 세인트폴 교회가 있는데, 현재는 벽면만 남은 모양으로 말라카 여행 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1521년 포르투갈 사람들인 두아르떼, 코엘료에 의해 예배당으로 건축하였으나 이후 가톨릭을 박해하던 네덜란드와 영국군에 의해 파괴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와 영국의 지배를 받기 전에는 요새로 활용되어서 지붕에 포반 등을 위한 구멍을 설치한 흔적이 남아있다. 식민지가 되면서 귀족들의 묘소로 사용되었고 명칭도 세인트폴 교회로 바뀌게 되었다. 16세기 동남아시아에 포교활동을 하던 성 프란시스 사비에르가 죽어 중국에서 인도로 이장 하던 중 6개월간 머물렀던 곳이기도 한데 6개월간 안치하면서 시신이 부페하지않아 성지로 추앙받는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6개월간 안치되었던 시체는 인도의 고아 지방으로 이장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돛을 단 배로 이동을 해야 해서 바람과 물길을 기다리며 몇 달을 기다렸다고 한다. 세인트폴 교회 십자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십자가의 모양과 다른데 거기에 대한 독특한 이야기가 있다. 한 현지인이 바다로 나갔는데 파도가 너무 심해져서 돌아올 수 없게 되어 십자가를 바다에 넣고 기도를 하니 바다가 다시 고요해져서 돌아올 수 있었고 돌아온 후 해변을 걷다 게가 십자가를 물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자신이 기도하며 던진 십자가와 동일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게를 신성시하여 잡거나 먹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십자가 모양도 크랩 모양을 겸한 것이라고 했다. 교회건물을 나와 보면 사비에르 신부의 동상을 볼 수 있는데 오른손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말라카의 강이 말랐을 때 작업을 하다 나뭇가지가 떨어지면서 오른손이 절단되었다고 한다. 한편 언덕위에서 보면 탁 트인 말라카해협과 푸른 하늘이 한 폭의 명화처럼 펼쳐져있어 현지인들이 왜 세인트폴 언덕을 그렇게 추천했는지 알 수 있었다. 세인트폴언덕을 내려오면 스타더이스 라는 기념관이 있는데 이곳은 네덜란드 광장에 있는 네덜란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 중 가장오래 되고 커다란 건물로 1641~1660년 19년간 지어진 건물로 네덜란드 총독의 공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네덜란드제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현재는 말라카 왕국시절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까지 통치시절의 역사적 자료와 생활양식 등에 대한 전시를 하기위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왕의 전통의상부터 각 나라 군인들의 복장과 각종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당시의 오피스공간을 상상할 수 있게 실제크기의 사람모형을 전시를 하고 있다. 대형커튼에 줄을 달아 사람이 당겨서 움직이는 독특한 무늬의 대형부채가 기억에 남는다. 시대별로 다양한 전시품들이 있어 수준 높은 전시관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 광장의 시계탑, 크라이스트 처치와 더불어 대표적인 명소로 손꼽히며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말라카에서의 시티투어를 마지막으로 말라카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말레이시아 계획도시인 푸트라자야에 들렸다. 푸트라자야는 100%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말레이시아 행정도시로 이곳은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시 같은 새로운 행정도시로 탈바꿈중인 도시이다. 앞으로 말레이시아의 미래가 만들어질 도시라고 한다. 푸트라자야는 다른 나라의 좋은 사례들을 모아 만든 계획도시로 말레이시아 초대총리를 지닌 툰쿠 압둘 라만 푸트라의 이름에서 도시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도시건설에 총9조원이 투입되었으며 초기 건설당시에는 반대가 심했으나 지금은 많은 국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도시라고 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정부가 방문하여 크게 감탄하고 세종시 건설에 벤치마킹을 하였다고 한다. 광장에 내린 필자는 계단 아래로 내려가 유람선을 타고 인공호수를 따라 푸트르자야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었는데 푸트르자야에 있는 각종 기관들과 모스크들의 건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쿠알라룸루르에서 KL공항철도를 타면 15분정도면 도착할 수 있어 주로 관광객들은 낮에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쇼핑을 하고 저녁에 푸트라자야 야경을 보러 온다고 한다. 멋진 건물들이 많아서 야경도 기대되었지만 아쉽게도 다음기회로 미루고 유람선에 올랐다. 유람선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씨푸드레스토랑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씨푸드라는 이름으로 국내 씨푸드레스토랑을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해산물로 만든 튀김이나 스프, 밥, 같은 메뉴들이 전부였다. 그래도 마지막 말레이시아에서 식사이기에 정말 열심히 먹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향하였다. 이렇게 4박5일간의 말레이시아 여행을 안녕을 고했고 시간이 너무 짧음에 아쉬움과 아직 내가 봐야할 말레이시가 많음에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며 다음 방문을 약속하게 되었다. 가끔 여행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주는데 한동안 삶에 무료함을 느끼며 모든 일에 무력하던 필자가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에서 신선한 자극을 받아 향후 몇 년 후의 나의 달라진 모습을 그리며 의지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관광지 자체로도 멋진 나라이지만 말레이시아의 성장력이나 국민들의 의욕을 느껴보고 싶다면 삶에 새로운 활력이 필요한 분들에게 꼭 한번 방문해 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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