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뿌리 깊은 악습과 부조리 관행”
<뉴스 피플>은 지난 5월 호부터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부조리한 관행에 대한 기획 특집 기사를 싣고 있다. 한국은 급속도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며 경이로운 경제 발전을 이룩했지만 그에 따라 파생된 많은 병폐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중 한국인 의식 저변에 깊게 뿌리 내린 촌지 문제를 필두로 혼수, 장례 문화의 허례허식을 순차적으로 다루고 있다. 금월 호는 마지막 제 3부로 장례 문화이다. 죽음에 대한 지나친 의례주의로 인해 합리적이지 않은 장례비용 부담을 당연시하면서 장례식장, 상조업체, 납골당의 부도덕한 폭리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장례비용의 폭리 여전히 기승

지난달 어머니 장례를 치른 박 모 씨는 장례식 영수증을 확인한 후 속을 태워야만 했다. 장례식장과 음식비용을 제외하고도 1000만원 가까운 액수가 나왔기 때문이다. 수의만 200만원이 넘었다. 관, 유골함, 상복, 입관용품, 제단용 꽃 등도 당초 예상보다 비싸게 나왔다. 여기에 장례식 관련 일꾼들에게 노자 명목으로 100만원을 건넸다. 박 씨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슬픔 때문에 겉으로 내색할 수는 없었지만 비싸게 장례비용을 치렀다는 생각에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박 모 씨와 같은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로 인해 한국의 장례 문화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나치게 상업화 형식화 돼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정작 망자에 대한 애도라는 본연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것. 자신의 마지막 길도 잘 준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기사에 따르면 2010년 매장비용과 화장비용은 각각 1916만원, 1390만원으로 5년 전보다 15% 넘게 상승했고, 대학병원의 장의용품 이익률도 평균 400%를 웃도는 등 유족이 감당해야 할 장례비용 폭리 수준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권익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장례관련고충민원건수는 2009년 1123건에서 2010년 1070건, 2011년 1509건으로 해마다 증가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에서도 물품 폭리 및 강매와 현금결제 강요 등의 사례가 다수 접수돼 권익위는 장례식장 물품 강매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식장을 처벌하는 내용의 개선안을 마련해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한편 지난해 10월 진행된 교육과학기술부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립대병원 간 장례식장 비용 차이가 4.5배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모 대학병원 장례식장의 경우 13만원 상당의 생화제단을 120만원에 강매하고 관ㆍ장의버스 등 대부분의 물품을 폭리로 강매하는 등 유사한 행태가 팽배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거품 낀 장례비용으로 인한‘가계부담’도 문제로 지적된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우리나라의 1인당 평균 장례비용은 화장할 경우 1390만원, 매장을 한 경우 1916만원에 달하며 이는 해외의 3~4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수의는 1만 8000원~460만원, 관 5만원 ~290만원, 빈소사용료가 하루 최소 48만원~386만원으로 종류에 따라‘천차만별’인 것으로 드러났다. 상조회사에 대한 관리 감독 문제도 심각하다. 실제로 상조회사의 부도, 환급지연, 연락두절 등의 이유로 납입한 돈을 전혀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사례가 이어지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는 ‘유명무실’하다는 비판도 많다.
성인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은 소모적 장례식에 경제적 부담을 느껴…

실제 우리 장례문화는 허례허식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상객은 고인 영정에 형식적인 예를 표하고선 부의금 봉투를 내밀면 그만이다. 고인 추모와 상주 위로는 뒷전이고 눈도장만 찍는 것이다. 고인의 자녀 등 유족 역시 다를 게 없다. 자신의 입장에서 사회적 위상에 걸맞은 장례 치르기에만 급급하기 일쑤다. 장례가 터무니없는 고비용 구조로 흐르는 것도 관련 업체들이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상주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장례문화는 대부분 전통 유교 방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시대의 변천과 함께 상당히 간소화됐다지만 여전히 소모적이며 불합리한 면이 많다. 실례로 염습은 시신의 부패로 수분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냉장실에 시신을 보관해 그럴 염려가 거의 없어 깨끗이 씻기기만 해도 된다. 장례 필수품인 수의와 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화장률도 70%를 훨씬 넘어섰다. 하루 이틀 뒤 불살라 버리는 것인데 지나치게 고급스럽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오랜 관습을 하루아침에 허물기란 어렵다. 특히 자녀 등 유족 입장에서는 자식 된 도리로 합리와 효율에 근거한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에 따른 부담도 크다. 성인 10명 가운데 8명 이상(83%)은 소모적 장례식으로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만 마지못해 따라가고 있다고 한다. 고인이 생전에 구체적인 장례 방식을 밝혔다면 유족들은 한결 수월하게 실천할 수 있다.
일본국민 56.9% ‘형식이나 관습에 구애받고 싶지 않다’
일본인들은 대부분 불교식 장례를 치르는데, 납관과 고인을 밤새 추모하는 통야(通夜)와 출관 장례식, 호텔이나 대형 회관에 지인들이 모여 고인을 추도하는 ‘고별식’, ‘다비식’등의 절차로 진행된다. 장례의 규모와 호화로움이 고인과 후손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이 때문에 성대한 장례식과 호화 분묘 조성이 1990년대부터 사회적 문제로 지적됐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이런 풍조에 극적인 변화가 왔다. 일본소비자협회가 작년 실시한 ‘장례에 관한 국민 설문조사’ 에 따르면 ‘형식이나 관습에 구애받고 싶지 않다’는 응답자가 56.9%로 절반을 넘었다. 복수응답으로 ‘가족만의 장례식으로 족하다’는 답변도 48.4%나 됐다. NHK 방송에 따르면 일본 도쿄, 오사카에서는 ‘약식 장례’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인 절차를 생략하고 가족끼리 간단히 장례를 지내는 것이 약식 장례다. 장례정보업체가 지난해 말 일본 전국의 장의업자 약 200명을 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수도권인 간토 지방에서 치러진 장례의 22.3%가 약식으로 치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오사카가 속한 긴키 지방에선 9.1%였다. NHK방송은 “대도시에서 약식 장례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에선 보통 시신을 화장하기 전날 가족과 가까운 친척, 지인이 모여 밤을 새우는 ‘쓰야’를 치른다. 시신을 화장한 뒤에는 더 많은 지인을 불러 고별식을 한다. 두 행사 모두 승려를 불러 독경을 하면 평균 200만∼300만 엔(약 2300만∼3500만 원)의 장례비용이 필요하다. 이 비용은 고별식 참석자가 내는 부의금으로 충당한다. 장의업자 조사 결과 쓰야와 고별식을 생략한 약식 장례에는 평균 18만 엔이 필요했다. 장의업자의 약 40%는 이렇게 약식 장례가 늘어나는 이유로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2010년 종교학자인 시마다 히로씨는 ‘장례식은 필요 없다’란 책을 내놓으며 그 근거로 지나치게 높은 장례비용뿐 아니라 허례허식에 대한 반성, 무연(無緣)사회의 확산을 들었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일본에선 장례 불필요 혹은 장례 간소화 목소리가 크게 늘었다. 시마다 씨에 따르면 일본이 고도성장을 하던 1960∼1980년대 장례식은 가족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지표였다. 화려한 제단, 초호화 영정 차량이 당시에 유행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허례허식에 대한 반성이 일기 시작했다.
자연장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장례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급격한 화장률의 변화는 그동안 낮은 화장률에 화장장, 납골당 등 장묘시설 이용에 한계를 가져오게 되었으며 봉안당의 인프라 부족과 사설 봉안시설의 불공정 운영이 발생하는 등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었다. 최근에는 바다에 골분을 뿌리는 바다장을 비롯해 수목장 등 자연장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정부가 2007년 5월, 수목장 등 자연장 제도 도입 및 장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최근에는 화장을 넘어 자연장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서울시도 2003년 5월 산골장사시설, 공원형 추모시설을 마련했다. 서울시립장묘문화사업단에 신청해 산골인 명부 작성 등 절차를 거쳐 승화원(화장장) 옆 유택동산에 산골하면 추모의 숲에 안장할 수 있다. 나무, 꽃이 어우러진 수목공원을 만들어 그곳에 골분을 산골하고 추모단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자연장이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잔디, 수목, 화초 등의 상징물 밑이나 주변에 묻는 방법이다. 묘지에 매장하거나 화장해 봉안하는 방법은 환경 파괴 문제가 있지만 자연장은 환경 친화적이면서 공간 활용성을 높이는 게 장점이다. 비용도 200만~300만원에 불과하고 한 번 골분을 안장하면 반환, 이장이 허용되지 않아 영구적이다. 골분을 바다, 강 등에 뿌리는 바다장도 있다. 실제로 인천 앞바다에서만 매년 1000건 이상 바다장이 치러질 정도다. 박복순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산골, 수목장 등 다양한 형태의 자연장이 등장했는데 일정 기간 고인을 추모하는 유무형 공간만 있으면 실속 있는 자연장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바다장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문제다. 국토해양부는 바다에 골분을 뿌리는 바다장을 ‘폐기물 투기행위’ 로 분류해왔다. 묘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중국 상하이시가 400위안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바다장을 장려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를 두고 국토해양부도 바다장이 해양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후 바다장의 합리적인 기준, 관리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박 교수는 “장사법에 산골이라는 용어를 규정하지 않아 불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한 산골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장사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속형 장례를 치르는 상주가 늘어나…

돈이 줄줄 새는 허례허식 대신 실속형 장례를 치르는 상주가 늘고 있다. 상주들은 수백만 원이 넘는 삼베 수의 대신 평상복을 이용하거나, 화장 장례를 치름으로써 장례비용을 절감한다. 근조쌀화환 서비스도 각광을 받고 있다. 근조쌀화환은 기존 3단 대형 조화처럼 높이와 가격은 거의 같지만 꽃의 양은 절반 이하다. 대신 상주에게는 5kg이나 10kg의 쌀 보관증을 함께 전달한다. 상주가 장례 후 기탁 단체를 지정하면 해당 단체에 쌀을 보내주는 방식이다. 기탁 단체를 모르면 어린이, 장애인, 노인 등 분야별 복지 시설도 안내 받을 수 있다. 상주에게는 기부금 영수증도 발행된다. 수의의 경우 삼베, 명주, 면, 한지 등으로 제작된다. 명품으로 불리는 수의는 한 벌에 200만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10만 원대 저렴한 수의도 많다. 한 장례식장 관계자는 “화장이 보편화되면서 비싼 삼베 수의보다 한지처럼 저렴하면서도 친환경적 소재로 만든 수의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고인이 평상시 좋아하고 아끼던 옷이나 결혼할 때 입었던 옷 또는 직책에 따른 관복을 이용해도 된다. 조선 후기인 18세기까지는 평상복을 수의로 사용했다고 한다. 생전에 입던 옷 중 가장 좋은 옷이 수의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옷의 치수가 작아져 평상복을 수의로 사용하기 불편해지면서 수의를 따로 만들기 시작했던 게 지금에 이르렀다. 상복비용도 만만치 않다. 3일 대여할 경우 1벌에 1만~2만 원 선으로 저렴한 곳도 있지만 10만원 남짓 하는 곳도 수두룩하다. 자손이 많은 경우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복 역시 따로 마련하지 않고 평상복을 입어도 무방하다. 과거에는 복친(상복을 입어야 하는 가까운 친척) 범위에 따라 상복 종류가 달랐지만 요즘에는 남자는 검은 양복, 여자는 흰색이나 검은색 한복을 주로 입는다. 가정의례준칙에는 ‘상복을 별도로 마련하지 아니하고 남자는 검은색, 여자는 흰색 옷을 입되 평상복도 가능하다’고 돼 있다. 그에 따라 조문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바쁜 현대인들이 매번 지인들의 장례식을 찾아가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워지자 사이버 조문같이 다른 방식으로 예를 갖추는 경우가 많아지면서다. 예전에는 조문객이 많고 장례식장이 왁자지껄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에 장례식은 멀리서도 찾아가야 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상주나 조문객 입장에서도 값비싼 대학병원 장례식장 대신 지자체나 비영리재단 도움을 받으면 보다 저렴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장례관리사 1000여명이 모여 설립한 비영리재단 ‘보은1004클럽’에서는 화장할 때 표준장례서비스 금액 258만원 중 100만 원가량을 공제해준다. 회원으로 등록하고 150만 원 정도만 지급하면 손쉽게 장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묘지에 매장할 때도 50만원을 지원해준다. 추연구 보은1004클럽 대표는 “유가족들 선택에 따라 장례 서비스 비용 대신 납골시설 임대료나 장례식장 임대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 장례비용 전체로 따지면 많게는 몇 백만 원 이상 절약된다”고 설명했다. 각 지자체도 장례 문화의 허례허식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기 수원시 화장시설인 수원시연화장은 이용료가 100만원이지만 수원 시민이 이용할 경우 10만원, 화성ㆍ오산 시민은 50만원으로 할인해준다. 덕분에 지난해 상반기 화성 시민의 화장 이용건수는 182건으로 2010년 같은 기간에 비해 150% 이상 늘었다. 충남 아산시는 올해부터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무연고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의 장례비 전액을 지원하기로 했다. 기업들도 팔을 걷고 나섰다. SK그룹이 500억 원을 기부해 조성한 세종시 장례문화센터 ‘세종시 은하수공원’이용료는 인근 장사시설의 70~80% 수준에 불과하다. 은하수공원 홍보관은 고대 이후 우리나라 장묘문화 변천사와 선진국의 장례문화, 화장의 역사와 장점, 수목장ㆍ바다장ㆍ산호장 등 각종 자연장을 소개하는 전시물·영상물로 꾸며져 종합 장례문화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 공원 내에는 새로운 장례문화로 주목받고 있는 수목장 외에 장미를 활용한 화초장, 비석과 봉분이 없는 잔디장 등을 만들 수 있는 2만600여 평 규모의 자연장지도 마련돼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경북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 부지에 수목장 전용 부지를 만들어 노조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장례 가격을 꼼꼼히 따져보고 싶다면 보건복지부의 ‘e하늘 장사정보’를 활용해보는 것도 좋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화장시설 예약이 가능하고, 장사시설 사용료나 용품 가격을 직접 비교, 검색할 수 있다.
고인을 애도하는 장례식 본연의 취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킬 필요
장례형식이 시대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변화되더라도 변치 말아야 할 것은 장례의 본질이다. 현재 우리의 장례문화는 상주도 조문객도 모두 피곤함 일색이다. 허례허식과 체면치레에 빠져 있으며 고인에 대한 추모는 뒷전이 되어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장례문화 문제해결을 위해 ‘고인을 애도하는’ 장례식 본연의 취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신산철 늘푸른장사문화원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통적으로 고인의 집에서 지내는 장례는 고인을 직접적으로 아는 마을공동체가 장례 준비과정부터 참여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며 “일련의 절차를‘업체’에 위탁하고 잘 알지 못하면서 예의상 방문해 의례적으로 잠시 앉아있다가는 요즘 문화와는 ‘진정성’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신 원장은 “지금처럼 장례식장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발인 전에 고인을 기념하는 영상을 틀고 삶의 연대기를 낭독하는 등 고인의‘삶’을 추억하고 함께 기릴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된다”며 “정형화된 형식에 치우치기보다 각자의 형편에 맞는 방식으로 고인을 진심으로 기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기진 건양대 겸임교수는 “한번 쓰고 태울 관이 수백만 원에 달하고 운구차는 리무진, 그리고 비싼 묘지와 장식 등은 산 사람이‘나 이렇게 잘 됐네’하는 허례허식의 성격이 강하다”며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김 교수는 “평소 자신이 원하는‘마지막 길’에 대해 생각하고 가족들에게 뜻을 전달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며 “값비싼 수의대신 즐겨 입던 청바지나 티셔츠 등 평상복을 입고, 더 검소하고 의미 있게 마지막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이라며 ‘다양한 방식’ 의 장례 대안이 있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일례로 14년 전 미국의 전설적인 가수 겸 영화배우인 프랭크 시나트라는 죽으면서 “장례식에는 가족과 친한 친구만 초청하되, 장례식 꽃을 살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라. 그리고 학대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기금을 출연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가족들은 유언에 따라 그의 장례식을 로스앤젤레스 비버리힐스의 한 작은 교회에서 조촐하게 치름으로써 전 세계 팬들을 감동시켰다. 동료연예인들과 친지들은 유족의 뜻을 존중해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은 대신, 장례식 전날 밤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별도의 추모행사를 마련했다. 국내에서도 고 최종현 SK그룹 전 회장의 ‘아름다운 유언’ 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앞서 말했듯 1998년 8월 폐암으로 타계한 최종현 전 회장은 평소 무덤 확산에 따른 국토 잠식이 문제가 되자, 그 대안으로 화장을 통한 장례문화 개선을 주장했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해 달라”는 유지를 남겨 세종시에 은하수 공원을 건립했다. 산문집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도 2년 전 입적하기 전 “일체의 장례의식을 거행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별다른 장례행사는 치르지 않고 다비식만 거행됐다. 조화나 부의금도 받지 않았다. 강동구 동국대 교수는 “장례(묘)문화는 개인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면서도 “과시욕이나 낭비적 성격을 배제한 바람직한 장례문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사회지도층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000년에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으며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노인층의 인구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5.7%를 차지하고 전체 사망자도 35만 7천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과 같은 보여주기식 장례문화는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