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해양경찰 5001함 하영대 순경 현장보고…"협상타결은 우리의 승리"

지난 4월 16일. 정기 출동을 끝내고 정박한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은 동해해양경찰서 5001함(함장 경정 정석준) 모든 승조원들에게 긴급 문자메시지가 전해졌다. ‘명일(17일) 09:00시 비상출동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 달콤했지만 불안한 휴식은 그렇게 끝났다. 다음날인 17일 이른 아침 출동의 닻을 올리고 결연한 표정을 머금고 5001함은 문제의 동해 EEZ로 향했다.

이미 그곳에는 삼봉호의 도착에 즈음해 부산과 목포, 제주의 3000톤 급 경비함정을 필두로 예하 1500톤, 1000톤, 500톤 급의 중대형 경비함정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번 임무의 심각성을 다시금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동해해양경찰서의 지휘를 축으로 현장은 5001함이 담당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책임이 막중해졌다. 바다 위의 이동 경찰서, 아니 지방본부에 달하는 권한을 받은 셈이다. 굳이 군대로 치면 사령부가 된 격이었다. 일 순시선 및 일 우익단체 선박 출현 시를 대비해 작성됐던 독도방어훈련 매뉴얼과 시나리오가 이번 작전에 맞게끔 수정, 보완돼 속속 하달됐다. 본청으로부터 내려온 매뉴얼에는 역시 5001함을 선도함으로 지정, 현지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끔 치밀하게 작성됐다.

6m 살인적 파도속 밤낮없이 실제방어훈련

삼봉호가 동해 EEZ현지에 도착하자 기상이 급속히 악화됐다. 함정 지휘부에선 2~3일간 계속될 것이라는 예보에 긴장하는 기운이 역력했다. 한반도 전역에 황사비가 내리고 강풍이 몰아칠 때 이곳 독도인근 해역에 집결된 수십 척의 해경 경비함정들도 초속 20m/s의 강풍과 5~6m의 살인적인 파도와 싸워야 했다. 승조원들은 일 탐사선의 접근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신라장군 이사부의 노여움이라고들 했다.
물론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도착 첫날부터 경비함정들 간 ‘일 탐사선 동해 EEZ침범 방어’를 위한 연합훈련이 시작됐다. 석양이 내리깔리는 오후 6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우리 측 1500톤 급 함정을 일 탐사선으로 지정하고 경비함정들이 단계별로 차단해 경고방송, 정선, 나포의 단계로 진행된 훈련이었다. 해경 3000톤 급 이상 경비함정 수 척이 모이자 넓디넓은 동해바다가 좁아보일 정도였다.
상황이 장기화 될 것에 대비해 함정유류와 승조원 부식재고량을 파악하라는 공문이 하달돼 긴장감은 한층 고조됐다.

다음날이 되자 일본 순시선의 출현이 잦아졌다. 그들 역시 우리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5001함의 지휘로 각 순시선마다 우리 측 함정이 악착같이 따라붙으며 영해선을 침범치 않도록 대응기동을 했다. 갑자기 하늘에는 낯설은 초계기가 저공비행을 했다. 늘 보던 우리 해군의 P3-C초계기가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일장기가 선명했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이미 KADIZ(korea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한국방공식별구역) 라인을 넘어서 있었다. 일본 방공식별구역 아래 한·일 중간 수역 내 우리측 EEZ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중전력으로는 더 이상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고독감마저 엄습했다. 최전방이란 이럴때 쓰라고 한 말인 것 같았다.

바다엔 대한민국 해경, 하늘엔 일본 초계기

3일째인 19일 역시 훈련의 연속이었다. 실제훈련과 통신훈련, 모의훈련의 연속이었다. 여전히 파도는 높았고 시야는 흐렸다. 멀미가 심한 여경들은 서서히 인내력의 한계를 보이고 있는 듯도 싶었다. 5000톤 급의 실상이 이러하니 다른 함정의 배멀미와 각종 악전고투는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위성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뉴스는 상황이 파죽으로 치닫고 있음을 알렸다. 이른바‘조용한 외교’기조에 대한 심각한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는 통수권자의 발언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장 적확한 매뉴얼과 다름없었다. 국가와 국민은 지금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마저 들었다.

본청 경비구난국장이 삼봉호에 편승해 현장을 진두지휘키 위해 울릉도로 향했다. 높은 파도를 정면으로 맞으며 밤을 새워 달렸다. 20일 새벽 동이 트기도 전, 경비구난국장이 본함에 무사히 편승했다. 고단한 새벽잠에 취해있던 승조원들은 모두 경비구난국장의 특별교육을 받았다. 이번 사태의 발생배경에서부터 일본 측의 노림수, 그리고 우리의 대응책과 작전을 망라한 총체적인 교육이었다.

교육을 마친 뒤 경비구난국장은 “최대한 작전을 잘 이해하시고 상황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기 바랍니다. 최후에는 탐사선과 정면충돌해 동해바다에 같이 죽는다는 각오까지 하십시오” 라고 말하자 일순간 현장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죽음까지도 고려해야 할 상황. 바로 ‘전투’라는 말이었다.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결국 피할 수 없는 충돌은 바짝바짝 다가왔다. 누구의 승리로 끝날 것인가. 다같이 죽게될까, 아니면 우리만 살게될까. 승조원들은 모두 미친듯 몰아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그 순간을 떠올리는 듯 했다.

"정면충돌해 동해바다에 같이 죽는다는 각오까지 하십시오"

4월 20일. 오늘 저녁 또는 내일 중 일 탐사선의 접근을 예상했다. 일 탐사선이 1차단선, 2차단선, 3차단선까지 뚫고 측량을 감행한다면 해경 경비함정은 결국 정면충돌을 택할 것이 분명해졌다. 해양경찰관 임용식 당시의 선서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전화 불통에 연락도 못하고 있는 가족들 얼굴도 하나씩 떠오른다. 잠시 내일의 결전장면도 스쳐 지나간다.

우리 경비함정들은 오늘 밤 모두 푸짐한 저녁식사를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적막한 심정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독도는 고요히 잠들어 있을 것이고, 성난 파도는 밤새워 우리를 요동치게 하겠지.

높은 파도로 인한 함정의 롤링과 피칭(파도로 인한 함정의 전후좌우 흔들림)때문이었을까, 잠자리를 설쳤다. 그러고 보니 함정은 밤새워 어딘가를 전속으로 달린것도 같다. 아침일찍 조타실에 올라 상황을 살펴보니 함정 간 진형이 바뀌었다. 3003함이 자이로 계통에 이상이 생겨 울릉도로 회항해 긴급 수리를 받고 있어 경비 공백을 메우기 위함이었다.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실제 기동훈련이 이뤄졌다. 뉴스에서는 한·일 외무차관 협상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대를 해야 하는 것인지, 이참에 따끔한 맛을 보여 주는게 옳은 것인지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타결이든 결렬이든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데 확실한 마침표를 찍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즉 협상은 양보를 전제로 하지만 이번 만큼은 원칙을 끝까지 고수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동해 EEZ수역에 전진배치된 1500톤 급 이상 부함장, 항해장 들이 경비구난국장으로부터 특별 교육을 받기위해 해경 헬기편으로 삼봉호에 긴급 소집됐다. 그동안의 훈련을 통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작전을 보다 명료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멀리 제주, 목포, 부산에서 올라온 동료들의 낯설지만 친근한 표정에서 진한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인 해양경찰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오늘도 사방이 어둑어둑해져서야 끝난 훈련 때문에 다들 파김치가 됐다. ‘싸우기 전에 과로로 쓰러지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흘러나왔다. 뉴스에서는 1차협상이 양측의 입장차이만 확인한 채 결렬됐다고 한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22일 오전 5시30분. 함내 사이렌과 함께 방송이 귓전을 때렸다. 종합훈련이었다. 조타실에는 이미 지휘부가 작전회의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오늘은 한·일 외무차관 간 최종협상을 하기 때문이었는지 강도 높게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해경 초계기와 헬기, 특공대까지 가용병력이 총 투입될 예정이다. 경비구난국장의 현장 총 지휘에 따라 각 함정은 횡열진과 종열진 등 각종 작전진형으로 수시 변형했고 해경 헬기와 초계기는 상공을 근접비행하며 지원했다. 공중에 떠서 정보수집과 훈련장면 촬영을 겸하던 해경 챌린저 초계기로부터 ‘현재 진형은 엑설런트(exellent)합니다’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훈련은 대성공이었다.

최종결렬 그리고 극적인 타결

오늘의 훈련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인 오후 6시쯤 뉴스에선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고 긴급 보도됐다.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승조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향후 사태의 추이를 예견하고 있었다.

본청에서 긴급 전문이 하달됐다. ‘협상결렬. 일 탐사선 금일 중 출항할 것으로 예상됨. 경비에 만전을 기할 것.’ 지휘부의 표정이 굳어졌다.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만이 남은 셈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할쯤 함정이 소란스러워졌다. 동료들에게 가보니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고 한다. 모두의 표정이 더없이 밝아졌다.

잠시후 5001함과 일부 함정을 제외하고 훈련 참가 세력은 원대복귀하라는 전문도 접수됐다. 분주했던 동해 EEZ가 다시 고요를 찾게 된 것이다.

우리는 다시 기본경비임무를 한다. 다른 경비함정들도 각자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언론은 조용해 질 것이고 한동안 독도가 이슈화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해양경찰 5001함은 한국령 독도를 지킴에 있어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믿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우리 삼봉호의 힘과 경비능력만 믿을 뿐이다. 힘의 우위의 중요성과 명분과 실리에 대한 숙고를 하게 된 기회였다. 협상타결이 마치 우리가 승리한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오늘밤은 깊은 잠에 빠져보고 싶다. 대한민국 해양경찰 5001함 독도 경비 중 이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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