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욱 작가의 발칙한 상상,<아내가 결혼했다>

“당신을 잃고 살아가는 것보다 당신의 반만이라도 사랑하며 살아가야 난 행복할 것 같소.”영화<글루미 선데이> 자보의 대사처럼 그녀를 완전히 가질 수 없다면 반쪽이라도 갖겠다는 절박함. 어쩌면 그 절박함은 삶의 행복을 위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어렵다.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안고 가야할 평생의 숙제처럼 우리의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아무리 겁을 줘도 꿈쩍도 않고 쫓아온다.


▲ 그를 만나러 가기전 기자의 상상 속에서 작가는 재기발랄함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혹은 틀을 깨고 나온 핏빛 레드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막상 기자 앞에 앉아 있는 그는 담배 연기 속에서 모노톤의 색채를 뿜어내고 있다.
소설<아내가 결혼했다>는 제목만으로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문학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소설 속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인아라는 여자와 덕훈이라는 남자, 그리고 또 한명의 남자 한재경. 정리해보면 인아는 덕훈과 재경의 교집합정도랄까? 아니다. 오히려 인아라는 큰 원 안에 덕훈과 재경이 교집합을 이루며 존재하고 있다는 설명이 옳을 것이다. 인아라는 여자는 덕훈과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도 그 남자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그녀를 덕훈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왜? 사랑하니까. 사랑도 결혼도 하나여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보편적인 등식에 반론을 제기하는 박현욱 작가.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홍대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를 만나러 가기 전 기자의 상상 속에서 작가는 재기발랄함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혹은 틀을 깨고 나온 핏빛 레드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막상 기자 앞에 앉아 있는 그는 옅은 담배연기 속에 모노톤의 색채를 뿜어내고 있다.


이 소설은 하나의 판타지이다

소설은 아내가 사랑하는 남자, 복혼을 선언하는 아내,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남편까지 모든 이야기들이 축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전개되고 있었다. 잘 읽혀지는 소설임에도 내용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종류의 것이었다. 이 같은 상황을 작가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연애소설을 쓰려다가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빠지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어쩌다보니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라는 말을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작가. 참 모를 사람이다. 단순한 연애소설이라고 보기에는 태클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이 소설에서 사랑을 빼고는 할 이야기가 없었다. 소설은 판타지였다. 사랑이 하나일 수만은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나 사랑은 하나여야만 한다고 믿는 이 모두에게 이 소설은 하나의 판타지였다.
소설의 모든 것은 축구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프로그래머인 인아, 축구를 좋아하는 그녀는 FC바로셀로나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리고 나(덕훈)라는 인물은 평범한 회사의 평범한 직원이었으며 역시 축구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녀가 축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문제는 나는 그녀가 나만을 사랑하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내가 그녀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에 그녀를 독점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방법은 결혼이라는 결론에 도달,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청혼을 거절했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말이다.“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잖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다 해도 다른 사람한테 피해가 가는 건 아니잖아. 근데 결혼이라는 게 어디 그런 거야? 나 하나 책임지기도 벅찬데 어떻게 다른 사람 인생까지 내가 끌어안고 살겠어?”라며 결혼이라는 틀을 잘도 빠져나가고 있었다. 공은 둥글고 꿈은 이루어지며 대한민국은 월드컵 4강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냈으며 덕훈은 그녀를 설득했다.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이다. 결혼을 하고나서도 지금처럼, 이대로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이다.‘흔히들 결혼이란 연애의 무덤이라고 말한다. 기꺼이 동의한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녀를 연애의 무덤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본문 중에서)’끈질기고도 집요한 설득에 그녀에게 결혼 동의를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소설에서 결혼은 행복의 근원이기도 했으나 모든 혼란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미 소설의 서문에서 예상할 수 있지 않았던가.‘아내가 결혼했다. 이게 모두다. 나는 그녀의 친구가 아니다. 친정 식구도 아니다. 전 남편도 아니다. 그녀의 엄연한 현재 남편이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녀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 인생은 엉망이 되었다.’
그러나 엉망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인생치고는 덕훈은 꽤 잘 해나가고 있었다. 적어도 기자가 보기에는. 이즈음에서 작가에게 묻는다. 결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도 간단명료하다.“잘 하면 좋은 거.”맞는 말인데 잘해서 좋은 게 어디 결혼뿐이겠는가. 너무 짧은 대답에 멍해진 내 표정이라도 본 것인가. 조금의 부연 설명을 한다.“잘 맞는 사람을 만나서 죽어라 노력하지 않아도 잘 지낼 수 있는 것이 최상의 결혼 생활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인정하면서 끝까지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기묘한 스리섬, 독자와 평단을 사로잡다

결혼생활은 행복했고 덕훈은 아내의 인생관을 존중하며 쿨한 남편이 되기 위한 노력을 했다. 아내가 회사 일로 경주에 내려가고 반년쯤이 지난 어느 날 폭탄선언을 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물 흐르듯이 순조로웠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는. 그러나 더 큰 폭탄선언은 덕훈과의 결혼 생활도 새롭게 사랑하기 시작한 그 사람과의 결혼도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복혼을 하겠다는 것이다. 회유와 협박과 온갖 논리로 아내를 설득하기 시작했지만 결국에 설득을 당하는 것은 덕훈이었다. 왜? 아내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부가 아니라면 반이라도 갖겠다고 마음을 추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사랑은 행복의 시작이자 불행을 품고 있는 야비한 것이며, 모든 것을 감수하게 만드는 무모한 용기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로‘대체 사랑은 뭘까?’기자를 고민에 빠져들게 만든 물음을 작가에게 던져본다.“질문이 어렵다.”아니, 질문이 어렵다니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사랑 때문에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갈팡질팡하고 있건만 정작 작가는 질문을 나 몰라라 한다.“음.. 사랑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결국은 인간을 우리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이 얼핏 든다.”그렇다면 작가는 왜 하필 한 여자가 사랑하는 두 남자, 그리고 그들과의 이중결혼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일까.“사실 평소에 관심 있던 주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모습에 관심이 있었다. 동시에 둘 이상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 사랑에 대해 파행적 혹은 일탈적인 모습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모습이 결혼이라는 제도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소설에서 오랜만에 독자와 문단의 의견이 일치했다. 평론가 김윤식은 일부일처제의 소설적 논의에서 단 3인의 등장으로 장편을 이루어낼 만큼 작가의 역량은 눈부시다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소설가 박범신은‘박현욱 표’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조금 낯설고 조금 유쾌하고 그리고 조금 슬픈 신문명의 풍경 속으로 흘러들어간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소설가 김형경의 경우는 발칙한 발상에 비해 주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진중하고 진지한 문제 제기에 비해 당돌한 문체가 매력적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독자까지 사로잡아 소위 잘 나가는 소설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초연한 태도로 내 앞에 앉아있는 작가, 과연 예상이나 하고 있었을까? 조금은 기묘한 설정에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해 본적은 없을까.“음... 독자의 반응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당장 내 코가 석자여서.(웃음) 그리고 난 독자의 반응을 예상하며 글을 쓸 만큼 영리하지 못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주 고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축구라는 완충장치를 가져왔던 걸 보면. 음... 생각한거네요.”


인생은 그 자체가 축구장에 지나지 않는다

▲ <아내가 결혼했다>의 작가 박현욱.
소설 속의 주인공은 전부가 아니라면 반이라도 갖겠다면서 아내의 또 한 번의 결혼을 수긍하고 만다. 왜?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박현욱 작가가 이번 소설의 완충장치라고 이야기했던 축구.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몇 개의 축구 경기를 보았고 축구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를 머릿속에 그려내고 있었다. 소설은 축구와 관련된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아주 교묘하게 연결되어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왜 하필 축구였을까. 야구도 있고 배구도 있고 농구도 있고 스포츠는 셀 수 없이 다양한데 말이다.“사실 갖다 붙이자면 뭔들 불가능하겠는가. 그리고 축구의 경우 워낙에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보니. 조금 파격적이라면 파격적일 수 있는 소재를 스며들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완충장치였다. 결과적으로는 인물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있어 효과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축구였냐고 묻는다면 우연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꽤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1986년 월드컵.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8강전. 마라도나가 하프 라인부터 치고 올라가 신기의 드리블로 잉글랜드의 수비진을 유린하며 넣은 골은 월드컵 최고의 골로 꼽힌다. 그때 어느 방송 해설자가 한 말은 마라도나가 왜 위대한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축구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11명이 하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축구의 개념을 깬 최초의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결혼이란 두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 둘의 가족이 얽히는 것이다. 나는 결혼의 개념을 깬 최초의 여자와 살고 있다. 그리하여 사는 게 참 힘들다.(본문 중에서)’
이런 식이다. 축구는 그들의 인생을 설명하며 W.스콧의‘인생 그 자체가 축구장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내의 두 번째 결혼으로 인아의 남편은 두 사람이 되었고 두 집 살림을 하였으며 주중과 주말을 경계로 하여 아내를 공유하는 그들의 기묘한 스리섬 게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게임에서 발을 빼기로 마음 먹어가던 어느 날, 아내가 임신을 했다. 정말이지 예측 불허한 삶이다. 딸아이가 태어나고 누구의 아이냐고 묻는 덕훈에게 인아는 당당하게 선언한다.“이 아이는 내 아이야.”라고 말이다. 그리고 아이의 돌이 지난 어느 날 아내는 모두 함께 외국으로 나가자고 덕훈을 설득한다. 끈질긴 설득 끝에 뉴질랜드로 떠나기로 결심을 한다. 물론 인아의 두 번째 남편도 함께.“작품의 상황을 어디까지 끌어갈 것인가 고민했다. 이 소설에서는 모든 상황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다. 결말은 떠나는 것으로 설정하면서 말이다. 글쎄... 만족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이다

인아는 행복이라는 단어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었다. 작가는 이야기한다.“결국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우리 세대 같은 경우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그는 행복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기만족의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결코 큰 거에서 오는 것은 아니란다. 지금 마시고 있는 차가 맛있으면 맛있어서 행복하다고 느낄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아주 큰 것에서만 행복을 느껴야만 하는 사람들은 행복을 느낄 수 없다. 로또가 당첨되는 확률로 행복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행복에 대하여 자꾸 생각해봐야 행복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도 사랑도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행복해지기 위함이 아닐까.”그에게 마지막 발언 기회를 주었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라고 말이다. 그는 자신이 책에서 쓴 한 문장이 생각난다고 했다.“보노보 침팬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이다. 침팬지는 폭력적이므로 나쁘고 보노보는 평화적이므로 이상적인 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두 종의 습성은 모두 오랜 기간에 걸쳐 종족 보존을 위해 이루어진 자연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인간은 다르다. 어느 쪽을 지향할지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은 다르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선택의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하늘 가까이 쭉 뻗은 한 줄의 선, 그 줄을 너울너울 밟으며 묘기를 보이는 줄타기를 본 적이 있다. 마치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유연한 동작과 사뿐하게 줄 위에 내려앉는 모습이 위태로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것은 인생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들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인 것이다. 모두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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