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업, 시민사회 전방위로 뜨겁게 소비되고 있는 인문학. 진정한 인문학 르네상스로 이어질 수 있을까?

 

최근 몇 년 전부터, 일어난 인문학 열풍은 식을 줄을 모른다. 서점가에는 다양한 인문학 교양서들이 출간돼 인기몰이를 하며, 스타 인문학자의 강연엔 수많은 인파가 모여 든다. 더 이상 TV 예능프로에서 인문학자를 만나는 것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인문학 바람은 기업들에게도 확산돼 직원 채용ㆍ교육ㆍ서비스 등에도 적용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정책을 위해서 인문정신문화진흥을 강조하며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삼았다. 국가와 기업, 시민사회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을 널리 생산하고 소비하는 기류는 사회 전 분야에서 강하게 감지된다. 반면, 대학가에서는 인문계열학과들은 비인기학과로 전락했고, 학과 구조조정과 통ㆍ폐합 등으로 큰 몸살을 앓고 있다. 학자들은 인문학의 몰락을 걱정을 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하고 있다. 이같이 우리시대를 관통하고 있는‘인문학 열풍’이라는 이 역설적인 문화적 현상을 살펴본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문학 : 창조경제ㆍ문화융성 국가정책코드
대통령도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삼았다. 최근 정부의 정책은 유럽의 문예부흥기인 르네상스를 떠오르게 한다. 박근혜 정부는 4대 국정기조 중 하나를 ‘문화융성’으로 택했다. 궁극적으로 문화융성을 통해서 창조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문화융성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으로 인문학 확산을 강조했고, ‘인문정신문화진흥’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인문정신진흥이 문화융성을 실현하고, 창조경제의 시대를 여는 성장 동력의 열쇠가 될 뿐만 아니라, 건강한 시민사회형성에 근간이 될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한 바가 있다. 이에 140대 국정과제 중 하나는 ‘인문정신문화진흥’ 으로 선정되었고, 곧바로 청와대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산하에 인문정신문화진흥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올해 2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인문정신문화과’가 신설되었다. 지난 8월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주재 제4차 회의에서는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가 우리사회 인문정신문화진흥을 위한 중장기적 정책방향으로서 ‘인문정신을 시민의 지혜로 만드는 사회적 기반 구축’을 제안했으며, 이를 반영해, 문체부와 교육부가 공동으로  ‘인문정신, 문화융성의 길을 열다ㆍ7대 중점과제’ 를 발표했다. 7대 중점과제는 인문특위가 제안한 정책방향 중 ‘교육 및 학술지원 강화’와  ‘인문정신의 사회문화적 확산’ 을 실현하기 위한 양 부처의 추진계획을 담고 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중등 인성교육 실현을 위한 인문정신 함양 교육 강화 △인문정신 기반 대학 교양교육 개선 및 확산 △인문 분야 학문 후속세대 육성 및 학술역량 강화 △지역 기반을 통한 생활 속 인문정신문화 프로그램 추진 △디지털 인문 프로젝트 추진 △청소년 및 은퇴자 생애주기별 교육 참여 등 문화 프로그램의 다양화 △인문정신문화 분야의 국제교류 활성화 등이다. 이와 같이 인문특위는 인문정신문화가 국민들 삶 속에 스며들어 문화융성의 길을 열어갈 수 있도록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국민 개개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개발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정부의 인문정신에 대한 관심과 움직임들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6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간 인문유대 강화활동을 제안하여 이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인문정신문화계 인사' 를 청와대로 초청하여 인문학 활성화와 문화 융성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한국연구재단이 매년 420억 원의 연구비를 대학에 지원하고 있는 인문한국(HK)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인문학 열풍 속에 정부의 인문정신문화 정책까지 강화되고 있지만, 인문학이 해방의 학문이아니라, 정부 주도로 한 성과중심, 통치의 수단으로 잘못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지적한다. 또한 인문정신문화진흥 예산의 약 90%가 대중화 및 세계화 예산으로,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국민 통합의 측면으로 사업을 진행하려는 의도인지 우려스럽다며, 이는 대중화ㆍ세계화 사업이 인문학 정신에 위배되며, 인문학의 위기를 더 불러일으킬 것 이라는 비판도 강하게 나온다. 정부가 허울 좋은 인문학 정책으로 창조경제, 문화융성이라는 국가기조 코드에만 맞는 연구만 지원한다면, 인문학은 수단과 도구로 변질되고, 인문학의 궁극적 존재이유를 망가뜨리게 될 것이다.

기업의 인문학: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새로운 성장동력
글로벌 비즈니스의 거물들의 인문학적 배경이 비즈니스 활동에 그대로 반영되었고 세계를 주목하게 했다. 인문학 열풍의 진원은 스티브 잡스일 것이다. 잡스는 젊은 시절 인도에서 불교와 명상에 심취하는 등 인문학적 취향을 가졌다. 이런 근본을 통해 창의적인 직관으로 정보통신기술에 인문학을 접목시켜 아이폰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칼리 피오니라 전HP 회장은 대학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칸은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세계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 역시 펀드매니저가 되지 않았다면 철학자가 됐을지 모른다 말했다.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인문학 없이는 나도 컴퓨터도 있을 수 없다며 기업경영에 있어 인문학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최근 인문학은 기업들에게도 크게 각광 받는 경영 트렌드 이다. 기업들은 경영에 인문학을 접목하여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미래 경영을 전망하고, 차별화된 혁신적인 상품을 만들고, 창의적인 조직을 운영으로 기업 경쟁력 제고를 높이는 새로운 돌파구로서 인식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이 경영에 인문학을 어떻게 접목하고 있는지 현황을 살펴본다. 1. 인문학을 통해 미래를 전망하고, 기업 전략과 비전 수립에 활용하고 있다. 갈수록 치열한 글로벌 경쟁과 경영환경의 복잡성이 증대하고,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서, 기업 경영 위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하고 있다. 이에 기업 미래 경영환경 예측을 발달된 통계적 분석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으로도 분석이 곤란한 현상들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역사적 안목을 중시하는‘인문학적 통찰’을 주목 하고 것이다. IBMㆍ지멘스ㆍ인텔 등은 인문학자를 포함한 전담조직을 구성하여 전략과 비전 수립에 활용하고 있다. 2.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 및 디자인 개발 분야에도 인문학을 접목 한다. 기업들 간의 기술 및 가격 등 제품의 차별화가 어려워지진 상황에서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은 기업 우위 확보에 반드시 필요하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혁신적인 제품은 기술과 인문학을 접목한 결과라고 언급하여 더욱 주목 받는 것이 제품개발과 디자인 영역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행동 패턴과 직관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제품 및 서비스 디자인에 반영하여 단순하고 편하고 재미있는 것을 원하는 인간의 본연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인문학 전문가의 역할은 시각을 중시하는 디자이너와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엔지니어 사이에서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제품에 주입하는 것이다.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는 조직원의 15%를 차지하는 인문 전공자들이 있어, 디자인과 기술 인력들과 협업하며 커뮤니케이션 매개 역할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편, 일부 기업은 실제 소비자의 행동ㆍ감정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인류학의 민족지학 기법 등을 활용해 소비자와 시장의 잠재된 니즈를 파악하는 직관을 획득하고, 제품개발 및 마케팅에 반영하고 있다. 3. 현 환경에서, 경영ㆍ공학 위주의 실용학문만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기업 경쟁우위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이종 간의 지식을 서로 융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창의력과 직관력을 갖춘 인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기업의 CEO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기업은 조직의 창의성 제고를 위해 인문학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사내 인문학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CEO와 임직원의 인문학적 소양을 증진하고, 직원 채용 평가과정에는 인문 소양을 주요 항목으로 채택하면서 인문학적 통섭형 인재를 원하고 있다. 픽사는 사내 교육기관인 픽사 대학을 운영하여 100여개 이상의 인문학 과정을 개설하였으며, 구글은 2011년 신규 채용 인력 6,000명 중 5,000여명을 인문학 전공자로 충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최근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인문학 릴레이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인문학 진흥에 매년 2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은 지난 4월 동양학을 주제로 매주 ‘교보인문학석강’ 을 개최했다. 국민은행의 통섭역량평가,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 전형 등 KB국민은행은 2012년부터 신입사원 심층면접에서 인문학 도서 28권을 바탕으로 토론하도록 했으며 삼성, 현대자동차, GS 등도 채용시험에서 문학ㆍ역사ㆍ철학 관련 문항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대한생명은 2년 전부터 직원 인문학 교육 과정을 개설했다. 생명보험의 본질이 사람에 대한 이해라는 판단 아래 만든 과정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축척 위기의 시대에, 앞만 보고 달려가는 기업들이 최근 인문학으로 눈을 돌린 것은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의 생존을 위한 필연적 선택일 것이다. 기업들이 인문학에 대해 단순한 실용적 접근, 단기적 투자만 한다면 기대하는 효과를 낼 수 없을 것이다. 경영과 인문학의 접목은 상호 지식의 접목이 아니라 관점의 접목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의 가치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기업은 인문학으로부터 얻은 가치관과 세계관을 기업의 존재 목적에서부터 브랜드 이미지, 제품 개발 및 디자인, 조직 문화 까지 모든 영역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경영철학을 확립하는데 활용해야 경영진의 의사결정과 기업의 지속 성장 도움이 될 것이다.

시민 사회의 인문학 : 힐링 인문학
최근 인문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들과 스타 인문학자들의 강의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면 철학과 문학 등을 가미해 대중의 지친 삶을 위로하고, 삶의 지침을 알려주는 내용이 많다. 자살률 1위 국가, 국민 행복지수 최하위권, 무한 경쟁 사회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지쳐있다. 모순된 사회구조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 줄 적당한 처방이 바로 ‘힐링’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문학 열풍이 지나간 유행인 ‘힐링'을 대체 하는 인기 상품이라 지적한다. 인문학 열풍에 가장 열광하는 세대를 '이케아 세대' 로 꼽는다. 이케아 세대는 최고의 스펙을 갖췄지만 언제라도 쉽게 버려지는, 이케아 가구를 닮은 지금의 30대들를 일컫는데, 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평탄한 삶을 이어갈 수 없다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 살기에 바쁜 이들 귀에는 반체제적인 인문학 강의, 포장이 잘 된 대중 인문학 책을 통해, 불안을 다스리는 치유의 말을 듣는다. 이들은 스스로 삶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기보다, 누군가 명쾌하게 ‘이러이러하게 살아라’고 정리해주길 원한다. 이런 사람들의 수요에 부응하며 학자들은 엔터테이너로 변모하고, 쉽게 떠먹이기 위해 조미료를 잔뜩 뿌린 인문학으로 인스턴트화 한다. 이런 실정 때문에 대중의 인문학은 성찰로 이어지지 않는다. 인문학의 본질은 생각의 길을 트고 유의미한 통찰을 얻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선 필히 소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대중이 인문학 강의에 열광하더라도 스스로 읽고, 사유하고, 비판하고, 실천하지 않은 채 강사와 저자 앞에서 열심히 반응하는 데 그친다면, 그는 인문학의 노예일 뿐일 것이다.

성과주의자ㆍ자본주의 속에서 소비되는 인문학
최근  ‘인문학’ 이라는 말이 오용되고 남용되는 말은 없어 보인다. 학자들은 이런 인문학 열풍은 마치 하나의 일시적인 새로운 트렌드로 전락되어 오히려 인문학의 본질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인문학이 돈을 벌기 위해, 스펙을 쌓기 위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도구’ 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인문학은 노를 어떻게 젓느냐를 가르치는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은 열심히 젓고 있던 노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보이는 하늘과 항구를 바라보며, 인생의 방향을 점검하고 돌아보는 것이다. 인문학은 3가지 질문을 하는 것이다. 성공하려면 이렇게 하라는 것이, 남을 밟아야 내가 산다는 것은 인문학의 가르침이 아니다. 사람과 삶에 대한 이해, 통찰을 통해 나만 잘살고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배려하며 살기 위한 따뜻한 학문이다. 인문학은 자기 성찰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대학에서 사라져가는 인문학
국가와 기업이 인문학 대중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정작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 토대가 되어야 할 대학은 연일 인문학과 구조조정에 큰 진통을 앓고 있다. 대학에서는 취업률이 좋고, 돈이 몰리는 학과는 유지 발전되고, 연구비를 받을 수 없는 인문학 분야 학과들은 하나씩 사라지거나 축소되고 폐지된다. 전국의 인문계열학과는 3년 사이 43개 줄었다. 올해도 10개 대학이 인문학과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정부의 대학평가와 구조조정 정책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대학은 기업으로 전락했고, 정신은 실종됐으며, 교육은 지표로 평가받는다. 대학은 학문이 꽃피는 곳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원하는 노동자를 키워내기 시작했다. 대학구조조정이 대학에서 인문학을 직접적으로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대학에서 인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나마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지원 사업이 인문학 전공자들에게는 약간의 숨통을 터주긴 했지만, 인문학 전공 후속 세대들이 안정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토대 마련은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학자들은 인문학의 대학 탈출은 대안이 될 수 없으며, 학문이 본래의 자유로운 정신을 지키려면 정부의 대중화 정책보다 대학의 자율성을 살린 진정한 물적 토대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문학 열풍이 진정한 인문학 르네상스로 이어지길
요즘 많은 학자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거론한다.‘인문학은 죽었다’는 말은 도처에 무성하지만, 뾰족한 돌파구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갈수록 주변의 학문으로, 심지어는 고사의 영역으로 퇴색되어가고 있는 인문학은 정말 죽은 것일까. 자살률 세계 최고에 독서시간 세계 최저인 나라에서 인문학이 이토록 인기 있다는 역설이야말로 현재의 인문학이 허상임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어떤 인문학’이냐가 더 중요하다. 순수한 인문학서가 인기가 높아져야 진정한 ‘인문학 열풍’이다.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서 삶의 태도와 미래의 비전에 대한 주체적 사고가 나오며, 거기에서 진정한‘창조’가 이루어진다. 현재 인문학 열풍 이면에는 인문학의 위기가 인문학의 진정한 르네상스가 꽃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다 같이 고민해야 할 때다. <NP>

저작권자 © 시사뉴스피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