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낙마 소식으로 돌아서는 민심, 청와대 인사시스템의 재정비가 시급히 요구된다”
현 정부의 인사 참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인수위 시절 김용준 총리후보자가 아들 병역문제 및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불거지자 자진사퇴한 데 이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최근에는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백지신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며 자진사퇴하는 해프닝을 겪었다. 게다가 여당 내에서도 끊임없이 자질부족이 제기됐던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버티기로 일관하다 지난 3월 22일 끝내 자진사퇴했다. 더욱이 성접대 의혹이 제기된 김학의 법무부 차관까지 하루 전날 전격 사퇴하면서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검증 시스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연이은 낙마 참사

황철주 전 중소기업 청장 내정자의 경우 벤처 1세대 출신 중소기업인 이라는 점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았다. 하지만 상황은 3일 만에 급변했다. 코스닥 상장기업인 주성엔지니어링 대표를 맡고 있는 황 전 내정자의 경우 695억 원 규모의 지분(25.45%)을 보유 중이다. 공직자윤리법 제14조 4항에 따르면, 재산공개 대상자 또는 금융위원회 소속 4급 이상 공무원의 경우, 본인 및 이해관계자 보유주식이 3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보유주식을 모두 매각하거나 금융기관에 백지 신탁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결국 황 철주 전 내정자가 중소기업청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회사 경영권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 김기식 의원은 19일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사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와 인사시스템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날 논평에서 “청와대의 수첩인사, 밀실인사로 인한 인사 실패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호도하고 있는 것”이라며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 사회가 애써 확립해 온 공직자윤리의 체계를 대폭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도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국방위 소속 여당 의원들 다수가 유보 입장을 보일 만큼 자질 논란이 거셌다. 무엇보다 무기거래업체인 유비엠텍 고문으로 활동한 전력은 국방 수장으로서 자질과 도덕성에 의구심을 낳았다. 김 후보자는 그 동안 의혹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장관직을 수행하는데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최근 해외 자원개발사 주식 보유 사실을 국회 인사청문회 보고에 누락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렸다.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경우는 지난 20여 년간 대기업 편에서 공정위와 국세청을 상대로 소송을 대리해온 전력이 문제로 야기됐다. 야권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며 “김앤장 출신 한만수 후보자가 위원장이 되면 공정거래 시장질서는 불가능해진다”고 우려했다. 세법 전문가로 알려진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2억 원 가량의 세금을 내지 않으려했다가 세무당국에 추징당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민주통합당 김영주 의원은 3월 20일 “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인사 청문 요청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 후보자가 약 1억 9700만원의 세금을 정상적으로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정거래법 상 공정거래위원장이 될 자격이 없고 도덕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 후보자인 만큼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개최할 이유가 없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한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언급했다. 3월 22일 취임식을 갖은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명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현 장관은 공직 퇴임 후 9년 만에 재산이 28억 원이 급증한 배경과 딸에게 20억 원대의 아파트를 물려주면서 대출금도 넘기는 방법으로 증여세 1억여 원을 절세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성접대 의혹으로 자진사퇴한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사회에 미친 여파는 컸다. 이미 경찰이 다른 고위 공직자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여야, 청와대 인사시스템의 재정비를 촉구
김학의 법무부 전 차관의 사퇴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새누리당도 청와대 인사시스템의 재정비를 촉구했다. 이상일 대변인은 3월 22일 오전 논평을 통해 “고위공직자를 포함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한 건설업자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의 중심인물인 법무차관이 사퇴했다”며 “의혹의 진위는 경찰의 수사를 통해 규명되겠지만 건설업자가 벌인 문란한 파티에 참석한 인사로 법무차관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국민의 눈에 더욱 한심하게 비친 것은 청와대의 허술한 인사 검증”이라며 “차관 인사에 앞서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었고 문제의 법무차관이 수사선상에 올라 있었는데도 검증 부실로 이 인물이 차관으로 발탁됐다”고 지적했다. 이 대변인은 또 “청와대에선 ‘본인이 부인하는 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또는 ‘경찰이 수사하는 걸 알았다면 본인이 차관직을 고사했어야 했다’는 등의 변명을 하고 있는데 그건 청와대 검증팀의 무능만 부각시킬 뿐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고 본다”고 일축했다. 민주통합당 지도부도 같은 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의 성접대 의혹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를 집중 공격했다.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오전에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는 현 정부 인사와 관련된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김 전 차관의 사퇴가 현 정부 들어 10번째 사퇴”라며 “인사가 만사(萬事)인데 현 정부 인사는 망사(亡事)가 됐다”고 비난했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한층 강경한 목소리를 내비췄다. 박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청문회가 필요 없는 차관 인사에 대해선 대충 넘어간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어 “초대형 부실검증 사고에 대해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퇴하는 게 박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설훈 비대위원도 “박 대통령이 본인의 인사 ‘수첩’을 빨리 아궁이에 넣지 않으면 국민의 사랑이 떠나갈 것”이라고 질타했다. 새누리당의 쇄신파 김용태 의원은 3월 22일 <폴리뉴스> 와의 전화통화에서 “대통령이 없었던 일로 하고 다른 사람 내정하면 되지 않겠느냐 할 수 있지만 유감 표명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검토하기는 해야 할 것이다”며 박근혜 정부의 계속된 ‘인사 참사’는 박 대통령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인사시스템 담당자들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인사시스템을 잘 들여다 봐야한다”며 “만약 논란이 됐던 것들을 처음에 인사시스템에서 걸러내지 못했으면 시스템에 엄청난 결함이 있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김용태 의원은 “문제점들을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 것이 아니고 걸려들었는데 판단하는 사람들이 이 정도는 언론인이나 국민들한테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니냐 생각했다면 인사 담당자들의 눈높이가 국민들과 언론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이어 “결국 인사 담당자들이 안일하게 판단한 것”이라며 “인사 담당자들이 눈높이를 높여서 국민과 언론에게 내놓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물론 잘못된 인사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이 지지만, 인사 검증팀에서 확실하게 걸려든 문제에 대해서‘지금 국민, 언론 눈높이에는 이것은 정말 통과하면 안 된다’라고 강력하게 대통령에게 건의를 하고 관철을 시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이 막바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게다가 청문회에서 성의 없는 답변으로 여야 모두에게서 질타를 받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내정자를 청와대가 그대로 임명할 경우 남은 인사청문회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국정 장악력 약화
야심차게 출발했던 박근혜 정부는 출범 한 달 만에 국정 장악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최근의 여론조사를 통해 볼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이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4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218명을 상대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41%로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 낮게 나왔다. 반면에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는 28%였으며 ‘보통이다’는 10%, 의견 유보는 22%였다. (95% 신뢰수준, 오차범위 ±2.8%)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당선인 시절 포함)의 직무수행평가와 관련해 1월에는 긍정평가가 50%선을 유지했으나, 2월 이후 연이은 낙마로 41%까지 하락했다.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 결과는 역대 대통령들의 임기 1년차 1분기와 비교해볼 때 가장 낮은 수준이다. 김영삼ㆍ김대중 대통령은 71%, 노무현 대통령은 60%, 이명박 대통령은 52%였다. 이와 관련, 한국갤럽의 허진재 이사는“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은 정권 초기인 만큼 인사문제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며“최근 장ㆍ차관급의 잇따른 낙마사태를 보면 박 대통령의 독선ㆍ독단 이미지가 강화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박근혜 정부‘인사스타일’을 바꿔야할 때
고위공직자의 인선 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청와대 인사위원회는 허태열 비서실장과 이정현 정무수석,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곽상도 민정수석, 이남기 홍보수석이 고정 멤버로 참여하고 관련 분야의 수석비서관이 추가로 참여한다.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행정안전부 인사정책관을 지낸 김동극 선임행정관은 실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60여명이 넘는 장차관과 권력기관장 후보자들을 면밀히 검증하기엔 인력이 역부족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인사 검증 부실 논란은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진 검증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며 “인사위 외부 인사 포함은 현재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여야는 곽상도 민정수석의 경질과 더불어 인사 부실에 관한 비판 수위를 연일 높이고 있다. 남경필 의원은 “검증팀 무능 여부를 떠나 대통령이 인사하는 방식을 바꿔주는 것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라며 “위에서 내리는 시스템이라면 청와대 인사위원회 등이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용태 의원도 “단수후보 내정 후 검증에 돌입하는 톱다운 방식과 검증팀의 눈높이가 국민과 언론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질타했다.
박근혜 대통령 “국회가 능력 검증보다 ‘흠집 내기’에 몰두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 인사청문회 문제점을 나열하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국회가 능력 검증보다 ‘흠집 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당선인 시절인 지난 1월 말 새누리당 경남지방 국회의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검증을 하게 되면 능력 면은 다 들여다보기 어렵지 않느냐. 처음부터 후보자를 완전히 지리멸렬하게 만들어버린 뒤 인사청문회를 통과시키면 그분이 국민적 신뢰나 존경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또 이 발언 직전 강원지역 의원들과의 오찬석상에는 “죄인처럼 혼내는 인사청문회 때문에 나라의 인재를 데려다 쓰기가 어렵다. 인사청문회 과정이 신상 털기 식으로 간다면 누가 나서겠느냐”며 검증 과정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이어 박 대통령은 밀봉인사라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서는 “가령 후보군 2~3명 이름이 알려지면 최종 후보로 선정되지 않을 사람까지도 신상 털기로 피해를 볼 수 있지 않느냐. 그래서 물망에 누가 올랐는지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나도 참 어렵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과도한 신상 털기 식 진행이 국회 인사청문회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국민들에게 지도층 전체가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 시민운동가인 김동길 변호사는 “청문회에 나온 인사들이 하나같이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병역기피 등의 문제를 한 가지 이상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 지도층은 다 부정부패로 부를 축적한 부도덕한 인간들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며 “이러한 청문회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다보면 시민들은 상류사회에 대한 반감을 쌓게 되고 결국 사회의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미국 <워싱턴포스트> 에 기고한 글 논란
아메리칸 드림의 주역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전격 사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버린 사건은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의 기폭제가 됐다. 김 전 장관 후보자는 이중국적 논란, 미 중앙정보국 연루 의혹, 강남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제기되자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에서 자진 사퇴했다. 출국 이후 김종훈 전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29일 미국 <워싱턴포스트> 에 기고한 ‘새로운 세상의 오래된 편견’에 많은 후폭풍을 몰고 왔다. 김종훈 전 장관 후보자는 문제의 기고문에서 “낡은 한국 국수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장관직에서 사퇴했다. 인터넷은 물론 주류 언론도 마녀사냥 같은 독기 어린 공격을 가했다. 나는 미국의 스파이였고 내 아내는 매매춘에 연루됐다는 중상모략을 받았다. 21세기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는 민족주의와 관련된 오래된 편견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전 장관 후보자의 기고문에 대해 미국 내의 여론은 대체로 냉담했다. 김동석 뉴욕 뉴저지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는 1일 <기독교방송> 라디오 ‘정관용의 시사자키’에 한인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김 이사는 “이렇게 유력 일간지에 기고를 한 게, 먼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해명보다는 좀 변명하고 자기를 감추려는 것 아니냐. 미국에서도 고위직 특히 장관급 인사청문회는 굉장히 엄격하다. 국적 문제에 관해서는 김종훈씨가 각오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냐면 미국에서 이런 전 미 중앙정보국 자문위원 인사였기 때문에”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체코슬로바키아와 미국의 이중국적 가졌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도 그쪽 관련해서는 엄격하게 미국의 장관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체코 국적 포기하겠다. 이런 걸 먼저 선언하고 그렇게 한 적이 있다. 미국 같은 경우는 장관 후보자에 대해 7개월 이상 인사 검증 기간이 있다. 미국이 훨씬 더 어렵게 세세하게 아주 철저하게 인사검증을 한다. 한국의 인사검증으로 마녀사냥 당했다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사청문회의 효시 미국은
김동석 상임이사가 언급한 미국의 인사청문회 검증 단계는 아주 면밀하고 철저하다. 백악관의 후보자 물색 및 자체검증→복수 후보자 중 최종 후보자 낙점→연방수사국(FBI)과 국세청(IRS)의 탐문조사→관계 기관의 신원조사→백악관의 최종점검→대통령의 지명 및 상원 인사청문회 등 총 6단계의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정책 검증은 공개적으로 하되 사생활은 비공개로 검증해야 한다”며 미국 인사청문회를 그 예로 들었는데 사실 이는 외부로 공개되는 마지막 단계만을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에 공개되는 미국 상원 인사청문회가 정책 중심으로 품격 있게 이뤄진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미 상원 청문회의 품격은 수개월간에 걸친 철두철미한 사전 검증이 초석이 되었기에 가능하다. 미국에서 행정부 고위관리가 되려면 사생활과 관련한 혹독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FBI와 IRS 등이 예비후보자의 전과, 납세, 재산 등 233개 항목을 조사한 뒤 결격 사유가 없는 경우에만 후보자로 공식 지명된다. 특히 도덕성이 중시되는 법관이나 법무부 공직자의 경우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 정치활동 여부, 가입단체 목록, 종교, 소득, 통장잔고 등 갖가지 개인정보를 상원에 제출해야 한다. 배우자나 자녀와 관련한 개인정보도 청문회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지명된 후보자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흠이 드러나 낙마하는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 의회가 후보자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공개 검증을 소홀히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 정치권과 언론이 이처럼 공직 후보자의 사생활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한국에서처럼 “가혹한 신상 털기로 쓸 사람이 없다”는 푸념을 찾기 힘들다. 실제 공직 후보자를 철저히 검증하는 상원이 장관 후보자 인준을 거부한 것은 1789년 이후 10여 차례에 불과했다. 한국의 경우 인사청문회의 대상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장관 검찰총장 등 각 국가기관의 꼭대기 자리 60개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된 이후 지난해까지 청문회 대상자는 모두 210명. 그 중 임명동의안이 부결되거나 임명이 철회돼 낙마한 후보자는 14명이다.
인사청문회 개선이 시급할 때
최근 일부 여론조사 결과에서 적잖은 국민이 박근혜 정부의 인사에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문회 자리에 앉은 사회 지도층들이 신상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는 모습을 끊임없이 봐야 하는 국민들은 허탈감을 느낀다. 업무 능력이나 정책 비전을 파악하기보다는 병역 문제는 없는지, 탈세했는지를 따지는 걸 지켜보느라 맥이 빠진다. 어렵사리 열린 청문회도 제기된 의혹을 제대로 밝혀내기는커녕 불필요한 입씨름만 오고가 인사청문회를 존폐에 대한 의구심까지 속출하고 있다. 새롭게 출범한 현 정부가 식물정부라 야유 받고, 끊임없는 북한의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인사가 적재적소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 개선이 시급할 때이다. <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