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에 대한 편견 해소와 지원이 근본적 해결책

출생하자마자 이런 저런 사정을 이유로 아기를 버리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해마다 요즘 같은 추운 겨울이 오면 아기들이 화장실이나 쓰레기통 등에 대책 없이 버려졌다가 숨지는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 그래서 생겨난 게 유럽 등에서 시행 중인 ‘베이비박스’ 다.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 서울 관악구 한 교회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베이비박스’ 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베이비박스’ 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거세다. 신생아의 생명권 보장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는 찬성 의견과 오히려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현실이다. 

국내 유일, 미인가 베이비박스 

▲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베이비 박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의 다세대주택 밀집 구역.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베이비박스가 근처에 있음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이 나타난다. 안내를 따라 대문이 있는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면 주사랑공동체교회 담벼락에 베이비박스가 등장한다. 철제 손잡이를 돌려 박스 문을 열자 반투명 초록색 단열재로 마감된 가로, 세로 각 1m가 안 되는 공간 내부가 드러난다. 상자 안에는 ‘출생일을 남겨주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아이들이 나중에 부모를 찾을 때 단서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을 열자 조명이 켜지며 바닥에 깔린 하얀 수건을 비춘다. 수건에 손을 올리자 센서가 동작을 감지해 경보 벨을 울린다. 이곳에 버려진 아기는 2~3일간 응급 처치ㆍ보호를 받은 후 관할 구청의 확인, 건강진단 등을 거쳐 일시 보호 시설에 보내지고 추후 입양ㆍ시설 입소ㆍ가정 위탁 등의 보호를 받게 된다. 국내에서는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된 것이 유일하지만 해외의 경우 독일에서 100개, 체코 47개, 폴란드 45개 등에서 활발히 운영되고 있고, 미국, 헝가리, 프랑스, 캐나다 벨기에, 스위스 러시아, 중국 등 18개 국가에서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는 친부모가 익명으로 신생아를 맡겨둘 수 있도록 한 ‘안전 피난처(safe haven) 법’ 이 있다. 베이비박스 역사를 살펴보면 12세기 이탈리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세 수도원에서 버려진 갓난아기의 생명을 살리고자 도입했던 ‘기아(棄兒) 회전판’ 이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보편화됐던 베이비박스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10년 새 센서 등을 갖춰 재등장했다. 베이비박스 앞면에는 아이를 맡기려고 오는 부모를 향한 간절한 호소 문구가 붙어 있다. ‘지금 안고 있는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입니다’, ‘세상에서 이 아이를 가장 사랑해 줄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베이비박스의 문이 열리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334번, 문은 열리고 말았다. 2010년 4명, 2011년 37명, 2012년 79명에서 올해는 10월 기준 214명이 이 작은 공간을 거쳐 갔다.

요보호아동 수가 감소, 반면 유기 아동 수 증가
우리나라에서 이런 저런 사유로 버려지는 아이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2년 2만2341명에 달했던 ‘요보호아동’수는 계속 감소해 지난해 말 현재 8003명으로 줄었다. 사유별로는 2011년 기준 미혼모ㆍ미혼부ㆍ혼외자 가 2515명, 부모이혼 1695명, 학대 1125명, 비행ㆍ가출ㆍ부랑 741명, 부모 사망 536명, 부모 빈곤ㆍ실직 418명, 부모 질병 154명, 미아 81명, 유기 아동(기아) 218명 등이다. 이들은 시설 또는 가정에 수용ㆍ입양ㆍ위탁돼 보금자리를 찾는다. 이중 낳자마자 출생등록도 없이 버리는 경우는 ‘유기 아동(기아)’ 으로 분류된다. 특이한 점은 전체 요보호아동 수가 줄어든 반면 유기 아동은 최근 몇 년 새 거꾸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1998년 1654명이었던 유기 아동은 2010년 191명으로 바닥을 친 후 2011년 218명, 2012년 235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 들어선 300명을 돌파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베이비박스를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한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조명과 발열 전기코일이 장착된 상자를 교회 담벼락에 설치한 것은 2009년 겨울이다. 이 목사는 5년째 이곳에 맡겨진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보육센터로 아이들을 보내기 전 사나흘 간 우는 아이들을 손수 달래며 끼니도 챙긴다. 베이비박스를 찾는 부모는 두 종류로 나뉜다. 아기를 다시 찾으러 오는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 이 목사는 아이를 맡기러 온 부모가 발걸음을 돌리기 전 이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벌인다. 나중에라도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의사를 밝히면 각서를 받고 약속된 기한까지 아이를 돌봐준다. 지금까지 그 곳에 온 아이들 300명 중 50명 정도는 부모가 데리고 갔다. 보육센터에서 찾아간 경우까지 포함하면 100명 정도는 부모 품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부모도 있다. 이럴 때는 소식이 끊긴 부모를 인터넷으로 수소문해 의사를 확인하고 아이를 입양 보낸다. 그런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베이비박스에 처음 왔던 아이처럼 출생일만 남아 친부모와의 모든 끈이 끊어진 일도 있다. 이 목사는 미인가 시설로 운영되는 지금의 베이비박스가 법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소방서, 병원 등 공공시설이 운영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이다.
 

베이비 박스를 둘러싼 찬반논란
베이비박스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들은 유기 아동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라며 전국적으로 확대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화장실ㆍ쓰레기통ㆍ지하철 사물함 등에 함부로 버려져 결국 저체온증 등으로 사망하는 유기 아동들을 각종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3조, 6조상 아동의 생명권이 최우선 보장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찬성 근거로 삼고 있다. 또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출생년원일 등이 적혀 있고 부모 상담도 하고 있어 자신의 기록을 알지 못하는 기본적 인권 침해의 소지는 적다는 입장이다. 찬성 측에선 베이비박스 때문이 아니라 2012년 8월부터 개정ㆍ시행된 입양특례법 때문에 유기 아동이 늘어났다는 주장한다. 입양특례법이 입양 기관에 아기를 맡길 때 반드시 출생신고를 하도록 의무화하는 바람에 신분 노출 등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갖다 맡기고 있다는 것. 베이비박스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명확하다.‘쉽게’아기를 버릴 수 있는 점이 더 많은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또 아동이 자신의 출생기록을 가질 권리를 침해하며, 입양인이 친생부모를 찾고자 할 때 필요한 중요 기록을 볼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는 점도 든다. 반대 측에선 베이비박스가 유기 아동수를 늘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유기 아동 수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입양특례법 개정안이 시행된 2012년 8월 말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인 2010~2011년 사이다. 유기 아동 수는 2009년 222명에서 2010년 191명으로 줄었다가 베이비박스가 방송 등에 의해 보도돼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2011년 218명으로 늘어나기 시작해 2012년 235명으로 증가했다. UN아동권리위원회는 독일, 체코 등 일부 유럽 국가에 설치된 베이비박스가 당초 의도와 달리 영아 유기를 부추긴다며 철거를 강력히 권고했다. 한국 정부도 베이비박스가 미인가 시설이고 유기 영아가 베이비박스로 집중된다며 철거를 요구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유기 영아의 절반가량이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됐다. 목경화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베이비박스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무책임한 부모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며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처벌 대상인 영아유기자들을 오히려 보호해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입양특례법을 둘러싼 논란 

▲ 입양특례법 논란


주사랑공동체교회의 이종락 목사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베이비박스에 놓이는 아기들이 증가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입양특례법’ 을 지목했다. 입양특례법은 아기를 입양 보내기 전에 출생신고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해서 입양 아동이 자랐을 때 본인의 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친부모가 의무적으로 출생신고ㆍ가족관계등록을 하도록 하고 ▲입양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출생 후 7일이 지나야만 입양 동의 효력을 인정하며 ▲관할 시군구 입양신고제를 가정법원의 허가제로 바꿨다. 하지만 실제로는 출생신고 기록이 남는 것을 우려한 미혼모들이 입양 절차를 기피한 채 아기를 버리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아기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하고 훗날 입양아가 원할 경우 친부모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자는 좋은 취지의 법이 오히려 버려진 아기들이 늘어나게 하는 부작용을 낳는 것이다. 이 목사는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이후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기는 258명으로 개정 이후 오히려 빠르게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아기들이 왜 유기되고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현실은 무시한 채 규제만 강화해 더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도 입양기관에 맡길 때 출생신고를 하라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고, 미혼모 등에게 아기를 몰래 버리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만큼 현실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한다. 또 미혼모는 병원 측의 출산 증명서만 있으면 되지만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선 유전자 검사 등을 거쳐 자신의 혈육임을 입증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도‘몰래 유기’를 부추기는 것이니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반대 입장도 있다. 출생한 아기도 자신의 부모ㆍ출생 장소 및 시간 등 출생기록을 추후라도 알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만큼 이를 의무화한 입양특례법 개정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입양법 개정 전에도 입양신고를 위해서는 당연히 입양될 아동에 대한 출생신고가 필요했다. 그러나 법대로 입양신고가 이루어진 사례는 희박했다. 입양신고가 아니라 입양부모의 친자녀인 것처럼 ‘허위로 출생신고를 하는 방식’ 으로 입양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법원과 같은 공적 기관의 개입이 없었기 때문에 탈법적인 입양 관행이 수십 년간 굳어졌다. 그 결과 장애아동 지원금을 받기 위해, 아파트 분양 선순위인 다자녀가구가 되기 위해, 앵벌이를 시키기 위해 입양제도가 악용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입양제도 개정의 당위성은 여기에 근거한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입양 절차가 완료되면 아이와 친모의 가족관계증명서에 모자관계 기록은 일절 남지 않는다. 별도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가 생성되어 그곳에서만 친모와 친자 관계가 기재돼 관리된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열람이나 증명서 발급이 법으로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본인만이 열람 가능하며, 아이는 성인이 된 후에만 열람할 수 있다. 학교나 사회생활에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의 제출을 요구받을 일도 없다. 따라서 개정된 입양법으로 인해 미혼모가 혼인 외 자녀를 출산한 사실이 무차별적으로 노출된다는 일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또 아기를 낳은 이들에게 쉽게 아기를 버릴 수 있는 것보다는 최소한의 책임의식을 느끼도록 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점도 반대 측의 논거다.

서울시는 예산 부족으로 골머리
베이비박스로 인해 전국의 아동 유기가 서울로 몰리면서 서울시는 서울시대로 예산ㆍ시설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아동복지센터에 들어온 아이들은 69명으로 올해 204명으로 늘었다. 베이비 박스에 버려져 이곳에 온 아기가 지난해 57명에서 190명으로 3.5배 가까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에서 발생한 유기 아동 수는 2010년 43명에서 2011년 70명, 2012년 147명, 올해는 300명을 돌파할 기세다. 반면 경기도는 2011년 29명에서 2012년 26명, 부산은 2011년 23명에서 2012년 16명 등 타 시도는 감소 추세다.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들은 구청을 통해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를 거쳐 보육시설로 넘겨진다. 시 아동복지센터 관계자는 “베이비박스가 서울에 한 곳 있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올라와 아기를 버리는 바람에 서울 시내 보육시설은 이미 포화상태”라고 호소했다. 서울시내 보육시설 33곳의 정원은 3700여명이다. 현재 수용된 인원은 2900명이니 숫자상으로는 더 아이들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공간과 돌보는 인력 등의 부족으로 사실상 아이들을 다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때문에 현재 서울로 유기 아동이 몰려들고 있는 현실과 관련해선 보건복지부가 유기 아동의 보호는 버려진 곳의 관할 광역자치단체가 책임지도록 한 규정을 개정해 타 시도에서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거나 아예 아동보호 업무 자체를 회수해 모자라는 곳과 넘치는 곳을 조율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조현옥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은 “보육시설도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고 비용도 전부 시비라 부담이 돼서 보건복지부에 특별교부금 36억 원을 신청했다”며 “전국에서 버려지는 아기를 모두 서울시 아동복지센터에서 수용하지 말고 수도권으로 분산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기아동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 대책은? 

 


전문가들은 유기 아동을 줄여 나가기 위해 미혼모ㆍ미혼부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나가는 한편 사회가 함께 키운다는 생각으로 엄마와 아기를 함께 보듬는 사회안전망 등 각종 정책과 제도적 지원을 수행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아동복지기관 관계자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소년들에 대해 임신과 출산, 양육 책임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하며, 혼외자 등에 대해선 여성에게만 책임을 지울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책임을 묻는 것이 사회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며 “결국엔 ‘책임질 줄 아는 출산’을 할 줄 아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동 유기의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편견이 사라질 순 없어도 정부 지원이 늘어나 육아를 포기하는 미혼모가 줄어든다면 점차 미혼모들이 양지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은 생각하고 있다.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인터뷰에서 “차별에 대한 두려움과 지원 미비, 정보 부족은 미혼모들이 출생신고를 꺼리게 하는 이유가 된다. 뒤집어 말하면 차별과 경제적 문제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충분하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산 초기 단계에서 출생신고를 꺼리는 미혼모들을 아동 유기가 아닌 양육으로 유도하기 위해 최소한 법적 입양숙려 기간인 1주일간 이용할 수 있는 ‘익명의 일시 보육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영희 충북대 교수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이와 엄마가 함께 살 수 있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쉼터가 필요하다. 그 공간에서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숙려도 하고 충분한 상담도 해야 한다. 공적 기관이 나서면 양육을 포기하더라도 이후 부모의 기록을 남겨둘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행 입양특례법상 의무인 출생신고를 꺼려 아이를 버리게 되는 문제는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해 해결하자는 대안이 주목받는다. 가족관계증명서 사용을 본인의 신청 외에는 엄격히 금지하는 쪽으로 법을 바꾸자는 것이다. 현행 가족관계등록제도에는 혼외 자녀나 전혼(이전 결혼) 자녀의 기록을 빼고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일부’증명 제도가 있으나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혼외 자녀나 전혼 자녀의 기록까지 모두 포함돼 나오는 ‘전부’ 증명서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데, 전부 증명서는 본인 이외에도 배우자, 형제자매, 직계존비속이 위임장 없이도 발급받을 수 있어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높다. 국가의 유기아동 관리 체계가 아이를 키우기는 어렵고 버리기는 쉽도록 돼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위기가정 지원이 아니라 가정이 붕괴된 뒤 시설 지원 위주로 정책을 편다는 지적이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정부는 아동보호시설 등 대안보육 쪽에 더 지원을 많이 한다. 부모가 아이를 시설에 맡기려 할 때도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상담해 직접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시설에 아동을 맡긴 부모들에게 면접권을 보장하고 재정상태 파악 등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 아동을 원래 가정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용기를 내어 아이를 키우려는 미혼모들은 무엇보다 경제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여성가족부는 현재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2인 가구 기준 한달 126만6500원) 이하인 성인 미혼모에게 아동이 만 12살이 될 때까지 월 7만원, 최저생계비 150%(2인 가구 기준 한 달 146만1347원) 이하인 청소년 미혼모에게 월 15만원의 양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기저귀 등 자녀 양육에 필요한 물품 구입비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미혼모자 시설과 일반모자 시설 정원을 다 합쳐도 2000가구 안팎이다. 한해 출산하는 미혼모가 6000~1만 명으로 추정되는 것을 고려하면 어림없는 수치다. 베이비박스와 입양특례법을 둘러싼 논란은 뜨겁다. 그러나 그에 앞서 유기 아동 수가 늘어나는 이유와 그에 걸맞은 근본적인 대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베이비박스를 이용하는 대다수인 미혼모에 대한 차별 해소와 지원만이 핏덩이로 버려지는 아이들의 서글픈 울음을 달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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