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스(SARS)와 유사한 질병이 나타났다. 지난 2002년 아시아에서 처음 발생한 사스는 이후 유럽ㆍ북아메리카 등지로 확산되며 8천여 명을 감염시키고 사망자만 775명을 냈다. 이러한 사스와 유사 계통의 호흡기 질병으로 알려진 메르스(MERS)가 다시 한 번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 발견되면서 주변국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감염 경로나 속도가 사스만큼은 아니지만, 오히려 한 번 걸리면 그 치사율이 3~4배에 이르러 ‘사스급’ 공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낙타’가 옮기는 병이라 알려진 메르스는 과연 어떤 질병인지 미리 알고 대비해본다.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호흡기증후군 ‘메르스’
메르스(MERSㆍ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는 그 어원(Middle East)에서 알 수 있듯 중동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급성호흡기증후군이다. 지난 201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첫 환자가 보고된 이래 사우디를 비롯한 요르단,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로 중동 지역에서 감염자가 발생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메르스 공식 감염자는 2014. 6. 9 기준 총 700명으로 확인됐으며 이 중 287명이 사망했다. 이는 지난 5월 당시 발표한 자료에서 감염자만 무려 100여 명이 넘게 늘어난 수치이다. 올해 3월까지만 해도 사우디에서 공식 확인된 메르스 감염 환자는 162명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한 달 남짓 만에 감염 환자 수가 80% 넘게 증가했다. 애초 30%로 알려졌던 치사율은 이제 40%를 넘어섰다. 전염 속도는 사스보다 느리지만, 더 치명적이라 불리는 이유다. 사스(SARSㆍ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전 세계 8천273명을 감염시키고 775명의 사망자를 냈던 전염병이다. 이같이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공포를 몰고 왔던 사스도 치사율은 10% 미만이었다. 사스는 감염되면 10명 중 1명이 죽지만, 메르스는 3명 중 1명이 죽는다는 소리다. 메르스에 감염되면 주로 발열을 동반한 기침과 호흡곤란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이 같은 ‘호흡’ 관련 증세가 사스와 가장 유사한 부분이다. 메르스가 사스와 구분되는 점은 호흡기 증상 외에 급성 신부전증을 동반할 가능성도 함께 뒤따른다는 점이다. 메르스 감염자는 콩팥이 갑자기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급성신부전을 겪다가 중증으로 진행되면 곧 사망에 이른다. 메르스를 유발하는 원인 물질은 과거 사람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ㆍCorona Virus)로 불리다가 발병하는 지역적 특색이 더해져 현재와 같이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보통 5일 이내에 바로 증상이 나타나지만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14일까지도 잠복기를 거친다. 발열과 호흡기 증상, 즉 기침 및 호흡곤란과 폐렴이 시작되면 감염을 의심해봐야 하고 급성신부전 증세까지 가면 상당히 위험해지므로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유념해야 한다.
낙타 매개체 첫 증거 확인… 치료제 개발되나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의 원인 매개체는 정확히 발견되지 않은 상태였다. 낙타 혹은 박쥐가 매개동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대다수 이론이었으나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다. 그러다 최근 의학 전문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압둘라지즈 대학 소속 타리크 마다니 연구팀이 ‘병든 낙타에서 발견한 바이러스와 메르스에 감염돼 사망한 남성에게서 발견한 바이러스 게놈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타리크 마다니 연구팀은 낙타 9마리를 키우다 메르스에 감염돼 지난해 숨진 44세 사우디 남성을 대상으로 그동안 연구를 진행해왔다. 해당 남성 측근들은 사망자가 메르스에 감염되기 일주일 전 콧물을 흘리는 병든 낙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특히, 콧물을 흘리던 낙타의 코에 사망자가 직접 약을 넣는 광경을 보았다는 진술은 연구를 진행하는 데 결정적 단서였다.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되기 이전에도 지난 20여 년 동안 유사 바이러스 연구를 통해 낙타에게서 바이러스가 전해진다는 ‘추정’ 연구는 많았으나 직접적인 증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은 국내에서 기르는 모든 낙타를 대상으로 ‘메르스 전수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사우디 파하드 발구나임 농업장관은 작년부터 진행해온 가축 등록 작업에도 속도를 낼 것이라 덧붙였다. 가축 등록 조사에는 낙타를 비롯한 모든 동물이 포함된다. 전수 조사는 야생낙타로부터 샘플을 채취해 실시하며, 수입된 낙타 역시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 검사와 방역 조치를 함께 받을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치료물질 개발도 활발히 진행됐다. 그동안 치료 방법이 전혀 없던 사스와 메르스의 원인균인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복합물질이 발견된 것이다.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 및 베른대학 학자들로 구성된 다국적 과학자 팀은 지난 5월 30일(현지시각) 코로나바이러스가 인체에 확산되는 과정을 막을 것으로 기대되는 ‘K22’ 복합물질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K22가 초기 감기 징후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수준인 비교적 약한 형태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점을 발견하자 연구팀은 좀 더 강한 형태의 사스나 메르스 질병에도 항체로서의 능력이 있는지를 실험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PLOS 병원균이라는 전문 저널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는 호흡기 계통의 세포막을 차지한 다음 재생산 사이클을 시작하기 위해 이를 변형시켜 일종의 갑옷처럼 자신을 둘러싼다”고 설명하며 “K22는 그 같은 초기 단계에서 바이러스가 세포막을 통제하는 과정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바이러스의 생애 주기 가운데 인체에서 세포막을 차지하는 단계가 가장 핵심적인 발병의 원인임을 확인했다”는 연구팀은 “이 과정 동안 바이러스는 매우 민감해서 항바이러스 치료제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메르스 및 사스 치료는 간단한 내과 치료만을 행하고 있는 형편이다. 새로운 K22 복합물질이 개발됨에 따라 이를 이용한 실질적 치료제 개발에 투자가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주변국 급속 확산… 사망자 갈수록 늘어
2014.5.8 당시 ECDC 기준 메르스 통계
700명에 달하는 환자 가운데 벌써 300여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메르스는 이제 그 발병지 역시 중동을 넘어 세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알제리, 네덜란드 등지에서도 잇따라 감염 환자가 보고돼 지금까지 메르스 감염이 확인된 국가는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를 포함해 영국, 튀니지,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국 등 전 세계 20여 곳이 넘는다. 작년 6월 메르스 경보를 발표한 알제리는 사우디를 순례하고 돌아온 50대와 60대 남자 두 명이 호흡 장애 및 소화불량을 겪으며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에 최초 감염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지난 5월 발표했다. 네덜란드에서도 첫 감염 환자가 발생했다. 지난 5월 14일(현지시간) 첫 확진 환자가 나온 바로 다음날 두 번째 감염자가 함께 확인됐다. 두 사람은 모두 사우디에서 2주간 같은 숙소를 썼다고 네덜란드 보건부는 밝혔다. 미국에서 메르스 감염이 확인된 환자 2명 역시 사우디에서 근무하던 보건업계 종사자로 확인됐다. 이들은 각각 미 중동부 인디애나주와 동남부 플로리다주에서 발견돼 만약 전염 경로가 낙타가 아닌 사람이나 공기, 그 밖의 물질일 경우 미국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우려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메르스가 공기를 통해 감염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감염 환자가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비슷한 시기 사우디에서는 감염 환자 중 3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WHO 글렌 토마스 대변인은 급증한 치사율에 대해 “전체 인구 대비 감염 환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들어 아직 비상사태를 선포할 시기는 아니라는 뜻을 전했다. 지난 5월 13일 제5차 국제보건규약 비상위원회를 소집했던 WHO 측은 메르스 확산이 공중보건에 심각한 위협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현재까지는 ‘사람 사이’에 지속적으로 전염이 이뤄진다는 증거가 없는 만큼 전 세계적으로 공중보건비상사태(PHEICㆍ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를 선포할 단계는 아니라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 가운데 사우디 보건장관 대행을 맡고 있는 아델 파키흐 노동장관이 지아드 메미시 보건차관을 해임했다고 사우디 보건부는 전했다. 해임 사유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보건차관의 메르스 대응 미숙 때문으로 알려졌다.
악수 한 번에 전염? 사람 간 감염 가능성은 지난 5월 미국 내에서 발견된 메르스 감염자와 접촉한 한 남성이 메르스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자, 메르스 바이러스가 사람 간 감염되었을 가능성을 두고 비상이 걸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의 세 번째 공식 메르스 환자가 될 뻔했던 이 남성은 사우디를 한 번도 여행한 적 없이 첫 감염자와 단지 악수를 하고 4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으로 알려져 당국을 긴장시켰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미국 내 첫 감염 환자가 인디애나주에서 발생하자 그와 접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추적조사를 실시해 가벼운 감기 증상을 보이는 한 남성을 발견하고 곧 세부 검사에 들어갔다. CDC는 활성화된 메르스 바이러스를 진단하는 폴리메라아제 연쇄 반응과 혈액검사를 이 환자에게 실시한 결과 ‘혈액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였다’고 발표했고, CNN 등 미국 언론은 즉각 해당 사실을 ‘사람 간 첫 감염 사례’로 지목하며 일제히 보도했다. 하지만, 열흘 후 ‘추가 정밀’ 검사 결과를 담은 수정 진단서에는 메르스 항체 검출과는 전혀 상이한 결과들이 기록됐고, 결국 CDC는 종전 발표를 철회하고 이 남성의 혈액에서 메르스 항체를 발견했다고 전한 사실을 다시 정정했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내리기에는 2차 정밀검사에서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만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 내에서 메르스에 감염됐던 나머지 최초 환자 2명 역시 이미 건강을 회복해 증상에서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해프닝은 다소 혼란을 야기했을지라도 첫 환자 발생 후 초기 대응이 적절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히 첫 환자와 접촉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추적조사를 벌여 감염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파고든 점은 아직 감염의 모든 경로나 확산 과정이 알려지지 않은 메르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예방이자 조치임이 분명하다. 다만 추가 정밀검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공표가 이루어진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유 없는 불안감 조성은 결코 예방에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질병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2의 사스 사태 막아야 국내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의 국내 발생 가능성에 대비하여 검역, 감시 및 역학조사를 벌이는 한편 위기관리 전문가로 구성된 ‘메르스 중앙방역대책반’을 꾸려 지난달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와 공중보건위기대응사업단은 메르스의 특성, 환자 감시전략을 비롯한 국가 신종감염병 대응 정보와 개선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12일 ‘중동호흡기증후군 국내 유입 대비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포럼에는 신종 감염병 위기관리 업무와 연관된 지자체 및 의료기관 종사자, 병원체 진단분야 등 국내 전문가 100여 명이 참여해 중동 지역 중심으로 발생중인 메르스의 국내 유입에 대비하고 대응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내용들이 논의되었다. 특히, 메르스의 감염 특성과 위기평가 정보를 포함해 정부의 신종 감염병 대응 현황에 관해 폭넓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고려대 김우주 감염내과 교수는 “메르스의 경우 사람 간 전파능력은 없지만, 환자가족 또는 의료인 등 밀접접촉자에 의한 2차 감염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중동지역 여행을 통한 국내 유입 가능성이 있다”며 “감염환자를 조기에 발견하여 격리, 치료하는 것이 위기관리의 우선적 핵심”임을 강조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지역사회 의료기관과 병원응급실 등의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인플루엔자유사질환(ILIㆍInfluenza-like illness)과 중증급성호흡기감염(SARIㆍSevere acute respiratory infection) 환자 모니터링을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히며 이미 이를 수행중이라고 전했다. 질병관리본부 김성순 호흡기바이러스과장은 “메르스에 대한 유전자검사법을 이미 지난 2012년 12월 확립했다”며 “현재 17개 시ㆍ도 보건환경연구원 및 3개 국립검역소 지역거점센터에서도 진단검사가 가능하도록 실험실 관리도 완료되었다”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는 앞으로도 신종 감염병 위기관리를 위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지속적으로 수행해나갈 계획이다. <NP>
▲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주요 Q&A
Q. 중동호흡기증후군은 어떤 질병인가? A. 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MERS-CoV) 감염에 의한 질환을 말한다. 감염 시 중증으로 진행되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Q. 감염 시 어떤 증상을 보이나? A. 주로 발열을 동반한 호흡기 증상(기침 또는 호흡곤란 등)을 보이며 일부 사례에서는 급성신부전증을 보이기도 한다.
Q. 중동호흡기증후군은 어디에서 주로 발생하나? A.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지역에서 많은 환자가 발생했지만 최근 네덜란드, 미국, 영국 등으로도 확산되는 추세다.
Q. 중동호흡기증후군은 어떻게 감염되나? A. 명확한 감염원과 경로가 밝혀지지 않다가 최근 낙타를 통한 감염 가능성에 대한 연구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Q. 치료는 어떻게 하나? A. 예방용 백신과 치료제(항바이러스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아 증상에 따라 내과적인 치료를 한다. 최근 치료 물질 발견에 성공했으나 백신으로의 개발이 시급하다.
Q. 중동지역 여행중 해당 증상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A. 여행중 몸이 불편한 경우 먼저 가까운 의료기관을 방문해 치료받고, 해당 지역 영사관에 연락하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중동지역 여행 후 14일 이내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입국 시 공항ㆍ항만 국립검역소에 신고하고, 귀국 후에는 관할지역 보건소 및 의료기관에 반드시 내원한다.
※ 중동지역 여행 시 MERS 감염예방 수칙
1. 농장 및 동물과의 접촉(특히, 낙타)을 피한다. 2.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 낙타유(Camel milk)의 섭취를 피한다. 3. 손 씻기 등 개인위생수칙을 준수한다. 4. 사람이 붐비는 장소는 가급적 방문을 자제한다. 부득이한 경우 마스크를 착용한다. 5. 손으로 눈, 코, 입을 만지지 않는다. 6.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과는 밀접한 접촉을 피한다. 7.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마스크를 착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