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특수수사팀은 6월 14일 ‘국정원 불법정치개입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공직선거법(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금지)과 국정원법(정치관여금지) 위반혐의가 적용됐다. 사실상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공식화한 것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해 왔던 태도를 버리고 지난 여당집권세력들의 ‘국기문란행위’를 인정하고 법치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와 노력이 시급하다.

안 전 원장은 총선과 대선을 앞 둔 지난 2012년 초부터 국정원 간부회의 등에서 종북좌파의 집권은 국정원의 존폐를 좌우한다면서 대통령과 정부정책을 홍보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국정원의 심리전단 사이버 팀원이 70명으로 증원되고 그 중 7명이 웹사이트에 야당과 ‘야당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다.

검찰에 의해 들어난 게시글은 87일 동안 73건, 하루에 1건 정도고 대선관련 찬반 클릭건수는 1281건으로 전체의 25% 정도라고 한다. 국가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안기부가 정권의 편의와 안위를 위해 봉사했다는 것은 혐의의 경중을 떠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순히 선거법을 어긴 범법의 차원이 아니라 민주주의 선거제도와 의회정치를 뒤흔드는 ‘국기문란행위’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국정원의 일탈은 어제오늘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국민의 정부’시절, 1999년 국정원으로 개칭된 이후 9명의 원장 중 6명이 퇴임 후 검찰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은 이것을 말해 준다.

설상가상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검찰의 수사결론에 몽니를 부렸다니 어처구니없다. 채동욱 검찰총장과 황 법무무 장관의 불화설도 이것에 연유한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공정성을 수호해야 할 법무부 장관이 오히려 수사방해를 한 꼴이 된다.

새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충정이야 이해되지만 새로운 검찰로 거듭나겠다는 일선 검찰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선거법 적용이 성립되면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염려와 당혹감이 청와대와 법무부 장관 사이에 모종의 교감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원칙과 법치를 강조해온 정치지도자다. 따라서 정권의 정당성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이번 ‘국정원 불법정치개입의혹’ 사건을 털고 가야 한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고 사과해야 할 부분은 사과하고 그러면서 국민의 용서를 기다려야 한다.

이와 동시에 국정원 개혁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국정원의 임무가 무엇인지 기초와 본질로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 정권이 교체 되도 미국의 중앙정보부(CIA)의 수장들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정치적 중립을 엄정히 지켰기 때문이다.

안기부는 대공·안보 업무에만 주력해야 한다. 이참에 청와대는 새 정부에 걸맞게 국가권력기관인 안기부와 검찰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진정성 없는 개혁 방안을 발표하거나 인사 물갈이, 조직 개편으로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 된다. 지금이 적기이기도 하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새로운 기관장들이 임명되었다. 청와대의 결단에 따라 이번 ‘국정원 불법정치개입의혹’ 사건도 국정원이 환골탈태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정통성 시비도 극복하고 개혁의지를 과시함으로써 정부지지도 역시 덩달아 올릴 수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해야 한다. 더불어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철저하고 세밀한 제도적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에 국가권력기관구성원들이 법제화된 개혁안에 적응하고 순응함으로써 진정한 국가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

정치논리가 법의 논리보다 우세할 때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는 법이다. 역설적으로 불의의 권력은 반드시 국민의 저항을 받는다는 지난 역사적 교훈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 대선주자였던 문재인 의원은 “이제 와서 박대통령에게 선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그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했다. 진영논리를 탈피한 ‘고뇌의 변’으로 볼 수 있다. 이제 박 대통령이 화답할 차례다. 이번 ‘국정원 불법정치개입의혹’사건에 대해 분명하고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만 정권의 미래가 순탄해 지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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