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과 2항의 내용이다. 얼마 전 “변호인”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은 송강호의 대사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헌법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게 하는 구절이 헌법 1조 1항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에게 헌법이 그리 편하고 쉽게 다가서 있지는 않아 보일뿐 아니라 헌법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도 많이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헌법 제1조
우리나라의 헌법은 미국과 독일의 절충형이라고 볼 수 있다. 상징성은 미국을 닮았고, 내용면은 독일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헌법의 내용면에서 우리와 유사한 독일의 경우는 우리와는 달리 개헌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와 달리 헌법이 상위 지향적 개념적이지 않고 기본적 법의 토대라는 것이다. 독일어로 헌법을 “그룬트 게제츠”라고 한다. 이 뜻은 바닥, 기본과 같은 뜻을 의미 하는데 이는 법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다른 나라들의 헌법 1조를 살펴보면, ▲ 미국 헌법 1조 제1항 “이 헌법에 의하여 부여되는 모든 입법권(立法權)은 합중국 의회에 귀속한다. 합중국 의회는 상원과 하원의 양원으로 구성된다” ▲ 독일 헌법 제 1조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되어서는 안 되며, 국가는 이 불가침의 원칙을 확인하고 보호할 의무를 지닌다” ▲ 프랑스 헌법 제 1조 “프랑스는 분할될 수 없고, 종교에 의해 통치되지 않으며, 민주사회공화국이다. 프랑스는 법 앞에 출신, 인종 혹은 종교의 구분 없이 모든 국민의 평등을 지킨다. 프랑스는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 조직은 분산되어 있다” ▲ 일본 헌법 제 1조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인 동시에 일본국민통합의 상징이며,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지는 일본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
이처럼 모든 헌법의 주개념은 국민이 주체라는 것이다. 즉 개헌이나 합헌도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한 것이어야지 정치인들의 힘겨루기나 즉흥적 발상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갑작스레 새누리당의 개헌 관련 발언으로 인해 갑작스레 개헌정국이 되는 듯한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다. 더욱이 김무성 대표가 발언 후 얼마 되지 않아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하자 이를 계기로 더욱 더 큰 이슈가 됐고, 마치 지금 당장 개헌이라도 이루어질 듯한 심각한 분위기의 정치적 상상의 나래는 끝을 모르고 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지울 수 없는 이유는 지금의 개헌 논의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與野, 권력구조개편 필요성은 동감
이미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2012년 11월 여야 총 35명의 국회의원들이 발기인으로 첨예해(새누리당 의원 14명과 민주당 의원 21명) ‘분권형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으로 시작됐었다. 당시에 여당에서는 이재오, 정몽준, 정갑윤 의원이, 야당에서는 우윤근, 이낙연, 유인태 의원이 주축이 됐고 이 모임에는 여야 가릴 것 없이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155명(새누리 58명ㆍ새정치연합 95명ㆍ정의당 2명)의 의원들이 참여했다. 그 이듬해인 2012년 2월 모임의 명칭을 “개헌모임”으로 바꾸면서 운영위원 30명(간사 이군현ㆍ우윤근)을 임명했다. 발기인이었던 이재오ㆍ원혜영ㆍ유인태 의원이 고문을 맡았는데 당시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이인제(6선) 이미경 이석현 문희상 정의화 이재오(5선) 심재철 원유철 이병석 이한구 정갑윤 정병국 김성곤 김영환 박병석 신기남 원혜영 이종걸 추미애(4선) 등의 중진의원들이 총망라 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야당에서는 반대를 하는 의원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이었으며, 여당에서는 개헌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재오 의원과 더불어 이른바 비박이라 불리는 (非)박근혜계 의원들이 적극적이었다.
| <개헌추진모임 국회의원 명단> |
| ▲ 새누리당 총 56명 |
| ▲ 새정치민주연합 93명 강기정 강창일 김경협 김관영 김광진 김기식 김동철 김민기 김성곤 김성주 김승남 김영록 김영환 김용익 김윤덕 김재윤 김진표 김춘진 김현 노영민 노웅래 문병호 문희상 민병두 민홍철 박남춘 박민수 박범계 박병석 박수현 박영선 박완주 박지원 박혜자 배기운 배재정 백군기 백재현 변재일 부좌현 설훈 신경민 신기남 신학용 심재권 안민석 양승조 오영식 오제세 우윤근 윤호중 원혜영 유대운 유성엽 유인태 윤관석 윤후덕 이낙연 이목희 이미경 이상민 이상직 이석현 이언주 이용섭 이원욱 이윤석 이찬열 이춘석 이학영 인재근 임내현 임수경 장병완 전병헌 전순옥 전정희 전해철 정성호 정호준 조정식 주승용 진선미 최규성 최동익 최민희 최원식 최재성 추미애 한정애 홍영표 홍의락 황주 |
| ▲ 정의당2명 김제남 서기호 |
| ▲ 무소속1명 정의화 |
내용은 주로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가 골자인데 이는 독일, 오스트리아식 모델을 기초로 한 것이다. 대통령은 외교ㆍ통일ㆍ안보 등 외치에 전념하고 국정운영은 국무총리가 전담하는 운영체제이다. 독일 권력구조의 가장 큰 특징은 ‘건설적 불신임제도’, 이는 총리 교체요구가 있을 경우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는 방안이 아니라 의회가 후임자를 선출하는 제도다. 과거 단순히 정부 퇴진을 목적으로 잦은 총리 불신임이 이뤄지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국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도입돼 오늘날 독일 정치 안정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스트리아식 모델의 특징은 ‘대통령 직선 의원내각제’이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하지만 역할을 자제하는 상징적 존재다. 대신 의회에서 연정을 통해 합의로 선출하는 총리가 행정수반으로 국가를 운영한다. 오스트리아는 좌우이념갈등이 커 갈등을 줄이기 위해 합의제 통치 구조를 택했다.
개헌, 정치적 이해득실이 쟁점
개헌모임은 2014년 10월 정기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내년 상반기 안에 개헌 작업 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실제로 지난해 5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여야 대표와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개헌특위 구성’을 위한 건의문을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으나 올해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인해 모든 활동이 잠정 중단됐고 더욱이 6월 지방선거로 인해 여.야 모두 개헌 논의 자체에 부담을 느껴 자연스레 휴면상태로 있었으나, 지난 10월 1일 최태욱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초빙해 토론회를 열면서 약 8개월 만에 활동을 공식 재개한 바 있다. 어떻게 보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주축이 돼 점진적으로 개헌 논의가 진행돼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해 보이고는 있으나 첨예한 이해 관계속의 정치 구조상 효율성에 대한 문제는 부정적인 면이 적잖아 보인다. 산술적 계산만으로는 제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개헌 발의가 가능하기에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 참여하는 국회의원수가 전체 과반을 넘으므로 충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이해득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개헌의 당사자로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통령의 의지 등이 뒤얽혀 있다. 특히 개헌이 되면 지금의 대통령은 3년 6개월의 단명 대통령이 될 수밖엔 없다.
현행 헌법은 예를 들어 중임제 개헌이 이뤄질 경우 개헌 당시 대통령은 중임제의 혜택에서 제외되어지기 때문에 집권 대통령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국회의원 선거는 2016년에 있고 대통령 선거는 2018년에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기득권을 포기해야만 이뤄질 수 있는 역학 구조를 깔고 있는 개헌정국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개헌론은) 경제를 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며 개헌 논의 자제를 당부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발언엔 여러 가지 뜻이 담겨져 있다. 특히 레임덕에 대한 의식을 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개헌논의가 이뤄지면 국회가 정치적 중심에 설 수밖에 없고 산적해 있는 국정과제들을 수행하는데 힘이 빠질 것은 자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기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신정부 출범 후 각종 정책들을 호기 있게 밀어 붙여 보기도 전에 세월호와 같은 뜻하지 않은 시련들로 발목을 잡혀 빠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개헌논의에 발목을 잡히고 싶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기에 뜨거운 개헌에 대한 여러 추측이나 상상들에 비해 실제는 별거 아닐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개헌은 불신(不信)이다?
우리나라는 헌정 이후 9차례의 개헌이 이뤄졌으나 국민들에게는 개헌에 대한 나쁜 인식이 좋은 인식보다 많은 것이 사실이다. 1960년 4.19혁명을 통한 3차 개헌과 1987년 대통령 직선제 9차 개헌을 제외하고는 권력욕으로 일그러진 추한 모습이 우리나라 개헌의 역사이기에 국민 대다수의 개헌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여 지진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 1인에 권력이 집중되는 현 5년 단임 대통령제로는 선진국 수준에 올라선 우리 경제와 사회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제대로 풀어낼 수 없다는 의견이나 판단들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더욱이 국회가 ‘제왕적 대통령’ 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베이스캠프가 되면서 경제와 민생을 보살피는 정책보다 사생결단 투쟁의 장이 돼 버리고 마는 현실을 낳고 있다. ‘승자독식의 권력 구조’가 ‘갈등과 대립 정치의 일상화’, ‘정치에 대한 국민 불신’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정치의 생산성을 끌어내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제왕적 힘’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의 주요 정책들이 입법 과정을 거쳐 대부분 마무리되지만 정치의 투명화, 국회선진화법(국회법) 등 변화된 정치 환경으로 대통령이 국회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조차도 대통령의 ‘말빨’이 서는 것은 5년 임기 중 전반기 2~3년이다. 정권이 바뀌면 과거 정부의 정책은 뒤집히기 일쑤다. 이러한 형태로 중장기 국가의 주요 과제들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을 위한 합의적 개헌만이 필요
‘지나친 양극화’는 ‘경제민주화 요구’로, ‘부족한 사회안전망’은 ‘복지확대 요구’로 총선, 대선 등 각종 선거를 통해 폭발하고 있다. 그 사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던 재정 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가 내년 예산을 올해 대비 5% 정도 늘리기로 하면서 임기 내 균형재정 달성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목표는 이미 물 건너가게 됐다. 더욱이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 추세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오는 2017년부터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는 등 고령사회가 본격 도래한다. 성장률이 더욱 떨어지고 복지비용이 급격히 늘어나기 전에 성장 동력 확충, 양극화 완화 등 구조적인 문제에 해법을 찾는 국가개조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들이 설득력을 갖게 하고 있다. 대통령제의 장점을 살리기 위한 4년 중임제이건, 권력 분점을 통해 대통령과 국회가 함께 국정을 책임지게 하든지 개혁과 변화를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개헌 논의에 대한 우려는 소모적인 국력 낭비와 분열, 경제 블랙홀이 초래와 같은 부정적 문제 역시 간과할 수 없음이 현실이다. 다만 이제는 우리도 과거 얼룩진 개헌의 역사를 뒤로 하고 국민 합의적 개헌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은 정치인이건 국민이건 알아야 하고 꼭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개헌의 논의나 개헌만큼은 정치인들도 치고 빠지기식의 여론몰이나 당리당략을 떠나 100년 대게를 바라보는 국민적 염원과 당부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연일 보도되는 개헌에 관한 중견 정치인들의 견해들도 단순한 견해 의견의 수준이 아니라 좀 더 밀도 있는 연구와 많은 국민들과의 교감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전달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선거판의 철새 공약처럼 그때그때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조금씩 변질되어지는 개헌에 대한 시각을 가져선 안 될 것이다. <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