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그리고 그가 당당히 걸어온 길

이제 사회는 정치인에게 한 인간으로서의 완벽한 도덕성까지 요구하고 있다. 임명 전부터 시작해 재임 기간 내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 민주화 투사에서 교육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 장관 시절을 거쳐, 일 잘하고 할 말 다하는 속 시원한 총리였다가 골프 파문으로 불명예 퇴임하기까지 20개월여의 관직 생활을 뒤로 한 채 물러난 그를 뒤돌아본다.


노무현 정부의 분권형 국정운영체제 도입에 따라‘실세형 총리’로의 입지를 굳혀가던 이해찬 의원이 총리직을 사임했다. 철도파업 첫날인 3·1절‘내기 골프’,‘황제 골프’를 쳤다는 이유가 여·야당과 민심을 돌아서게 한 것이다. 국민의 발이 묶인 긴급한 상황 속 그것도 다른 날도 아닌 3.1절에, 다른 스포츠도 아닌 접대 골프를 받으며 놀아나고 있었던 이 총리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주가조작 의혹이 있는 경제인 등 부적절한 관계의 사람들과 부적절한 시기에 취미생활을 즐긴 것이 문제가 되었다. 네티즌은 각종 패러디물을 게시하며 이 총리를 맹렬히 비난했고, 야당은 평소 눈엣가시이던 이 총리의 하루 빠른 사퇴를 촉구했으며 아프리카를 순방 중이던 대통령의 보호막조차 없었던 그 시기, 이해찬은 철저히 혼자될 수밖에 없었다. 여당과 노무현 대통령도 지방 선거를 앞둔 시점에 당의 이미지를 고려해 이 총리의 사퇴 의사를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다.

이해찬 전 총리가 골프로 물의를 빚은 것이 이번 일 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비난을 면치 못하게 했다. 이번 사건만으로 내려진 일벌백계의 강경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 일어난 강원도 산불, 남부지방 호우, 군대 총기 난사사건 등 어수선한 난국 때마다 골프장에 있어와 여러 차례 여론의 도마에 올랐던 전적으로 이와 같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총리직을 수행하던 20여개월 동안 정부의 크고 작은 사건이 터질 때 마다 그는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던 5선 의원은 추락했고 그동안 대통령을 향한 총탄을 막아오던 견고한 방패가 뚫리고 말았다.

거침없이 쏟아내던 직격발언

노무현 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며 2004년 총리 지명 때부터 큰 논란을 빚었던 이해찬 전 총리. 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바탕으로 이 총리는‘책임 총리’를 표방하며 역대 어떤 총리도 갖지 못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왔다. 이해찬 총리는 특히 국회 내 야당과의 관계에서 거침없이 실력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고 급기야 차세대 주자로 인식되기 직전이었다. 그동안 관료출신 분권형 총리로서 비교적 안정된 국정 운영을 한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던 능력 있는 국회의원이었다.

그런 그가 언제나 논란의 한 가운데 있어온 이유는 거리낌 없는 직격발언 때문이다. 야당과의 긴장관계를 형성시키며‘막말 총리’,‘오만 총리’라는 불명예스러운 직함을 얻기도 했다. 그의 직설적인 무대포식 화법은 국회의 격을 떨어트리고 품격과 체신을 잃는다며 반대세력을 키우는가 하면, 그의 지지자들에 의해서는 당당하고 숨김없는 솔직한 정치인의 시원한 한방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할 말 하다는 스타일의 소신에 찬 이 전 총리가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던 정치계에 개혁의 바람을 몰고 오기도 했으나 그만큼 격식을 차리지 않은 거침없는 발언 때문에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04년 국회 대정부질문 중“한나라당은 다 아는 것처럼 차떼기 하고 지하실에서 돈 받았던 정당 아니냐”는 이 총리의 한마디로 국회 공전 사태가 빚어진 경우가 있다. 계속해서 야당을 상대로“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는 퇴보한다”,“한나라당이 나쁜 것은 세상이 다 안다” 등 거침없는 자극적 발언을 이어왔다.“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은 용서해도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동아와 조선의 역사에 대한 반역죄는 용서 못 한다”며“동아와 조선은 역사의 반역자, 내 손아귀에 있다, 까불지 말라”는 대담한 대언론 공격까지 감행한 사람도 이 총리뿐이다.

한 기자간담회에서는“현재 시도지사 중에서는 대통령감이 없다고 본다”고 말하는 등 차기 대권 후보에 대해서도 서슴없다. 이밖에 수도권발전대책을 놓고 대립각을 높였던 손학규 경기도지사에게는“정치는 내가 한 수 위”라고 말하기도 하고, 차떼기당 발언에 대한 해명 요구를 향해선“그 점에 대해선 더 이상 드릴 말씀이 단 한 자도 없다”고 받아치기도 했다. 이 총리의 폭탄 발언은 여당도 비켜갈 수 없었다.“국회의원들이 국가정책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질의를 통해 파악하고 있다”며“단지 신문기사나 모아서 질의하는지 국가비전을 생각해서 하는 질문인지…”라고 꼬집는 등 절대 그냥 피해가는 법이 없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무례한 발언이기도 했지만 간지러운 곳을 대신 긁어준 통쾌한 경우도 한 두 번이 아니었을 지어라.

교육을 개혁하려한 장관

서울대 재학시절 민청학련 사건, 후에 정계 입문의 계기를 마련해 준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하며‘제 1세대 운동권’ 출신으로 꼽히는 이 전 총리의 과거가 지금의 그를 설명해 준다. 87년 본격적인 재야 민주화운동을 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에서 변호사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과 처음 운동권 일로서 인연을 맺었다. 그 후 두 사람은 13대 국회 노동위에서 활동하면서 5공 청문회 등에서 논리적인 언변과 날카로운 질문으로 각각 양당을 대표하는‘청문회 스타’로 떠오르기도 하였다.
이 후 대통령선거 기획 수석부본장으로 여야 정권교체를 이뤄낸 김대중 정부 때, 첫 교육부장관에 기용되어 교육개혁에 앞장섰다. 교원 정년단축, 대입제도 개혁, 두뇌한국21 사업 등 개혁정책을 쏟아내면서 교육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었다.“늙은 교사 1명 내보내면 젊은 교사 3명을 쓸 수 있다”,“하나만 잘해도 대학 간다” 등의 어록이 아직도 교육계에 회자되고 있고, 그 때 대책 없이 감행된 자율학습 폐지 등의 각종 정책으로‘하향 평준화’된 당시 학생들은‘이해찬 세대’라고 가름될 만큼 이해찬 식 교육개혁이 조소를 받기도 했다. 결국 교단의 엄청난 동요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났던 이 전 총리를 보는 평가도‘탁월한 교육개혁가’에서부터‘교육붕괴의 원흉’까지 다양했다. 결과는 실패로 끝났지만 모두가 절감하고 있는 교육 개혁을 밀어붙인 시도도 이해찬 전 장관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다. 개혁의 조급성만 개선했다면 탁월한 리더십과 조직 장악력, 추진력을 보이며 교육개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이 전 장관의 시도가 성공했을 것이라 회상하는 관계자도 있다.

못다한 말들과 아쉬운 뒷모습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는‘동아시아의 미성숙한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태국, 필리핀, 대만 등의 정정 불안과 함께 한국의 이해찬 전 총리 골프 파문을 비판한 바 있다. 신문은“사회 변혁을 위한 정책을 갖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적의 윤리 문제를 폭로하는 것에 몰두하는 동아시아 지역 특유의 미성숙한 정치행태”라는 말로 이 총리의 사퇴 문제를 분석하며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도 같은 사례로 거론했다. 정책에 관한 건설적인 논의는 하지 않고 이분법적 도덕주의적 잣대로 한 정치인을 매도시켰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파문 보름여만인 지난 3월 15일 이임식을 가진 이해찬 전 총리는“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는데 지난 열흘 동안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옷이 흠뻑 젖었다”며 이 같은 파문으로 사퇴까지 이르게 된 사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긴 비유를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라는 이 전 총리의 아쉬운 회고가 씁쓸하다.
전 총리의 골프 파문은 이제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 탄생이라는 대사건으로 잠재워 지며 이해찬이란 이름 세 글자는 조용히 사라져 가는 듯하다. 품격 있는 총리로 국회가 잠잠해 질 순 있어도, 이 전 총리의 굽힐 줄 모르는 발언으로 인해 당황하는 정계의 모습이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정치풍토에선 아직 이해찬 전 총리와 같은 인물이 시류를 탈만한 형국이 아닌 듯하다. 남들 비위를 맞추기 보다는 꿋꿋이 본연의 길을 걷고자했던 그 자신은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 해도, 조금의 빈틈을 보임으로서 그동안 굽힐 줄 모르던 당당한 모습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국회에 수차례 파장을 던져준 이 전 총리의 변화와 개혁을 향한 움직임이 다만 개인의 윤리적 티끌에 의해 더렵혀지지 않고 다시 한 번 햇빛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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