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유혈 사태,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갈등 악화 일로

이집트 무르시 취임 1주년을 맞은 6월 30일부터 반(反) 무르시 시위가 거세졌고, 7월 3일에는 국민 

 

의 손으로 뽑은 첫 민선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축출되기에 이르렀다. 5일엔 수도 카이로와 이집트 전역에서 무르시 찬반 세력이 충돌해 36여 명이 사망하며 ‘피의 금요일’ 로 기록됐다. 8일 오전에도 무르시가 감금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카이로의 공화국 수비대 본부 앞에서 무르시 찬반 세력이 또 다시 충돌해 50여명이 숨지고 430여명이 부상했다. 이 같은 혼란 상황 속에서 만수르 임시 대통령의 개헌ㆍ총선 등 계획이 실제로 실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임시 대통령 만수르 칙령 발표… 수습은 글쎄…
무르시를 축출하고 임시 대통령이 된 아들리 만수르는 과도정부 총리로 자유주의 성향의 하젬 엘-베블라위 전 재무장관을, 외교담당 부통령에 무하마드 엘바라데이를 임명했다. 베블라위는 2011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난 뒤 재무장관을 짧게 지냈으며 엘 바라데이는 북한 핵 문제로 시끌시끌하던 90년대 IAEA를 이끌며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국제적 인물이다. 만수를 대통령은 뒤미처 내년 초 총선과 대선 실시를 골자로 한 과도정부 헌장을 발표하는 등 권력 이양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8일(현지시간) 아들리 만수르 임시 대통령은 우선 새로운 헌법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는 무르시 전 대통령 시절 무슬림형제단 세력이 개헌을 통해 덧입힌 이슬람 요소를 없애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만수르 대통령은 칙령에서 15일 내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해 헌법 개정에 착수하고, 4개월 내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개헌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하면 2개월 내 의회 선거를 치르고, 의회가 구성된 뒤 일주일 정도 준비기간을 거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표대로라면 총선과 대선은 이르면 내년 1,2월쯤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집트 임시 정부가 향후 일정을 발표한 것은 각종 시위와 유혈 충돌 등 계속되고 있는 혼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과도정부의 계획대로 선거가 진행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과도정부와 무르시 대통령 축출에 반대하는 무슬림형제단은 “과도정부의 계획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누르당도 군부가 8일 무슬림형제단을 비롯한 친 무르시 세력을 공격한 이후 더 이상 새로운 정부 출범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혈사태로 이슬람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의 종파적 구도로 재편 

▲ 축출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

지난 8일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해 적어도 51명이 숨지고 5백여 명이 다친 도심 한복판의 유혈극은 처참했다. 무장한 테러그룹이 군을 공격해 벌어진 참사라는 군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시위 도중 새벽기도를 하던 군중들이 몰살당하면서 이슬람 진영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축출된 무르시의 권력기반이었던 무슬림 형제단은 지지자들에게 “봉기하라”고 촉구해 추가 폭력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슬림형제단 대변인 게하드 엘하다드는 “군부가 이집트를 내전으로 이끌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그들은 우리를 위협해 해산시키려 하지만 물러서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10일 부터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이 시작되면서 저항의 강도와 열기가 식을 것으로 우려했던 무슬림 형제단 등 이슬람 세력은 이번 유혈참사로 인해 끓어오른 대중적 분노를 어떻게든 이어가려 할 것으로 보인다. 무르시 지지 세력의 거점인 카이로 나스르시티에는 이미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군부 규탄 집회를 열었다. 시위대 사이에서는 ‘알라 이외 신은 없다’, ‘엘시시(국방장관)는 알라의 적이다’란 구호가 등장했다. 무르시 축출 과정에서 군부 편에 섰던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 엘 누르당도 이번 사건 이후 “이집트 과도정부의 이행 과정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군부와 과도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권력이양 과정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번 유혈사태가 군부에 대한 지지를 접는 결정적 계기가 됐는데, 누르당이 권력이양 과정에서 빠지면서 기존의 무르시 찬반구도는 이슬람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의 종파적 구도로 완전히 재편되고 만다. 사실 군부가 무르시 퇴진 이후 연일 계속되는 무르시 석방 시위에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이란 예상은 있었으나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학살’ 을 저질렀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한 군부의 이번 진압이 무르시 정권 축출 이후 최대 유혈 사태를 초래하면서 청렴하고 유능한 엘리트 계층이라는 군부의 기존 이미지도 희석될 것으로 보인다. 군부는 6월 30일 무르시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될 때만 해도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지난 3일 군부가 무르시를 축출하자 이집트 국민 수십만 명은 카이로 민주화 성지 타흐리르 광장과 대통령궁 앞에 모여 군부를 지지했다.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이 무르시 축출 이후 야권 지도자, 이슬람ㆍ콥트 기독교 종교기관 수장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정치 로드맵을 발표할 때만 해도 ‘민주적 쿠데타’ , ‘무혈 쿠데타’ 등으로 묘사되며 국제 언론으로부터도 비교적 우호적인 평가를 들었다.

대다수의 언론, 이집트 사태를 “쿠테타”라 명시
이집트 최고 종교 기관 알 아즈하르의 수장인 아흐메드 알 타이예브 대(大)이맘은 성명을 통해 내전 가능성을 경고하며 “양측이 학살을 멈출 때까지 자택에서 칩거하겠다”고 밝혔다. 야권 지도자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초래한다”며 “독립적인 조사가 필요하고 평화로운 이행과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마틴 니서키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이집트 사태에 대단히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이어 “이번 사태를 규탄한다”며 “독립적이고 권한이 있는 국가기구가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자는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무슬림형제단을 지원해 온 카타르와 터키, 이란은 군부의 무력 진압을 정면 비판했다. 카타르 외무부는 이날 관영 뉴스통신 QNA에 전한 성명에서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행위를 강력히 비난한다”면서 이집트에 폭력 사용 중단과 자제를 촉구했다. 이란의 압바스 아락치 외무부 대변인도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한 군부의 개입을 부당하다고 지적한 데 이어 이날 재차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터키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외무장관 역시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새벽 예배 시간에 발생한 대학살을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의 이름으로 강력히 비판한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도 이번 사건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집트의 내전화(化) 가능성을 거론했다. 푸틴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를 방문하면서 “시리아는 이미 내전에 휩싸였고 슬픈 얘기지만 이집트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집트 국민이 이런 비극적 운명을 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서방 언론과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번 이집트의 무르시 대통령 축출을 선거로 뽑힌 합법적 정부를 군이 나서 전복한 명백한 쿠데타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은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시민혁명의 실패를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군사독재를 물리쳤던 시민혁명이 다시 군사통치 체제로 회귀하는 정치적 후퇴라는 결론이다.

미국, ‘쿠테타’ 글쎄…사우디 아라비아 원조
이에 반해 초강대국 미국은 이집트 군부가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데 대해 군부에 자제를 요구하면서도 이집트에 대한 원조는 당장 끊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8일(현지 시각)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은 이집트에서 폭력이 증가하고 정치적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는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이집트 과도 내각에 보복과 체포, 언론 통제를 자제하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집트에 대한 (연간 15억 달러 규모의) 군사 및 경제 원조 제공을 당장 중단하는 것은 미국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카니 대변인은 군부가 무르시를 축출한 것을 ‘쿠데타’ 로 규정할지 여전히 검토 중이며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리거나 그 결론에 따라 원조 제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고 했다. 제이 카니 대변인은 또 “이 문제는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관련법을 만든) 의회와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집트에 대한 원조 문제도 부담이다. 미국은 매년 이집트에 15억 달러(약 1조7000억 원) 규모의 원조를 지원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이집트 군부에 대한 군사 원조다. 미국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에 대해서는 군사 원조를 중단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집트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번 사태를 쿠데타로 규정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무르시 축출 이후 처음 열린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기자들은 “왜 이번 사태를 쿠데타라고 부르지 않느냐”며 잇따라 질문했지만, 카니 대변인은 “미국은 어느 편도 들지 않으며 민주적 절차가 진행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새로 집권한 이집트 군부의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축출을 지지한 나라들은 정치적 불안에 경제난까지 겪는 이집트에 원조를 약속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지난 9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가 50억 달러, UAE가 30억 달러를 이집트에 지원하기로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지원은 현금과 은행차관, 원유제품 지원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집트, 2011년 시민혁명 이후 이중고
이집트는 2011년 시민 혁명 이후 2년간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집트 재무부에 따르면 시민혁명 이전 5%를 넘는 경제성장률은 2010~2011년 1.8%로 추락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2%대 초반을 나타냈다. 전체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는 관광업은 무바라크 퇴진 이후 치안이 악화해 큰 타격을 받았다. 실업률도 지난 1년간 계속 상승해 청년 실업률은 약 25%에 달한다. 이집트 외화보유액도 시민혁명 전 360억 달러에서 절반 이상 줄어 현재 약 149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3개월 치 수입을 충당할 수 있는 액수로 시민혁명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집트는 자국 화폐인 파운드 가치의 폭락으로 밀과 정제유 등 기본 생활필수품을 수입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이 인구의 40%에 이른다. 서민들에겐 민주주의보다도 생존의 문제가 더 절실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난뿐만 아니다. 혁명의 과실인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보로 가능했던 무르시 정권의 탄생 이후 사회적 염원은 정반대로 전개됐다. 무르시 정권이 종교적 색채를 강화하고 언론과 여성인권을 제한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이집트 시민들에겐‘혁명에 대한 배신’으로 각인된 것이다. 그래서 무르시 정권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백만 시민들은 군부 개입에도 불구하고 이번 무르시 축출을‘제2의 시민혁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집트 내란 조짐, 알제리와 닮은꼴.
민주 선거를 통해 집권한 이슬람 정권을 군부가 몰아내고 이에 이슬람 세력이 저항해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이집트의 현 상황이 21년 전 알제리와 똑같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어 그 결론이 한층 염려스럽다. 알제리에서는 군부와 이슬람 세력 간 대립이 내전으로 비화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약 15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는 “이집트의 혼란에서 알제리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연상된다”고 전했다. 영국 BBC 등 주요 외신은 “이집트에서 ‘알제리 악몽’ 이 재연되고 있다”고 표현했다. 132년에 걸친 프랑스 식민통치에서 1962년 해방된 알제리는 무장독립투쟁을 이끈 민족해방전선(FLN)과 군부가 결합해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1988년 국민의 민주화 요구로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다당제가 도입됐으며 1991년 12월 민주적 선거를 실시했다. 이 총선에서 이슬람 세력인 이슬람구국전선(FIS)이 압승을 거뒀다. 이슬람 정권 탄생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군부는 선거 2개월 만에 선거 무효를 선언하고 FIS를 불법화했다. 이에 이슬람구국전선이 반정부 무장투쟁을 선언했고 이는 알제리 내전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전반의 과정은 현재까지의 이집트의 전개 양상과 닮아있다. 다만 군부에 의해 정권에서 쫓겨난 무슬림형제단이 아직까지 무장투쟁을 선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알제리와 차이가 있다. 이집트의 상황은 악화 일로여서 극한 대립이 해소되지 않으면 알제리처럼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외신은 이집트가 내전으로 접어들면 알제리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알제리의 이슬람 세력은 통치를 못 해보고 쫓겨났지만, 이집트는 1년 정도 국정을 운영하다 축출됐다”며 “그 상실감이 알제리보다 더 클 것이기 때문에 무장투쟁을 하게 된다면 강도도 더 폭력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BBC는 “정당하게 제도권에 진입했던 이슬람 세력이 강제로 축출되는 과정에서 결국 무력을 유일한 대안이라고 결론 내리면 이집트는 물론이고 아랍권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며 아랍권의 대혼란을 경고했다.

이집트 사태, 다른 아랍 국가에 끼칠 영향은 
바야흐로 2년 전 2011년 시민혁명을 통해 30년 장기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내고 어렵사리 첫걸음을 내디딘 이집트의 민주주의는 이처럼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비단 이집트만이 아니다. 아랍연맹 22개국 가운데 ‘아랍의 봄’ 을 겪은 나라는 16개국이다. 이 중 그 나름대로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할 만한 나라는 튀니지 모로코 등 다섯 나라뿐이다. 나머지 나라는 대부분 여전히 민주화 투쟁이 진행 중이거나 설령 독재정권은 무너졌다 하더라도 내란에 빠진 상태다. 리비아 시리아 예멘 이집트 등 16개 나라에서 2년에 걸쳐 희생한 4만 명의 무고한 목숨이 희석될 판이다. 상황이 악화된 것은 무엇보다 민주화 시위 이후 새로 집권한 정부들이 민생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아랍국가 가운데 기존 권위주의 체제의 왕정이 그대로 유지되는 곳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경제적 위기가 없는 나라들이다. 국가가 석유 등의 자원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경제적 불만이 폭발하지 않도록 조절해 민주화 요구 시위가 시민혁명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걸프 지역의 왕정 국가들은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 국가의 풍족한 사회복지 혜택 덕택에 국민들이 ‘아랍의 봄’ 때와 같이 대규모 시위를 벌일 가능성은 적은 편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이집트 사태는 다른 아랍 연맹 국가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집트는 지난 60년간 핵심 권력을 거머쥔 채 실세 역할을 해 온 군부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아랍의 봄 진원지이자 이집트의 이웃 국가인 튀니지의 경우 벤 알리 전 정권의 장기 독재로 인해 군부 세력이 약해져 있기 때문에 이집트 군부처럼 시위를 주도할 구심점을 찾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장 센터장은 “알제리나 예멘은 아직도 군부가 많은 부분을 장악하고 있기는 하나 이집트에 비해 시민사회의 성숙도와 조직력이 떨어지는 데다 국민들이 군부에 의한 권위주의적인 안정에 기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아프리카 지역이 또 다른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은 없을까. ‘아랍의 봄’ 은 앙골라부터 가봉 우간다 등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민주화 시위를 촉발했고 알바니아 아르메니아 크로아티아 등 유럽지역은 물론 몰디브 미얀마까지 전 세계의 민주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북한 정권에도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일부 시민단체가 이집트와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를 적은 전단을 북한으로 올려 보내자 체제 불안을 느낀 북한 정권이 남쪽에 군사적 보복까지 들먹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튀니지, 리비아, 예멘 등 아랍의 봄을 겪은 인접 국가들이 이집트처럼 혼돈에 빠질 가능성은 적다며 확대해석을 일축했다.

‘빵과 자유를 달라’ 는 시민혁명의 구호를 잊지 말아야… 

▲ 평화를 바라는 이집트 국민들

아무리 불가피하다고 해도 합법적으로 집권한 정부와 대통령을 무너뜨린 군의 개입이 쿠데타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또한 이집트의 민주 헌정 질서가 자리 잡지 못하고 또 한 번 후퇴하게 됐다는 비판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집트의 시민혁명에 대한 성패를 내리기에는 아직 섣부른 감이 있다. 군부가 주도하는 과도정부가 얼마나 빨리 민간에 권력을 다시 이양하느냐,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들어설 새 정부가 사회 경제적으로 열악한 이집트 경제를 되살리고‘빵과 자유를 달라’는 시민혁명의 구호를 현실화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6000년 전 찬란한 문화를 자랑했던 나라다. 인구도 8500만 명으로 남북한 인구와 비슷하다. 이집트 각 정치 세력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전체 국민의 여망을 실현하는 정부를 잘 구성해 찬란한 문화를 다시 꽃 피워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뉴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