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 2주년을 돌아보는 평가와 엇갈린 시선
지난 4월 방한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비롯한 전시작전통제권, 동북아 사태 등을 논하고 국새를 반환하기로 하는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 가운데 가장 관심이 집중된 곳은 역시 경제 분야였다. 한ㆍ미 FTA의 2주년을 평가하는 동시에 각자 협력관계를 지속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양국의 미묘한 분위기도 감지됐다. 속내를 직접 드러내기는 힘들지만 모든 관계에는 입장 차가 있기 마련이다. 경제적 이익이 걸려있다면 더욱 당연한 얘기다. 한ㆍ미 FTA를 바라보는 양국의 시선 및 분야별 평가를 짚어보기로 한다.
한ㆍ미 FTA 2주년, 양국 평가는?

농산물ㆍ식품 가격 소비자 기대 못 미쳐

(사진제공: 롯데마트)
미국, ‘원산지 표기’ 걸고넘어져
한편 미국 측은 그동안 한국의 까다로운 원산지 증명 요구 때문에 수출에 제약을 받고 있다며 직접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관세청은 작년 6월경 미국산 오렌지 주스에 들어가는 농축액 원산지가 불분명하다고 판단해 증명을 요구한 바 있다. 미국산 주스에 브라질산 오렌지 농축액이 들어간 단서를 포착한 관세청은 “원산지 규정 위반 혐의가 있다”며 미국 4개 업체를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자칫 통상 마찰로 비화될 뻔했던 해프닝은 “브라질산이 섞인 사실이 없다”는 결론이 나면서 특혜 관세를 계속 유지하는 쪽으로 무마됐다. 오렌지 주스의 관세는 원래 54%였다. FTA 발효 이후 현재는 0%다. 다른 분야에서도 미국의 이 같은 불만은 멈추지 않았다. 캠리ㆍ시에나ㆍ벤자 등 미국 공장에서 생산된 도요타자동차 9천여 대는 애초 원산지 미달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그대로 결정이 나면 기존 관세 8%를 적용받아 그간 받은 혜택 100억 원을 물어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도요타 측은 지난 2월 한국으로 들여오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 리스트를 담은 추가 소명 자료를 관세청에 제출했다. 오바마 방한으로 한ㆍ미 회담을 바로 코앞에 둔 4월 21일, 도요타에서 생산한 자동차가 35% 이상 미국에서 생산한 부가가치임을 인정하는 최종 적합 판정이 내려졌다. 여기에 ‘정치적 입장’이 얼마나 고려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미국 측은 이처럼 꾸준히 한국의 원산지 증명 요구를 문제 삼아왔고 그것이 한ㆍ미 FTA 협상에 주요 걸림돌인 것만은 분명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말 ‘2014년 국가별 무역장벽ㆍ위생검역ㆍ기술장벽 보고서’를 통해 “한국 세관이 원산지를 입증하는 데 지나치게 어려운 방식으로 검증작업을 수행함으로써 한ㆍ미 FTA에 따른 혜택 자격을 훼손시켰다”는 우려가 업계 전반에 퍼져있다고 분석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이번 회담 결과 그동안 원산지를 증명하기 위해 행해왔던 서면조사, 자료 요구, 현지 검증 등 복잡한 절차가 모두 사라지고 양국 정부기관이 발행한 증명서만으로 대신하는 간소화가 이루어지게 됐다. 이번 한ㆍ미 정상회담 만찬에는 다양한 전통음식과 함께 미국산 쇠고기와 미국산 와인이 식탁에 올랐다. 원산지 증명을 둘러싼 미국 측 불만에 내미는 화해의 만찬이었을까. 원산지 증명 간소화에 합의하면서 미국으로서는 배부른 만찬을 즐기며 원하던 바를 기분 좋게 이루고 떠난 셈이 됐다.
협상 주도권 카드로 부상한 TPP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한국 방문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한ㆍ미 FTA의 ‘완전한 이행’을 두고 서로 의견을 나눴다. 당장 우리 정부로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ㆍTrans-Pacific Partnership) 문제가 가장 큰 화두다. TPP는 미국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블록이다. 2015년까지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의 관세 철폐와 경제 통합을 목표로 뉴질랜드, 칠레,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 4개 나라가 협정을 맺은 뒤 2008년 미국의 합류를 시작으로 참여국이 12개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일본도 가세했다. 참여국 인구 7억8,000만 명, 무역규모만 10조2,000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 협정으로, 참여국 GDP가 전 세계의 38%를 차지하는 최대 규모의 지역경제 통합체라 할 수 있다. 두 지역 간에 이뤄지는 FTA와 달리 다자간에 진행되는 TPP는 상품ㆍ서비스ㆍ투자ㆍ규범ㆍ지적재산권 등을 일괄 타결하는 것이 협상 원칙이다. FTA보다 개방수준이 높다는 뜻이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TPP에 뛰어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TPP에 합류하기 위해 기존 참여국들과 예비 양자협의를 진행중이다. 이에 미국 측은 “한국의 TPP에 대한 관심을 환영한다”면서도 “TPP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한국과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의 TPP 참여 조건을 한ㆍ미 FTA의 협상 카드로 이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실제 이번 오바마 대통령 방한에서 원산지 표기 간소화가 이루어졌고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원산지 증명 문제가 원만히 해결된 만큼 양국이 공동 문건을 발표할 수 있을 만큼 이견이 서로 좁혀졌다”고 전했다.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비서관은 “원산지 규정 등 한ㆍ미 FTA 이행과 TPP 참여 문제가 연관된 것은 아니다”라고 못 박으면서도 “다만 한ㆍ미 FTA 이행이 양국 간 통상 이슈였던 만큼 이 문제가 풀리면 TPP 논의도 더욱 수월해질 것”이라 내다봤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정상회담에 이어진 만찬에서 “한ㆍ미 FTA가 TPP의 좋은 모델이 됐으면 좋겠다”고 언급해 FTA의 완전한 이행을 우리나라 TPP 참여 조건으로 연계하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따라서 원산지 간소화뿐 아니라 앞으로 소고기 시장 추가 개방과 쌀 관세화 등을 미국 측이 추가로 요구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조원동 수석은 “아직 우리나라는 TPP 참여 의사를 공식화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TPP 참여 시 우리 정부가 갖게 될 이해득실을 파악하고 있는 단계로 보면 된다”고 전했다. 농ㆍ축산업계의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TPP 참여를 서두르다가는 오히려 사회적인 저항에 부딪힐 수 있음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TPP가 기대만큼 ‘실익’이 크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TPP에 참여하는 12개국 중 우리와 FTA를 맺지 않은 국가는 일본 등 3개국에 불과해 참여한다 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 점을 판단해 예비 양자협상에서 참여 여부를 결정하고, 12개국이 모두 이견을 보이지 않을 경우 공식 참여가 이루어지게 된다. 여기에 가장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바로 미국인 것이다. 정부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두기 위해 노력했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화여대 최원목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TPP라는 거대한 경제 블록이 자리 잡는다면 참여시기에 따라 대한민국의 20~30년 미래가 좌우된다”며 “(원산지 간소화 등의)입장료를 다소 지불하더라도 원년 멤버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대구대 김양희 경제학 교수는 “본질적으로 TPP는 한ㆍ미 FTA와 유사품”이라며 “참여시기는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저탄소車 협력금 제도, 한ㆍ미 업계 모두 ‘반대’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앞선 보고서에서 저탄소협력금과 한국의 자동차 파노라마 선루프 결함 조사 등을 대표적인 비관세 규제로 문제 삼기도 했다. 자동차 분야의 비관세 장벽이 사라져야 TPP 참여 협상도 수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저탄소협력금제를 도입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차를 구매 시 보조금을 지원하고 반대로 배출량이 많은 차에는 부담금을 매기는 이른바 ‘탄소세’를 부과한다. 중형차와 대형차에 편중된 국내 자동차 소비문화를 소형ㆍ경차 중심으로 바꿔보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제도다. 지난해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볼 경우 보조금을 받게 되는 모델은 BMW 320d와 폭스바겐 제타 1.6TDI 블루모션 등으로 약 50만 원가량을 지원받는다. 일본 하이브리드 차량도 약 50~300만 원까지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BMW 520d와 벤츠 E220 CDI 및 아우디 A6 2.0 TDI는 부담금이 면제된다. 그러나 한국 모델의 경우 그나마 효율성이 높다고 광고해온 기아차 모닝과 경차인 한국지엠 스파크도 전혀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제도가 아직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시행된 바가 없다며 국산 자동차 산업의 보호를 호소하고 나섰다. 한국자동차조합 최문석 기술실장은 “부품업체 입장에서 이 제도는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어도 국산 차의 친환경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6~7년 뒤에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2015년 1월로 법 시행이 확정”이라고 밝히며 “다만 국산 차의 친환경 기술 부족으로 피해가 예상된다는 지적을 수용해 적용 기준의 완화를 검토중”이라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탄소세 논란은 미국 측에 의해서도 제기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방한 시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주최로 국내 주요 재계 인사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자동차, IT, 유기농 식품 등 한ㆍ미 양국이 공정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아직 몇 가지 해결과제들이 남아 있다”며 한ㆍ미 FTA 완전 이행의 걸림돌 중 하나로 ‘자동차’ 분야를 언급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한국무역협회 한덕수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허창수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에이미 잭슨 대표를 비롯해 한국타이어 서승화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미국 정부는 그간 저탄소협력금제가 도입되면 미국 자동차업체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GM과 포드 등 중대형 가솔린차 비중이 많은 미국 자동차 업계로서는 보조금이 독일산 디젤차와 일본산 하이브리드에만 집중되는 점을 두고만 볼 수 없는 처지다. 친환경 기술 여력이 부족한 탓에 적어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미국과 국내 자동차 시장이 의견을 일치한 셈이다. 미국 정부는 한발 더 나서 저탄소협력금제를 기존 연비 규제와 더불어 ‘이중규제’로 규정하고 배기량에 따른 차등 과세를 금지한 한ㆍ미 FTA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환경부 이에 대해 “탄소세 부과 기준은 배기량이 아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라며 “저탄소협력금제는 차종 간 세율 확대가 목적이 아니며, 한ㆍ미 FTA에도 전혀 저촉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ISD 수정불가’ 공식화… FTA를 바라보는 두 시선
그동안 한ㆍ미 FTA의 독소조항으로 논란을 빚어왔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ㆍInvestor-State Dispute)에 대해서는 수정불가 방침이 공식화됐다. 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국의 정책으로 손해를 봤을 때 국제중재기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한ㆍ미 FTA 논의 당시 해당 조항이 발표되자 야당과 각 시민단체 등은 “국내 사법제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냐”며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2011년 국회 비준 당시 ‘한미 FTA 재협상 촉구결의안’이 여야 합의로 채택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주최로 열린 ISD 공청회에서도 뚜렷한 의견 합의를 보지 못한 채 수정불가 판단이 내려지자 “ISD에 관한 정부 용역결과가 ‘장밋빛 찬양’ 일색으로 가려졌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법무법인 도담 김익태 변호사, 서울대 이재민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제통상연구소 이해영 소장, 고려대 이재형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이해영 소장(한신대 교수)은 “한국 주식시장이 미국 자본의 투기장이 되고 있는 상황에 ISD가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한ㆍ미 FTA 협정문은 미국 통상법 2102조 B-3항을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임을 지적하며 “전 세계 어느 협정에서 상대국의 국내법을 협정문에 심어놓는 경우가 있나”고 비판했다. 반면 이재형 교수는 “ISD를 비롯한 투자 관련 규정들은 앞서 지적된 우려 사항들을 모두 반영한 결과”라며 반박했다. 앞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우태희 통상교섭실장은 “ISD는 투자자 보호와 국가의 규제 권한이 균형을 이뤄 국내 법ㆍ제도와 조화를 이루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며 “중재판정부가 적용 배제와 예외ㆍ유보 등 공공정책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 ‘12장짜리’에 불과한 요약 보고서에 강한 의구심을 품은 야당 의원들이 T/F 논의 자료와 용역보고서 자료를 전면 공개하라고 요구하자 산업통상자원부 윤상직 장관은 “일부 협상 전략이 노출될 수 있다”며 거부해 논란은 더욱 커졌다. 여당인 새누리당 이현제 의원마저 “너무 낙관적인 결과”라며 지적하고 나섰다. 일부에서는 미국식 시장만능주의의 위험성이 세계 금융위기로도 나타난 사실을 외면하고 한ㆍ미 FTA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을 ‘시대착오적’이라고도 표현했다. 엇갈리는 시선 속에 민생경제는 더욱 제 갈 길을 잃고 만다. 적어도 바람직한 FTA라면 한쪽에 끌려가는 모양새만은 피해야 할 것이다. <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