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2천여 명 낸 가운데 장기 휴전 합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극적으로 무기한 휴전에 합의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공식 집계된 사망자만 2,209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민간인 피해자가 전체 70%를 넘는다.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한 어린이도 네 명 중 한 명꼴이다. 하마스를 공격한다는 명분치고 이처럼 무고한 피해가 계속되면서 국제사회에서 ‘도 넘은’ 이스라엘 공격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고, 이에 대한 의견 역시 분분했다. 팔레스타인 내에서는 옛 속담 내용을 일부 바꾼 “늙은이든, 젊은이든 계속 죽기 마련이고, 이들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슬픈 문구가 희생자들 앞에 놓이고 있다. 과연 이러한 공격은 ‘정당방위’였나 그저 복수를 위한 ‘무차별 학살’이었나.
이스라엘 가자지구 폭격, 그 시작은

이스라엘 사태를 바라보는 주변국들의 ‘눈치’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 아랍 세력에 맞서 싸웠다. 1967년과 1973년 제3차, 4차 중동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양상은 항상 ‘아랍’ 대 이스라엘 구도였다. 하지만 이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아랍권과의 갈등이라기보다는 더욱 세분화된 정치적ㆍ정파적 성향에 따른 것이다. 일부 아랍 국가들이 오히려 이스라엘 편에 서거나 침묵으로 일관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중동 협상가로 유명한 애런 데이빗 밀러 연구원은 최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아랍 국가들이 가자지역의 죽음과 파괴를 묵인하면서 하마스를 공격하고 있다”며 이번 사태를 논했다. 워싱턴 중동정책연구소 에릭 트래저는 CNN 방송을 통해 “이집트가 무슬림 형제단 정부를 끌어내리며 정권을 잡았다면 이번 사태는 무슬림 형제단과 연관된 실존 분쟁”이라며 “이집트로서는 팔레스타인 무슬림 형제단인 하마스를 보기 싫을 것이며 더구나 인접 영토에서 세력이 더욱 강해지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집트는 엘 시시 집권 이후 가자지구의 국경통제를 더욱 강화해왔다. 중동 정세의 안정을 추구하는 나머지 국가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이집트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등 이들 국가는 모두 무슬림 형제단의 세력을 견제한다. CNN에 따르면 “사우디와 이집트는 지금 이스라엘보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더욱 두려워한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한편,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TV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을 ‘광견병 걸린 개’에 비유하며 이스라엘의 민간인 살상을 “집단 학살이자 역사에 남을 대규모 대재앙”이라고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AFP통신에 따르면 가자지구 공격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란에서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란은 하마스의 상당수 무기를 수출해주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슬람 세계는 팔레스타인의 무장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히는 이란의 입장은 수니파 대 시아파, 이란 대 사우디ㆍ아랍 등으로 구분되는 세력 간 이익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수니파-시아파 세력 간의 종파 갈등과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는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견제, 이러한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분쟁이 바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갈등의 복잡한 이면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국을 각각 지지하고 견제하기 위해 내세우는 주장은 결국 그들의 이익에 따른 것이다. 하마스를 지지하는 국가는 이란 외에도 터키와 카타르가 있다. 터키는 무슬림 형제단의 분파인 하마스에 지지를 표명하고 카타르와 함께 중재에 나서며 이스라엘을 압박했다. 또한 카타르는 무슬림 형제단 출신 정치인들의 망명자금을 대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지난 2012년 카타르 국왕이 직접 가자지구를 방문해 2억 5,400만 달러에 이르는 재건자금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게다가 하마스 최고지도자인 칼레드 마샬이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국가가 다름 아닌 카타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 최악의 실수로 꼽히는 칼레드 마샬 암살 실패는 하마드의 항전 의지를 더욱 불태운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예루살렘에서 민간인 피해를 입힌 하마스의 자살폭탄 테러 배후로 지목된 당시 하마스 요르단 지부장 마샬을 암살하기 위해 독극물을 주입했던 모사드 측은 당시 요르단 국왕 및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거센 압박에 못 이겨 해독제를 건네고 말았고, 이후 목숨을 건진 마샬은 하마스 내에서 더욱 탄탄한 입지를 쌓은 채 현재까지 망명생활을 해오고 있다.
돌고 도는 ‘보복’, 피의 숙청 언제까지
주검으로 발견된 이스라엘 소년들에 대한 ‘보복 살인’이 행해지자 이에 격앙된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주민 간의 충돌이 다시 한 번 격화됐다. 애초에 소년들의 납치 및 살해 용의자를 검거한다는 명분은 이미 폭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유로 전락해버렸고, 서로 간의 분노만 남긴 채 두 진영은 ‘피의 보복’을 계속했다. AP와 AFP 등에 따르면 동예루살렘에서 납치된 후 불에 탄 채 발견된 팔레스타인 소년 무함마드 아부 크다이르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주민들 간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장례식에 참가한 팔레스타인 주민 2천여 명은 소년의 죽음이 이스라엘 극단주의자의 소행이라며 이스라엘 경찰에 돌을 던지며 격렬히 저항했고, 이스라엘 측은 이에 맞서 섬광수류탄과 최루탄으로 대응했다. 이 같은 충돌로 이스라엘 경찰 13명이 부상당했고, 이 중 6명은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격을 가했던 팔레스타인 주민 30여 명도 이스라엘 경찰이 쏜 고무탄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 팔레스타인 측은 하마스에 의해 이스라엘 소년 세 명이 납치 및 살해되자 이에 격분한 이스라엘 극단주의자가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소년을 납치해 죽였다고 보고 이 같은 무력시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양측 소년들에 대한 보복성 살인은 양 진영 간 무력 충돌로 이어져 교전 중단 협상이 진행중이던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의 대립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하마스 무시르 알마스리 대변인은 “약간의 교섭과 중재가 이뤄지고는 있다”고 밝혔으나 휴전 합의가 이루어지자마자 서로 “먼저 휴전을 깼다”고 주장하며 강력 대응을 주장하고 나섰다. 두 국가는 지난 8월 1일 오전 8시(현지시간)를 기점으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3일간 무조건적 휴전에 돌입하기로 합의했으나, 이스라엘 측은 2시간 만에 다시 성명을 내고 “팔레스타인 측이 휴전을 깼으므로 가자지구에서 지상전을 계속하고 하마스와 무장단체 공격에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예고했다. 하마스 측도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민족 학살을 막으려는 자위권에 근거를 둔 것”이라며 오히려 이스라엘 측이 합의를 깼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일시 휴전을 중재했던 유엔과 미국 정부는 이 같은 휴전 결렬을 강력히 비난하고 나서며 “이스라엘 병사 2명이 숨지고 1명이 납치된 하마스의 이번 공격은 유엔과 미국이 확약한 합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으로 가장 강력한 단어로 규탄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애초 이스라엘 측은 자국 병사가 하마스에 납치됐다고 주장하며 잠정휴전 합의를 깨고 폭격을 퍼부었으나, 이후 해당 병사는 교전 중 숨졌던 사실이 밝혀져 이스라엘의 오판임이 드러났다. 두 나라는 지난 8월 5일(현지시간)에야 겨우 72시간 휴전에 돌입했다. ‘29일 만에’ 멈춘 폭격이었다. 하지만 하마스 측은 이 같은 휴전에 대해 “추가 연장은 없다”며 강경론을 주장하고 나섰고, 주말에 다시 교전이 재개돼 휴전이 중단됐다. 이후 이집트가 새롭게 제시한 두 번째 휴전안이 받아들여지면서 8월 11일 0시(현지시간)부터 다시금 72시간 휴전이 발효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이후 14일(현지시간) 0시를 기해 5일간 추가 한시 휴전에 합의했고, 8월 26일(현지시간) 이집트의 중재로 드디어 ‘무기한 휴전’에 전격 합의했다.
무차별 민간 학살… 고통받는 주민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한 달여간 가자지구에 무차별 공습을 퍼부으면서, 공격이 한창 진행되던 때는 한때 하루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매일 100명을 넘어서기까지 했다. 사망자 수만 2천여 명이 훨씬 넘고, 부상자는 1만여 명이 넘는다. 그중 73%가 민간인이었고, 희생자 ‘넷 중 한 명’은 어린이였다. 가자지구 주민 180만 명 가운데 피난민은 벌써 42만 5천여 명을 넘어섰다. 희생자 가운데 절반이 자신의 가정집에서 공격을 받았고, 피난을 가던 도중 죽음을 맞이한 이들도 있었다. 폭격으로 완파된 가정집은 집계된 숫자만 2,900여 채에 이르고, 학교나 구급센터, 병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7월 24일(현지시간)에는 가자지구 난민들을 수용한 유엔(UN) 학교 시설마저 공격을 받아 1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스라엘군은 “실수로 박격포탄 한 발이 날아갔으나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고 발뺌했다. 이처럼 사태는 더욱 커져만 갔고, 이스라엘에서는 제10대 대통령으로 극우 정치인 레우벤 리블린이 취임하면서 “가자지구에서 계속되는 폭력에 이스라엘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 같은 두 나라 간의 갈등 속에 희생된 양국의 소년들은 스스로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서로 간 깊은 증오의 불씨에 하나의 ‘기폭제’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공격과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고스란히 겪는 두 어머니의 사연을 전 세계에 소개하기도 했다. 아들 나프탈리 프랭클을 잃은 어머니 레이첼은 “나는 그저 내 아들을 찾고 싶었을 뿐 그 어떤 팔레스타인인도 죽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프탈리를 찾겠다며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마을을 가택 수색하며 수백 명을 불법 체포했고, 이에 분노한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이스라엘군을 쫓아다니며 돌을 던졌다. 두딘의 아들 무함마드 역시 이 같은 시위에 참여했다가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고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두딘은 “아들을 빼앗긴 분노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뱃속에서 3개월째인 무함마드의 동생이 태어나면 이름을 똑같이 무함마드라 짓겠다고 밝혔다. 두딘뿐 아니라 같은 마을에 임신중인 다른 여성들도 아들을 낳으면 무함마드로 이름을 짓겠다고 약속했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사태는 ‘돌고 도는’ 보복의 악순환이 될 뿐이다. 무차별적인 폭격이 최선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대응 아닌 학살”, 규탄 목소리 높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