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문 순우

그가 손수 지은 커다란 창고 같은 집 문을 열자 문짝에 도르래가 달려있어 줄에 매달린 삼지창의 날이 주르륵 당겨 오르며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 같았다. 물건과 나누는 대화, 그게 예술이라 그는 말해주려 했나보다. 대문도 그가 직접 짜고 그림도 직접 그려 넣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분야를 탐구해왔는지 고정 관념의 벽을 깨고 질주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독특한 그만의 퓨전 유토피아 왕국이었다. 꿈과 현실의 중간쯤 되는 가상공간을 체험하는 듯 했다. 약 200㎡ 규모의 작업실 천장은 다층적이고 심층적인 구조로서, 그의 무의식 세계를 조형으로 펼쳐놓은 듯했다. 역시 한 인간 안에는 우주가 들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집이다. 옛것(7)과 새것(3)이 모여 이야기 넘치는 공간 ‘커다란 원룸’ 작은 침실과 암실,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벽이 없다. 침실은 침대 하나 들어가면 가득 차는 작은 공간이다. 어릴적 추억이 생각나는 복층구조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다락방이었다. 창밖으로 그가 직접 키우는 텃밭을 보니 어느새 편안한 휴식이 된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농사와 흙 고르기를 배운 뒤 자신이 먹을 것은 직접 공들여 재배해야 된다는 삶의 자세로 산다고 했다. 주방, 미니바, 음악 감상이나 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하나다. 베트남전 이후로 커다란 덩치에 걸맞게 8×10인치 대형 수제 카메라도 직접 만들고 사진은 아직도 디카가 아닌 아날로그 필림 원판을 쓰며, 그가 만든 암실에는 세상에 둘도 보기 힘든 인화시설까지 갖추고 사진 인화작업 또한 남의 손을 절대 빌리지 않는단다. “사람들은 주어진 물건만 쓰는데, 난 없으면 만들어서 써요 “예술가는 시대를 반영하는 사람이지. 폐기물이 가득 널린 시대라고 그런데 들여다보면 버릴 게 아무것도 없거든.” 그래서 그의 집 당호도 ‘고칠현삼’이다. “그게 가장 조화로운 비율이거든. 새 물건이 많으면 속돼서 못 써. 70%는 헌 물건으로 채워야 안정감이 생기지!” 이게 그의 인생관이고 예술철학이다. 그리고 천장 아래 매달린 수많은 와인잔 과 프라이팬들, 전혀 어지럽지 않다. 피자구이용 오븐도 이탈리아 피자를 제대로 굽고 싶어 그가 직접 만들었다. 칼 같은 질서를 유지하는 힘은 당연히 주인인 문 순우의 예민함과 부지런함 일 것이다. 문 순우의 작업실은 하나의 방이자 여러 개의 방이다. 방을 연결하는 문은 보이지 않지만 그는 열정이 흐르는 곳으로 움직인다. 무궁한 마음의 집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공간이동이다. 장르에서 장르로 이동하는 자유의 날갯짓이 그는 새장 속에서도 깃털을 바꾸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언젠가 비상할 날개 짓을 계속하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 걸리면 다 예술이 되는 것 같다. 뭐든지 거침없이 실행하는 용기와 자유가 부럽다. 두툼한 그의 손은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다. 테이블, 선반, 벽, 바닥, 조명, 장식, 오디오, 문, 벽걸이 어느 것 하나 남의 손을 거치지 않았다. 그가 직접 만든 실내 가구들과 소품들이 서로서로 사이좋게 늘어서 있다. 그림도 따로 캔버스가 없다. 버려진 라디에이터 철판 위에, 볼링장을 뜯어낸 판자 위에, 못 쓰는 타일 위에, 쓰고 버린 폴라로이드 필름 위에, 와인을 거르던 필터 위에, 헌 다리미판 위에 그냥 그린다.

문화부 고명진기자 
             
                
아티스트 문 순우 
예술적 기반은 음악이다
그의 모든 예술적 기반은 음악이고 소리는 자신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며,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듣는 것이라고 말한 만큼이나 저음에서 고음까지 다양한 음역대의 크고 작은 앤티크 스피커와 앰프들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약 60여개 정도 된다고 한다. 일부 스피커의 틀은 그가 손수 만들고 그림을 그려 넣은 것도 있다. 웨스트레이크오디오 TM-3, 가우스(gauss), JBL 등 브랜드도 다양하다. 구지 가격을 매기자면 1억5천 여 만원이 훌쩍 넘어서는 오디오 시스템 이라고 한다. 한때 오디오 평론도 했던 재즈 매니아 인 그는 독일 헝가리 폴란드 등을 유랑한 후 1990년대 중반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 한 일은 삼청터널로 넘어가는 길 옆의 좁은 골목에 위치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삼청동에 있는 작업실을 손수 개조해 보헤미안 은신처 같은 재즈클럽 ‘끌레’를 만들었다. 재즈 매니아나 예술인, 연극인들이 즐겨 찾는 문화공간으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하니, 문화예술가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한 셈이다. 지금은 그의 후배가 운영하며, 여전히 째즈 공연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혼을 끌어당기는 듯한 째즈가 그의 작업실 공간 안에 가득차 흐르는 것만 같았다. 재즈가 태어나면서 부터 세상의 코드가 바뀌었듯 예술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한다. 예술에서 역사성과 시대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의 예술도 삶도 직관적으로 변주가 가능한 재즈를 닮아 있었다고 보여진다.   

아티스트 문순우요리 
맛 과 멋이 있는 하나의 예술작품
문순우는 자신을 '인생 즐기며 사는 이'로 말한다. 나이 마흔에 유학 간 프랑스에서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깨 너머 배우고 스스로 공부해 익힌 게 전부다. 고급 요리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요리를 제대로 만들 수 없다는 지론에 따라 그는 특급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을 수없이 탐닉했었다. ‘이거다’ 싶은 음식을 발견하지 못했다. 문순우가 추구하는 맛의 세계는 “식은 뒤에도 원래 맛이 살아있는 요리, 그게 최상의 요리지요.” 조미료가 원재료의 맛을 가리지 않는 세계 담백한 와인처럼 꾸밈이 없는 시선이다. 음식을 그릇에 담을 때도 1인분의 양이 5온스(약 150g 정도)를 넘지 않는다. 약간 부족한 듯하지만 조금 더 먹었으면 할때 진짜 맛이 있는 거란다. 무엇보다 문 순우식 요리의 원칙은 저지방 다이어트식, 요즘 유행하는 웰빙 스타일이며 담백함이다. 그는 정식으로 요리를 배운 적은 없다. 그가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이유는 어디를 가나 화학 조미료 로 인한 천편 일률적인 똑같은 맛이라서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예술에서 역사성과 시대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듯이 요리도 역시, 문 순우식 요리가 담고 있는 코드가 요즘 시대성과 통한다. 소식(小食), 감성 자극, 행복, 컬러 테라피 세상에 단 한사람을 위한 음악을 선곡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재료를 구입해서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와인을 선별한 후 예쁜 식탁보를 깔고 촛불을 켜고 테이블을 아름답게 세팅하고 코스요리 까지 격(格)을 제대로 살리면서 만들어 내 오는 문 순우식 요리는 맛있고 멋있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요리를 만드는 데도 당위성이나 필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나 혼자만 맛있는 건 요리가 아니라고. 상대방을 파악하고 충분히 이해해서 만들어낸 음식이야 말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진짜 요리라고. 그는 지인들과 어울려 와인을 마시면서 시가를 피우고 지인들과 음식을 나누며 음악 듣는 게 행복하단다. 문순우 그의 인생이라는 접시에는 누구를 위한 요리가 어떤 음악과 함께 담겨져 문순우식 예술로 소화될까. 그의 요리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편안하면서도 격(格)을 놓치지 않는다. 자신의 요리를 ‘뒤가 편한 음식’이라고 말한다. 담백함과 밀도, 그 오묘한 맛과 멋의 경계를 느낄 즈음에 째즈가 그의 작업실 공간을 타고 진하게 흐른다. 사랑의 달콤함도, 떫은 미완성 같은 우리인생도, 꿈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쓰디쓴 좌절까지도 그는 또르르 소리 내어 돌려가며 와인 잔에 와인을 채워서 준다. 늘 웃을 수만 없는 우리 인생을 음미하는 시간을 내어 주고자 하는 그의 배려로 느껴진다. 와인의 달인 답게 와인 소개도 늘 잊지 않고 친철하게 덧붙인다. 
                       
전방위 아티스트 문 순우 
유목민 되어 떠돌다 (북만주-파리-원통-안성)
1986년 나이 마흔을 넘긴 문순우는 몇 군데 화랑에서 사진과 그림을 합성한 작품으로 초대전을 한다. 우즈벡 등 북만주로의 여행에서 사진과 다른 궤적을 발견하고 귀국 하자마자 문순우는 더 이상의 머뭇거림 없이 파리로의 유학길에 오른다. 그는 1990년대 초반 파리 근처에서 탱크 수리창을 개조해 집단 아틀리에를 만드는 일에 꼬박 1년을 투자했다. 1991년 12월 초 프랑스 국방성 소유의 Issy-les-moulineaux 시에 위치한 옛 탱크정비공장을 인수받아 작가들이 직접 내부를 수리해 46개의 아뜰리에를 만들고 한국인 작가 25명 및 21명의 다국적 작가들이 가입하여 총 46명의 예술가가 모여서 활동했다. 1990-1993 파리 시절 소나무 그룹과 맺은 인연은 지금도 단체전 등을 통해 이어오고 있다. 프랑스, 독일, 헝가리, 폴란드 등지를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 결과들을 가지고 “사진집 1”을 출간한다. 1994년 귀국 후 강원도 원통으로 옮겨 손수 집을 짓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나무를 깎고, 흙을 빚는 전방위 작업에 몰두한다. 2004 년 강원도 사람의 삶의 애환을 담은 사진 ‘무우 배추’로 성곡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하고 사진집2 를 발간한다. 일본의 제이트 포토(Zeit-foto) 화랑의 전속작가로 등록되는 기쁨을 갖게 된다. 계속해서 이듬해는 태풍 루사와 매미로 처참하게 망가진 자연과 산불로 훼손된 강원도의 산과 바다를 사진으로 찍는다. 2006년 서울과 조금 가까운 경기도 이천으로 작업실을 옮기고 문순우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재료에 도전한다. 폐라디에이터의 반짝이는 금속의 빛남과, 항공기 유도 깃발의 야광색에 매혹되어 힘든 노동의 시간을 보낸다. 2007년 경기도 안성으로 작업실을 옮긴 문순우는 현재까지 자기만의 색을 찾는 고된 작업을 하고 있다. 오랜 기다림으로 동과 철을 부식시켜 얻어진 그만의 빛나는 녹색과 갈색을 안료로 얹어 신화와 전설을 그린다. 2009년 뒷마당에는 배추와 허브 등 몇 가지 야채를 심고, 앞마당에는 엔젤 트럼펫과 고무통 속에서 연꽃이 만발했다. 사슴벌레 먹이를 사러 읍내 마트를 즐겁게 다니며, 가끔 그립던 사람이 오면 요리를 했다. 문순우의 요리에는 다양한 그의 삶의 맛이 베어있다. 쓴 맛, 단 맛, 신 맛, 짠 맛. 그리고 그가 떠돌아다닌 세상의 향기가 있다. 환갑을 넘긴 문순우는 자신의 존재를 열어 보인 이 모든 행위가 예술이며, 자신의 삶이 예술이라 당당하게 말한다. 2009년 12월 19일 대전 아주미술관에서 60여일간 회화, 사진, 도판화, 조각과 함께 요리와 음악까지 어우러지는 전시를 했다.

아티스트 문순우 미학  
투박한 야생성 
아티스트 문순우. 그는 한 가지 이름으로 불릴 수 없는 존재이다. 와인과 시가, 오디오와 음악을 향유한다. 회화, 사진, 조각, 설치, 도예, 드로잉, 건축, 목공예, 재즈연주, 오디오평론 등 다양한 예술 세계를 순례하며 변주가 가능한 째즈 처럼 장르를 넘나드는 맛과 멋을 아는 진정한 아티스트다. 누구나 자기 그릇만큼 담아내고 경험한 만큼 표현을 할 줄 한다.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는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 되는 걸 모토로 삼는 르네상스인에 가깝다. 일 직선 상에 놓인 수평으로 그는 늘 미완의 세계에 도전하고 실험한다. 그래서 그는  어디에도 매임이 없다. 언제나 떠나고 쉬는 자리에서 삶을 꾸린다. 그의 삶의 방식은 전형적인 유목민의 방식이다. 여기저기 돌아 다니면서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기술적으로 축적 되어 있는 그것을 펼쳐놓고 동물 식물 잘 기르며 누리고 산다. 그는 어떤 사유에서도 자유롭다. 문 순우의 미학은 인문학적 세련성 보다는 그 투박한 야생성에 있다. 우리는 저마다 멀리 떨어진 섬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고독하다. 그래서 그는 술을 마시고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의 육신과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생명력은 분출 직전의 용암 같은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이것이 그의 예술적 아우라이며 그에게서 느껴지는 포스이다. 그의 작품들이 어떤 질료 위에서 미학적인 완성을 이루든 모든 메시지들은 신화적인 발화의 범주에 놓인다. 신에 대한 인간적인 상상력과 지적 이미지를 얹어 문순우의 작품들 곳곳에 자리한 물고기의 이미지들, 새의 이미지들, 말의 이미지들, 여인의 이미지들은 모두 신화적 구성 요소들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계시의 양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궁극적으로는 사물을 재현하는 언어가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고 창조하는 언어인 것이다. 문순우의 깊고 넓은 가슴은 뷰파인더 없는 미학의 프리즘이다. 그는 세상 사물을 가슴으로 읽는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물들이 그의 가슴에 들어 순해진다는 것인데, 이는 마치 신전 앞에 선 순례자의 모습이다. 그는 평생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만 찾아 다녔다. 극도의 탐미주의다. 감관이 발달한 이들은 겉보기에 아무리 가난 속에 빠져 있어도 온갖 호사를 누릴 줄 안다. 월남전 참전 용사답게 용감한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며 “예술을 하려면 맛과 멋을 알아야지” 하며, 그는 최고의 가치를 알고 즐길 줄 아는 진정한 문화인이다. 그는 인생이란 나이가 들어가면 큰 잔을 조금 작은 잔으로 바꾸면 된다고 말한다. 오늘 이 순간에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누려가며 잘 살아내자는 얘기인 것 같다. 1,004개의 테라코타 천사들로 꾸며지는 거대한 설치 작업은 희노애락과 생로병사의 인간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정직한 노동의 고된 작업들을 통해 자신만의 에덴을 만들어냈다. 그의 기교보다는 원시의 힘이 수일하게 드러나는 그림들은 세세한 선들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폐라디에터의 거친 표면을 문질러 재료의 광물성 본질을 깨워 어떤 형상을 새길때 그것은 황무지를 갈아엎고 씨앗을 뿌리는 경작자의 노동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예술은 철저하게 본질로 직격하는 노동이다. 문순우의 예술가적 정체성은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과 만드는 인간(호모 파베르)의 사이에 걸쳐져 있다. 예술의 내면은 삶의 진실로부터 시작되었지 위장이나 허수로부터 오지 않았다. 그의 손은 부지런하다. 자신의 손가락을 펼 수 없을 정도로 작업에 몰두한다. 그는 의지 또한 강하고, 생각은 부드럽고, 표현은 분명하게, 그렇다고 양심이나 윤리를 버리는 어리석은 일에 끼어들진 않는다. 자신을 찌르기 위해 날선 검을 갈아 두지 않으면 작가의 길로 나서지 못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는 사물의 본능이 감탄임을 먼저 배운다. 예술가가 자연을 이해하는 능력을 얻지 못하면 화면 구성에 거짓과 과장이 들어가 작품의 감상에 혼선을 준다. 그는 무언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창조적 에덴의 본능이 소멸 될까봐 인간의 시간으로 주워진 삶 모두를 예술로 이해하려는 광대와 같다. 
                  
아티스트 문순우 작가 정신 
버려진 것들에 대한 예술적 생명창조였다      
문순우는 시대의 아픔을, 혹은 시대의 고뇌하는 인간을, 시대의 절망하는 인간을 표현하고 있다. 창세신화의 기본구조는 하늘과 땅과 물과 불이다. 그곳에 이상향, 에덴동산이 펼쳐지지만 인간의 자유의지 때문에 이상향을 잃게 되고, 그로부터 인류의 문명이 시작 되는 것이다. 인류 문명의 첫 경작자가 아브라함이며, 노역과 수고로움의 상징이다. 흙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이와 같은 창세 신화를 모티브로 한 것들이다. 문 순우의 작품 세계를 말하면서 에로티시즘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의 에로티시즘은 정신 에너지인 리비도에 바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의 모든 여자들은 나신이다. 나신의 여자들은 에덴에서 추방된 이브의 다양한 변주들이다. 이브는 문순우의 정신적 본향이고 생명력의 비약이며 창조적 진화의 추동력이다. 바람은 사랑이고 소통이고 생명이다. 아티스트 문순우 그를 바람이 닿는 나무라고 부르고 싶다. 문순우의 버려진 것들에 대한 생명 불어넣기는 생과 몰의 기로에 마지막 몸부림치는 부활이었다. 예술적 생명에 대한 창조는 사람들의 소외와 무관심으로 버려진 인간의 행위들에 대한 용서에 기반한다. 버려진 물체들이 예술의 모티브가 된다는 것 자신의 재능이 전방위 임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그는 캔버스나 유화 물감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흙과 쇠와 나무는 물론이거니와 현대 문명이 쓰고 버린 것들을 주저 없이 선택한다. 재화적 가치를 소진하여 버려진 것들조차 그의 손을 거치면 예술의 소재로 거듭난다. 이렇듯 그의 다재 다능은 다양한 재료들과 다양한 방법론적 시도가 만나면서 꽃피어난다. 그의 폐라디에이터 시리즈는 에코 아트(Eco Arts)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재료의 발견과 해석이라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다. 여기에 어떤 형상을 새겼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명이 쓰고 버린 폐자재의 재활용을 통해서도 훌륭한 예술이 탄생할 수 있음을 탐색한다는 점이다. 문명의 폐기물에 불과한 것들에 예술적 혼을 불어넣자 그것들은 마술처럼 예술로 살아난다. 어떤 예술에는 사회적 긴장이 전혀 없다. 어떤 예술은 간단한 상품처럼 내놓고 소비되기를 희망하면서 심지어 흥행만을 꿈꾼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팔리든 말든, 그는 그의 사진에서 사물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힘을 느낀다. 문순우는 혼자서, 자기 속에서, 자기 앞에 놓여져 있는 시간 속에서, 성실하게 자신과 대면하는 신중함을 본다. 일본의 세계적인 사진 수집회사 제이트 포토(Zeit-foto)가 문순우 작품을 컬렉션 한 것은 그의 흑백 사진에 담긴 무와 배추는 말라 비틀어진 형상이었다. 농심마저 떠나버린 흉물이었다. 고단한 농부의 땀방울과 텁텁한 한숨 소리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뷰 파인더를 버린 행위는 기교를 버리고 세인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만의 뚝심이다. 형식적인 틀을 벗고, 욕심도 놓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자신에게 충실한 작품이 완성되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무와 배추에서 생명의 울부짖음을 발견한 것이다. 세계 유명 작가의 작품만 수집하는 일본에 있는 제이트 포토(Ziet-foto) 가 주목하여 그의 작품이 수차례 콜렉션 되었다. 사진사에 나오는 유명한 사진가의 작품들만 약 30년 전부터 수집하여 온 세계에서 최고의 사진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사진 수집회사다. 강원도 산골의 갈라 터진 밭 귀퉁이에 쪼그리고 엎드려서 그는 땅 위에 죽어 널 부러진 배추와 무우(사진)를, 삶과 죽음이 버팅기고 있는 끈질긴 마지막 생명의 몸부림 그 처절함을 건조하게 담아냈다. 무엇을 찍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라고 그는 말한다. 버팅 기며 최선을 다해 살아내 온 그의 삶도 골골이 작품 속에 새겨져 드러난다 . 문 순우의 무와 배추(사진) 에는 몰락을 일으켜 세우는 생의 의지가 있고, 거듭 말하지만 문 순우는 애써서 사진 영상의 구도를 택하려 하지 않는다. 파인더를 보지 않고 손으로 들고 몸의 감각으로, 몸을 통한 눈으로만 대상으로 다가가는 그의 특이성이 담겨 있으므로, 작위적이거나 탐미만을 추구한 것이 아닌, 본질에 닿기 위해 의연한 태도로 일관한 작가의 숨결이 느껴진다. <NP>

작가약력
문순우 - 1946년 충남 아산생
개인전
1989 1회 사진전, 바탕골 미술관, 서울
1989 2회 사진전, 나우 갤러리, 서울
1990 3회 사진전, 타래 미술관, 서울
2002 신작전, 전갤러리, 서울
2002 3인3색전, 성곡미술관, 서울
단체전
1986-1993
나이 마흔을 넘긴 문순우는 몇 군데 화랑에서
사진과 그림을 합성한 작품으로 초대전을 한다.
우즈벡 등 북만주로의 여행에서 사진과 다른
궤적을 발견하고 귀국후 파리로 유학
파리 시절 소나무 그룹과 맺은 인연은 지금도 단체전등을 통해 이어옴.
프랑스, 독일, 헝가리, 폴란드 등지를 여행하며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 결과들을 가지고 <사진집 1>을 출간한다.

1991 4인전, 조선일보 미술관, 서울
1997 모노크롬 자연과 영혼전, 갤러리 아트빔, 서울
사진집
1994 문순우 사진집 1
1999 문순우 사진집 2
2004
강원도 사람의 삶의 애환을 담은 사진 ‘무우 배추’로
성곡 미술관 초대전후 “사진집 2” 발간
일본의 Zeit-foto 화랑의 전속작가로 등록
이듬해는 태풍 매미로 처참하게 망가진 자연과 산불로
훼손된 강원도의 산과 바다를 사진으로 찍음.

2009. 12월 19일 대전 아주미술관 - 60여일간
회화, 사진, 도판화, 조각과 함께 요리와 음악까지 어우러지는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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