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하는 미국, 과연 빅브라더인가
미국이 주미 한국대사관을 비롯해 유럽ㆍ아시아ㆍ중동 등 38개국의 재미 공관을 전 방위로 도청한 사실이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추가로 폭로돼 파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유럽 연합(EU)의 본부와 사무실까지 도청, 해킹 한 사실이 드러나 미국이 빅 브라더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당장 미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교착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고, 독일 연방 검찰은 미국 정보기관을 상대로 법적 대응 방안을 검토하는 등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이에 반해 한국 정부는 아무런 공식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노벨 평화상’ 후보로까지 추천 받은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의 망명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잇따른 폭로, 미국 빅브라더 논란
‘빅 브라더(Big Brother)’ 라는 용어는 거대권력이 사회를 통제하는 사회를 묘사한 소설 <1984> 에서 유래

국제 사회 반발, 한국 침묵
전미 정보기관의 광범위한 도청 사실이 알려진 후 EU 국가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반미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비비안 레딩 EU 법무집행위원은 6월 30일 “협력국 사이에는 스파이 행위가 있어선 안 된다”며 “우리의 파트너들이 유럽 협상가들의 사무실을 도청했다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면 우리는 대서양 양안간 시장 확대에 대해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히 시사했다. 이번 도청 의혹으로 미국과 EU 간 관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약 2주 전 시작된 미-EU FTA 협상에도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미국 정부에 공식 해명을 요구했으며, 이외에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과 유럽 의회 의원들, 독일 등 주요국 정부의 항의성 발언도 잇따르고 있다. 특히 미국의 감시 타깃이 돼온 것으로 알려진 독일은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등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독일 법무장관은 미국이 유럽을 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다며, 냉전 당시를 연상시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스파이 행위가 중단됐다는 보장이 이뤄지기 전에는 미국과 어떠한 협상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와 중국도 비판에 가세했다. 러시아는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란 명분으로 도청 시스템을 설명할 수 없다며 비판했고, 특히 하원 지도부가 미국의 외국 공관 도청 활동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러시아 하원 국제문제위원회 위원장 알렉세이 푸슈코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란 명분으로 동맹국 대사관 도청 시스템을 설명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외국 대사관엔 테러리스트들이 없고 그런 설명은 우스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푸슈코프는 이전에도 포괄적 염탐과 도청이 미국 민주주의 본질이라며 미 정보당국의 도청 활동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미국으로부터 사이버해킹의 주범으로 몰렸던 중국도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할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미국에 사실 확인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일 오전 정례 회견에서 “그런 보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내용은 확실하지 않다”며 “이 건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으며 외교 루트를 통해 (미국 측에) 확인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또 ‘사안의 성격상 미국이 제대로 답변을 하겠느냐. 보안 강화 등 별도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추가 질문에 대해서는 “우선 외교 루트로 진위 확인을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반해 철저한 동맹국이면서 뒤통수를 맞은 격인 한국 정부는 공식적인 답변을 피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7월 2일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한국ㆍ일본 등 38개국의 주미 대사관을 상대로 도청 등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의혹과 관련, “박근혜 정부는 미국 정부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익표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브리핑을 열고 “주권국 대사관에 대한 도청은 국제법적으로 불법으로 국가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문제”라며 이같이 밝혔다. 홍 원내대변인은 “우리정부는 여전히 동맹국이란 이름으로 미국 국가 안보국에 의한 불법행위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며 “진상에 대한 설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미국에게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뒤늦은 진화 시도
미국 국가안보국(NSA) 등의 정보수집 활동이 자국민은 물론 외국 정부와 국제기구까지 겨냥했다는 주장과 보도가 잇따르면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궁지에 몰렸다. 국가안보를 위해 정보 수집 활동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사태가 외교 문제로 비화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조기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실제로 NSA와 CIA 국장을 역임했던 마이클 헤이든은 지난 6월 30일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EU 본부에 대한 도청 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면서도 유럽 국가들도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헤이든은 “공직에서 물러난 지 5년이나 돼서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안다고 해도 이를 확인하거나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국제 첩보활동에 대해 비난하고 싶은 유럽인들은 먼저 자기 나라가 하는 일을 살펴보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같은 날 미국의 유럽연합(EU) 본부 건물 도청 등과 관련한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정보프로그램의 폭로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며 태도 표명을 사실상 거부했다. 벤 부보좌관은 그러나 “그들(EU 회원국)은 가장 가까운 정보 파트너 국가들”이라면서 “유럽 국가들은 우리와 매우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고, 우리는 그들과 긴밀한 정보 관계를 갖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도청 스캔들로 인해 EU 국가들과의 관계가 급격히 냉각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해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인 셈이다. 외국 순방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도 해명하기에 골몰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모든 관련 정보를 EU 회원국에 넘기겠다고 말했고, 케리 국무장관은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를 만나 다른 나라도 다 하는 일이라며,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 알려주겠다고 전했다. 미국은 뒤늦게 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도ㆍ감청 파문은 쉽게 수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초미의 관심사, 에드워드 스노든의 신변 문제
한편 에드워드 스노든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의 신변 문제가 국제 사회에 초미의 관심사가 되

올리버 스톤 “오바마가 미국을 디스토피아로 내몰고 있다”
미국의 유명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이 “오바마가 미국을 디스토피아( ‘이상향’ 의미하는 유토피아의 반대)

전 세계 민간인, 도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포스트(WP)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도 연방정부의 감시프로그램에 대한 끈질긴 탐사보도로 정부를 궁지로 몰아붙이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NSA가 채팅, 이메일, 파일 전송, 인터넷전화, 로그인, 메타데이터, 사진, 소셜네트워킹, 저장 데이터, 비디오, 화상회의 등 최소 11개 유형의 전자통신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9ㆍ11 테러 이후 제정된 소위 ‘애국법(Patriot Act)’ 은 미 연방 수사국(FBI)이 손쉽게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해 인권침해 논란을 빚어 왔다. 영국은 180만대에 달하는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고‘가디언’은 지난해 영국 정부가 전화통화와 이메일, 문자메시지를 영장 없이 조회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실정은 어떠할까. 멀리보지 않아도 이명박 정부 때 논란이 됐던 민간인 불법 사찰 문건이 떠오른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은 2008년 대한민국의 국무총리실 산하‘공직윤리지원관실’이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사찰한 사건이다. MBC PD수첩에 보도되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다. 2010년 6월 29일 MBC PD수첩은 영화 식코의 패러디인 쥐코 동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2008년 당시의 국무총리실의 조사를 받은 김종익 KB 한마음 대표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보도를 배경으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국무 총리실은 이어 한국노총 간부도 미행한 사실이 드러났고 정부의 방침에 반기를 드는 언론인과 일부 연예인들까지 사찰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큰 타격을 입었다. 사찰 범위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지만 이후 몸통논란이 점점 청와대로 집중되었던 이른바 한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정보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개인의 사생활 정보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과거 국정원은 정치적 목적으로 특정인의 통화를 불법 도ㆍ감청한 사례가 수도 없이 많았다. 최근 국정원은 인터넷 회선 감청(패킷감청)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메일은 물론 웹서핑, 게시물 읽기와 쓰기 등 인터넷상 모든 활동을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2013년판 빅 브라더 논란이 불거진 미국이나 전 정부의 권력 누수 현상이 그대로 드러난 한국 정부나 “일시적인 안전을 위해 자유를 포기한다면 자유는 물론 안전도 누릴 수 없다”라고 역설한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