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임기 內 규제 20% 폐지… 규제비용총량제 올 7월 시범 운영

규제비용총량제가 오는 7월부터 시범 시행될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 전체 경제규제의 20%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올해 안에 10%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핵심 규제를 없앨 경우 가중치를 부여하는 식으로 채워나간다는 방침이다. 규제비용총량제는 새로운 규제를 하나 만들 경우 그와 ‘동일한 비용이 드는’ 다른 규제 하나를 없애는 ‘코스트-인, 코스트-아웃’ 방식을 적용한다. 또한 금지조항을 먼저 나열한 후 나머지를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과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규제 효력이 저절로 사라지는 ‘일몰제’도 시행한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개혁은 벌써 각 분야별로 만만찮은 진통이 예상된다.

산더미 규제, 어떻게 줄일까

▲ 2014 규제개혁 방안 (자료:국무조정실)
지난 3월 20일 박근혜 정부는 ‘규제시스템 개혁방안’을 내놓았다. 이른바 ‘규제개혁 끝장토론’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 2013년 기준 1만5,269건에 달하는 등록 규제를 임기 말인 2016년까지 20% 폐지해 1만3,069건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올해까지 전체 규제 10%를 먼저 감축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각 부처는 4~6월까지 규제정비계획을 세우고 해당 실적을 공개해야 한다. 규제 신설 역시 엄격히 관리한다. 오는 7월 1일부터 시범 운영되는 규제비용총량제는 규제를 새로 도입하면 같은 비용에 상응하는 다른 규제를 폐지하는 ‘코스트-인, 코스트-아웃(cost-in, cost-out)’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산업통상자원부가 추가비용 21억 원이 발생하는 도시가스 배관 안전진단 규제를 신설하기로 했다면 해당 금액 이상이 들어가는 다른 규제를 하나 폐지해 전체 비용이 늘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영국의 경우 ‘원 인 투 아웃(one in two out)’, 즉 규제 하나 신설 시 두 건을 폐지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는 여기에 비용 개념을 추가한 셈이다. 정부는 이 같은 방식을 국토교통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기업청 등 총 7개 부처에서 먼저 시범 운영하고 내년 1월부터 이를 전면 도입할 예정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2004년에도 규제총량제가 도입됐지만 비용에 관한 고려가 전혀 없었던 데다 건수 기준으로 행정지침을 내려 실효성이 없었다”며 이번 규제비용총량제가 마련된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규제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를 정확히 판단 내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부처는 관련 연구원이나 전문가 그룹에 규제비용의 산출을 맡기고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가 규제비용의 등급을 만들도록 할 계획이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은 “그동안 경제단체와 학계는 물론 각 기업 부처 간 다양한 협의를 거쳐 이번 규제개혁안을 마련했다”며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신설되는 규제에는 모두 ‘네거티브(negative) 방식’과 ‘일몰제’가 적용된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규제가 ‘해서는 안 되는 사항’들을 강조했다면 네거티브 방식은 원칙적으로 모든 내용을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금지사항을 둔다. 일몰제는 5년 단위로 규제의 효력을 자동으로 없어지게끔 하는 제도다. 현재 전체 규제의 12%(1,800건)에 그치는 일몰 비율을 올해 30%까지 확대해 임기까지 50% 선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약 1만4,000여 건에 달하는 행정지침과 같이 ‘숨어있는’ 규제들을 발굴해 없애기로 하고 미등록 규제는 아예 효력을 없애도록 했다. 현재 정부 중앙부처 가운데 규제가 가장 많은 부처는 국토부다. 건설 및 부동산 관련 규제가 많아 전체 규제의 약 16%를 차지한다. 박재순 규제개혁법무담당관은 “규제총점관리제를 도입하여 단순히 규제 수를 줄이는 형식적인 개혁이 아니라 규제의 강도나 적용범위 등을 면밀히 분석해 체감상 파급효과가 큰 규제를 우선 정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현장형 규제에 관해서는 해당 부처 의무소명제도를 도입한다. 부처는 3개월 안에 규제 이유를 반드시 소명해야 하며 이유가 타당하지 않으면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의를 받는다. 또한 현장형 규제 개선에 민간 분야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민관합동추진단이 운영된다.

‘환영’ vs ‘반대’, 분야별 희비 엇갈려

 
규제개혁 끝장토론 일주일 만에 분야별 개혁을 위한 후속 조치가 발표됐다. 계획안은 중소ㆍ중견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 벤처ㆍ창업 확대 및 5대 유망 서비스산업의 규제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올 7월부터 테마파크나 놀이공원 등 유원시설 내에 푸드트럭이 허용된다. 푸드트럭은 일반 화물차를 개조해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시설로 그동안은 금지돼왔다. 지난 1차 토론에서 두리원 FnF 배영기 사장은 “식품위생법상 푸드트럭 자체가 불법이고, 자동차 관리법상으로도 일반트럭을 개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이에 국토부 서승환 장관은 “빠른 시일 내에 1톤 화물차의 푸드카 변경을 적법 조치하겠다”고 답했고, 정승 식약처장 역시 식품위생법 개정을 약속하며 푸드트럭 영업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자동차관리법ㆍ식품위생법 등 관련 법령을 7월까지 개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도 있다. 위생ㆍ안전 문제 때문에 규제돼왔던 푸드트럭 개조를 허용하자 경쟁 관계인 노점상들이 “불법이기는 마찬가진데 한쪽만 양성화하면 어떡하느냐”며 들고 일어났다. 형평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한편, 학교 앞 호텔 건립 규제도 완화된다. 지난해 9월 박 대통령이 ‘학교 앞 호텔 규제완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이후 구체적인 사안이 확립된 것이다. 게임장, 단란주점 등 청소년 유해시설이 없다는 조건 하에 학교 근처에 고급 관광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관광진흥법이 개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 같은 훈령을 제정하기 위해 지난해 10월~12월 시범사업을 벌인 결과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 10명 중 6명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호텔 등 숙박업소 건립을 추진하는 사업주에게 사업계획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정화위원 36명을 상대로 전수조사한 결과, 61.1%인 22명이 반대하고 나머지 14명이 찬성했다. 교육환경 보호를 위해 정화위 심의제도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 같은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학교 앞 관광호텔 규제를 풀어주기로 결정했다. 교육부 규제개선추진단 박백범 기획조정실장은 “시범사업과 동일하게 훈령 제정이 추진될 것”이라 밝혔다. 이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위원들은 “학교위생정화구역 무력화는 결코 규제개혁이 될 수 없다”며 반대 성명을 냈고 학교와 학부모들의 반발도 거세다. 이에 따라 최근 대한항공이 종로구 덕성여중ㆍ고 및 풍문여고 근처에 지으려던 7성급 한옥 호텔 사업이 본격 도마 위에 올랐다. 호텔 부지와 바로 맞닿은 3개 학교는 “교실에서 호텔 방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며 학습권 침해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업계 측은 현재 서울에만 2,000여 개의 학교가 있고 모두 정화구역이 설정돼있어 더 이상 호텔을 지을 부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문제에서 보듯 단순히 정부가 제도 개선만을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반대 여론이 있다면 충분히 서로 의견을 수렴하고 신중한 논의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개혁이 가능하다.

초스피드 규제, 목표만 채우면 끝?

▲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각 부처는 박 대통령이 규제개혁과 관련해 “빠른 시일 내에 개선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바로 일주일 만에 결과물을 내놨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이러한 속도전이 과연 바람직할지는 의문이다. 현오석 부총리는 “내부지침 또는 행정조치로 즉시 해결 가능한 과제는 4월까지, 행정법령 개정과제는 6월까지 완료하고 법률의 제ㆍ개정이 필요한 과제 역시 조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1차 회의에서 제기된 52건 중 41건의 규제를 연내 개선하기로 하고 27건은 6월까지, 14건은 올 연말까지 규제를 폐지 혹은 완화할 예정이다. 물론 경제 살리기의 한계에 직면한 정부로서는 돈 한 푼 들지 않는 규제개혁의 장점을 두 손 들고 환영할 만하다. 실제로 정부는 올 상반기 안에 규제개혁 로드맵을 완성하고 눈에 확연히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겠다는 심산이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집권 첫해가 아닌 2년 차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임기 내에 마무리하려면 추진 동력이 있는 첫해에 제대로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속도전의 폐해가 벌써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중견기업 세제 부담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자 정부는 연구ㆍ개발(R&D) 세액 공제를 체계적으로 개선, 보완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잦은 세무조사에 관해서도 규제완화 추진계획을 밝혔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정부의 정당한 과세행위까지 규제개혁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비판이 일고 있다. 말 그대로 ‘세금을 깎아 달라’는 무리한 요구나 다를 바 없는 건의가 ‘규제개혁’이라는 이름하에 여과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규제완화가 기업들의 무리한 민원 해소 창구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관계자는 “과거에도 환경규제에 묶여 개발할 수 없던 토지를 기업이 싼값에 사들여 공장 부지로 바꿔 달라는 요구를 수차례 받은 적이 있다”며 “이번 규제완화 역시 악용하려는 기업들이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재부 정은보 차관보는 “시장가격의 조정 요구나 새 규제를 만들어달라는 등 규제개혁에 맞지 않는 건의는 수용하기 곤란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처럼 ‘나쁜 규제는 없애고 착한 규제는 살린다’고는 했지만, 어떤 규제가 ‘나쁘고 착한지’를 들여다볼 시간은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 무작정 올해까지로 기한을 정해놓고 10%를 골라내겠다는 목표가 자칫 보여주기 식 행정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규제완화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규제 자체를 사회악으로 보는 시선도 이미 부작용을 낳고 있다. 박 대통령의 ‘암 덩어리’, 현오석 부총리의 ‘독버섯’ 발언에서 보듯 너도나도 규제를 공통의 적으로 돌리려다 보니 실제로 꼭 필요한 규제도 불필요한 경우로 치부되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다. 농림부는 얼마 전 인삼산업법 시행령을 내리고 지정된 검사기관에서 인삼을 검사하도록 하는 안정성 확보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불필요한’ 규제라며 몰아붙였다. 국토부 박재순 규제개혁법무담당관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 규제와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규제들은 반드시 지켜나갈 것”이라며 “특히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는 신중히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각 부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개혁안을 쏟아내면서 크고 작은 충돌도 이어졌다. 지난 3월 공정거래위원회와 국토부는 건설사들의 하도급 대금 지급보증 면제 여부를 놓고 관련 법안이 충돌하는 진통을 겪었다. 같은 사안을 두고 공정위는 제도를 수정해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반면 국토부는 오는 8월 시행되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에서 관련 규정을 폐지해버린 것이다. 공정위 신영선 사무처장은 “건설산업기본법은 일반법이고 공정위 하급도법은 특별법이기 때문에 특별법인 공정위법이 먼저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 적용의 순서를 떠나 이처럼 같은 사안을 두고 각 부처가 상반된 의견을 내놓은 것은 앞으로 수많은 규제개혁에 있어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지적된다. 법안 충돌뿐 아니라 규제개혁을 둘러싼 부처 간 마찰을 조절하려면 각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이해관계를 모두 포괄해서 추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무조건 줄이고 보자”, 실효성 논란

 
이번 규제개혁에서 완화되는 항목 중 또 하나는 공인인증서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입고 나왔던 이른바 ‘천송이 코트’에서 시작된 논의가 지난 1차 토론에서 순식간에 ‘규제 척결’ 대상으로 부상했다. 국내에서 온라인쇼핑몰을 이용하려면 공인인증서가 필요한데, 외국인들에게는 이 인증서가 발급되지 않아 그동안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왔다. 이에 전자금융감독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하기로 하고 앞으로 내ㆍ외국인 모두 공인인증서 없이도 인터넷쇼핑몰에서 물건을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애초 금융위원회는 30만 원 이상 전자상거래 시 공인인증서를 의무로 사용해야 하는 현행 규정을 손질, 외국인에게만 이를 면제해줄 방침이었지만 내국인에게도 확대 적용했다. 이제는 일일이 액티브엑스(Active X)를 깔고 공인인증서나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가 없는 인터넷쇼핑몰 개설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완화 방침이 실제로 얼마나 활용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의무화 규정을 완화한다고 해도 사고 발생 시 책임이 면제되는 공인인증서 대신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새로운 인증 기술을 도입할 사업자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지적이다. 안정성이 인증되는 다른 대체수단을 먼저 찾아놓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누가 봐도 타당한 순서인데 애초에 이러한 문제는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은 듯 무작정 제도만 풀어놓는 셈이 돼버렸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안 문제에 자신 없는 업체들은 계속 공인인증서를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김기창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율적으로 보안기술을 선택하게 하는 대신 사고에 대해 업체도 충분히 책임을 지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규제개혁의 표피적인 접근”을 지적했다. 업체들 역시 규제완화 후 따로 보안기술 문제에 관해 특별한 언급이 없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도 규제완화에 필요한 사전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부처별 사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은 채 오로지 목표치만 강조하다 보니 규제개혁 작업이 본격 궤도에 오르기도 전부터 이미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정부 부처에 따르면 일부 부처에서 규제비용총량제 의무 적용을 피하기 위해 ‘예외 인정’을 추진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국무조정실은 규제 건수가 20건 미만인 부처의 경우 얼마 되지 않는 기존 규제를 없애기가 모호하기 때문에 의무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준 건수에 해당하는 부처는 국무조정실을 비롯해 농촌진흥청, 국세청, 병무청, 통계청, 권익위원회, 인권위원회 등 7개 부처다. 지난달 1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은 “규제개혁을 총괄하는 국무조정실이 정작 그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꼬집었다. 이에 국무조정실 윤순희 규제정책과장은 “의무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더라도 자율적으로 규제비용총량제를 적용할 방침”이라고 뒤늦게 해명했다. 국무조정실이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자 다른 부처들도 슬슬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다. 국방부와 외교부는 외교 및 안보 특수성을 감안해 ‘우리도 대상에서 빼달라’는 요청을 국무조정실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역시 시장경제와 직결된 120개 규제를 개혁 목표 산정에서 빼줄 것을 요구했다. 담합이나 불공정거래 금지 등 국제적으로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규범은 폐지 대상에 넣기 어렵다는 이유다. 실제로 정부가 규제개혁의 모범사례로 벤치마킹한 영국 역시 규범적 성격을 띠는 규제나 협약들은 개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타당한지 아닌지에 앞서 그러한 기본적인 사항들조차 충분히 검토해보지도 않은 채 규제개혁부터 외치고 본 성급함은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총량’보다 중요한 질적 개혁

 
정부는 과거 규제개혁의 실패를 교훈 삼아 건수가 아닌 비용을 함께 고려한 제도를 실시한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총량’을 넘지 않게 맞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수치적 목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더구나 개혁의 기간을 내세워 정해진 시기까지 무조건 규제의 20%를 줄이겠다는 것도 결국 양적 목표에 해당한다. 해당 내용에 대한 검토나 분석보다 이러한 수치에만 급급하다면 실질적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책상에 앉아 법조문 한두 줄 없애고 마는 규제완화보다,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규제를 푸는 것도 좋지만 현실과 맞지 않는 비효율적인 규제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게 우선”이라며 정책 관계자들의 탁상행정을 경계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불필요한 규제는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일례로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네일아트의 경우 해당 업종을 차리기 위해서는 손톱 관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미용사 국가기술자격 면허를 반드시 따야 했다. 관련법이 생길 때만 해도 네일 미용이라는 업종이 없었고, 피부관리업은 2008년 별도 업종으로 분리됐지만 네일아트업은 여전히 해당 면허를 받아야만 창업이 가능했다. 보건복지부는 올 하반기부터 미용업 세부업종으로 네일미용업을 따로 만들고 이러한 규제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네일아트가 대중에게 제대로 자리 잡은 지 꼬박 10년 만이다. 이러한 한 가지 예만 보더라도 규제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무작정 목표치를 채워 총량제를 시행하고 보는 것만이 개혁은 아니다. 어떤 분야에 방해가 되는 규제는 무엇이고 필요한 규제는 무엇인지, 해당 규제를 없애거나 만들면서 어느 한쪽에라도 형평성이 기울지는 않는지 하나하나 따져서 효율적인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규제개혁이 우리 경제에 봄바람을 몰고 올 것인지 뿌연 먼지와 황사만을 일으킬지는 아직 미지수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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