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인의 귀재, 한나라당 박희태 국회부의장

그런 17대 국회가 6월 안으로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며 후반기 원 구성을 새롭게 한다. 여당의 김원기 국회의장, 김덕규 부의장과 함께 전반기 국회를 이끌어온 야당 박희태 국회 부의장. 이제 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그 아쉬운 자리를 물러난다. 그동안의 국회를 돌아보는 박 부의장의 마음은 어떠할까.
우리 국회에 여전한 고질병이 아쉬워
경남 남해에서 나고 자라 쭉 남해·하동군을 지역구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5선의 박희태 국회 부의장.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검찰 시절을 거쳐, 1988년 13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주요 국정 임무들을 수행해왔다. 당 대변인, 법무부 장관, 국회 법사위원장, 원내 총무, 부총재, 최고위원 등을 지냈던 연륜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17대 국회 부의장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박희태 부의장은 “그동안 보람 있는 일을 했다고 국민 앞에 내세울 것이 별로 없다”며 씁쓸한 웃음으로 대답한다. 우리 국회엔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들이 팽배해 있다면서 말이다. 그는 국회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 효과를 끌어내지 못했다며 “보람 있는 일을 했다고 국민들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국회는 거의 의장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것이기에, 국회 부의장이라는 자신의 위치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토로했다.
박 부의장은 이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최근 ‘대변인(代辯人)’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헌정사상 최장수 대변인’이란 기록으로 그를 기억되게 한 4년 3개월(1988년 12월~1993년 2월) 동안의 민정당, 민자당 대변인 시절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3당 합당, 북방외교, 문민정부탄생 등 현대 정치사의 최전선에서 그가 겪어낸 그 시절의 기록이다. 살벌한 정치판에서 넘치는 유머와 위트를 뽐내며 ‘최고의 명 대변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랑받는 정치, 재미있는 정치를 위해

박희태 부의장이 책을 출간함으로써 도달하려한 궁극적인 목적지는 ‘국민의 사랑’이었다. 정치가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정치로 국민의 관심을 끌어오기 위해 재미있는 정치를 하려고 노력한다는 그였다. “마치 연속극을 보듯 ‘오늘은 이런 얘기가 나왔는데 내일은 어떤 장면이 전개될까’ 궁금해 하며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정치가 되어야 합니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정치가 바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치인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정치 주역들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아야한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재미있는 말로 한번 듣고 기억해 낼만한 말”이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정치는 싸움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험한 말만 난무하여 국민에게 혐오감만 준다. 박희태 부의장은 “서로 공방을 하더라도 말 자체가 독살스럽기만 한 화술이 아닌, 재미가 있는 가운데 정곡을 찌르는 말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말들이 이어지는 그런 정치가 되어야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최근 정치판은 살기를 띄고 있다. 국민도 정치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인 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이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박 부의장은 과거 대변인 시절 자신의 논평, 회견문 등을 엮어 책을 출간하게 된 것이다. 주위에서 말하는 ‘박희태가 대변인으로 있었던 그 시절에는 정치가 고품격이었고, 재미있었다’는 평이 아니더라도 현 정치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정치 생활 중 4년 3개월간의 대변인 시절만을 잘라내 정리했다. 사랑받는 정치, 재미있는 정치를 위한 박 부의장의 조그마한 노력의 일환이다.
‘총체적 난국, 정치 9단,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책을 읽다보면 이건 정치인이 쓴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한 편의 재미있는 소설처럼 느껴진다. 그는 “책을 읽으며 인간 박희태를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시라”며 또 한 번 여유 있는 위트를 건낸다. 책 안에는 대변인 시절 동안 정곡을 찌르는 언변으로 그가 남긴 수많은 정치 조어들이 담겨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말은 ‘총체적 난국’.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정치 조어 중 박 부의장 스스로도 가장 만족스러운 말이라고 한다. 그가 사용하기 전에는 한 번도 언론에 나타난 적이 없던 이 말이 이제는 정치계를 넘어 사회 전반적으로 쓰이는 하나의 관용어구가 되었다. 이는 혼란하고 불안한 사회상을 일컬은 당시 이승윤 부총리의 ‘Total Crisis’ 라는 표현을 박 부의장이 ‘총체적 난국’이라 번역하며 나온 말이다.
또한 노련한 정치인을 두고 자주 사용되는 말인 ‘정치 9단’도 그가 입 밖에 냄으로 생겨난 말. 1989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야당 3총재를 두고 ‘모두 정치 9단의 입신(入神)의 경지에 있다’고 표현하여 그 유명한 ‘정치 9단’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말도 바로 박 부의장이 만들어 낸 유행어이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박 부의장은 “자신들도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남이 할 땐 공격하는 모습만 보이는 그 때의 야당에게 점잖게 충고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지금의 젊은 층에게는 이토록 유명한 말들을 만들어낸 인물이 박 부의장이라는 것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지 몰라도, 이 유행어들은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도대체 박 부의장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이와 같은 최고의 언변을 자랑하며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 냈을까. 그는 단지 “어디까지나 진실의 바탕 위에서 의견이나 주장을 펼쳤던 것이고, 나의 말들도 모두 진실로부터 나온 것”이라며 “역시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것은 진실일 뿐”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또한 그는 정치 현장의 중심에서 겪은 비화들을 글로 풀었다. 많은 일화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사건은 바로 ‘3당 합당’이라고 한다. 1990년에 있었던 민정당의 노태우, 민주당의 김영삼, 공화당의 김종필이 합치게 된 ‘1노 2김’의 3당 합당 선언. 청와대가 물밑에서 합당을 추진하며 민주당과 공화당을 상대로 개별적으로 접촉을 하여, 민주당과 공화당은 합당 선언 직전까지 자신들이 한 당이 된다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다는 일화이다.
“3당 합당 사건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이 3당의 합당은 한국 정치에 있어 한 획을 그었으며, 하나의 고비를 넘은 대 사건입니다. 서로 적대시 하던 민주화세력과 근대화, 경제 발전 세력 양자가 서로 합쳤다는 큰 의미를 가진 대 사건이었지요. 당시 군사정권을 종식시키려 한 김영삼 총재와 노 대통령은 물과 기름 같은 사이었습니다. 함께 하나의 당을 만들고 하나의 정권을 창출해 낸 것입니다. 그때의 사건, 인연, 관련 일들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대화와 타협, 서로가 양보하는 지혜

“지금은 정치가 실종되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정치라는 것은 서로의 대화와 타협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만, 날치기 통과 등 대립과 일방처리만 일삼는 요즘 국회의 모습을 보면 정치가 실종된 것 같습니다. 사학법 통과 때처럼 ‘1점 1획’도 못 고치겠다는 비타협적,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치의 자세가 아니라고 봅니다. 서로가 양보하는 지혜인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를 다시 복원시켜야 합니다. 제도적 타협이 없나 고민하고 중간 영역을 서로 찾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염소 마냥’ 서로 뿔만 세우고 싸우는 형국으로 가는 지금의 정치를 ‘공해’와 같다고 자책했다. 계속 머리를 맞대면 타협점이 나올 것이라고 희망한다. 그는 “국민을 즐겁게 하고 사랑받는 정치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지적하며 “내일이 기다려지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네티즌의 반응도 살피며 국민이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언제나 귀 기울이고 있다며 “정치를 곱지 않게 볼 수밖에 없는 국민들에게 부끄럽고 큰 책임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정치인들이 탤런트처럼 환영받는 날이 오길 소망하는 그였다.
“국민들은 그동안 너무 오래 불안해 해왔다”
그는 “정치가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어야한다”며 “그런 방법을 찾고 실천하는 것이 정치인의 몫”이라고 한다. 국민의 편안한 마음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사회의 기본이 되어야 하고, 그 바탕을 만드는 것이 정치라는 생각이다. 그것의 총화로 나라가 더욱 발전하고 선진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어찌 될지 모르는 내일 일로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과 같은 얼토당토않는 ‘혁신정치’는 국민을 불안하게만 하고 있습니다. 졸업장이 곧 ‘실업장’이 되는 요즘 시대에 직장은 보장되어 있다고 느끼며 학생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농민은 안심하고 농사짓도록, 장사하는 사람은 맘 편하게 가게를 열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또 돈 있는 사람들은 투자도 마음 놓고 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하고요. 자꾸 뜯어 고치는 개혁만을 앞세워 국민의 불안만 조장하는 것은 정치가 아닙니다. 안정이라는 바탕위의 개혁이 아닌, 개혁을 위한 개혁, 개혁 일변도인 지금과 같은 정치는 국민들이 오래 당해왔습니다.”
그는 “국민들은 그동안 너무 오래 불안해 해왔다”며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을 표출했다. “안정의 기조 위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꼬집어 말하며 말이다. 오랜 세월 겪어온 정치계의 풍파 속에서 여당을 거쳐 야당 생활을 하며 현재의 위치까지 온 그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그는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미움만 받는데 대한 죄책감으로 국민에게 미안한 감정이 많다. 우리나라처럼 정치가 사랑을 못 받는 나라가 없으니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며 한숨 쉰다.
‘정권 되찾기’ 나의 마지막 남은 책무
이렇게 거칠고 모진 세월 속 그가 정치를 시작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니 이것 또한 재미있다.
“1988년 당시 저는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노태우 정권이 새로 수립될 때였지요. 검찰총장도 바뀌고 할 때여서 이제는 날 시켜주려나 했는데, 위에서 부르더니 그만 출마하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돈도 없고 조직도 없어 못하겠다하니 걱정하지 말라며 억지로 끌려나오게 된 것입니다. 대통령의 뜻인데 따르는 것이 좋다며 저녁 늦게까지 설득당하고 또 고민하다가, 새벽에 뉴스를 통해 내가 공천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의사표명은 하지 못한 채 ‘징발’된 것과 같았습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들어와선 어쩌다 보니 운 좋게 잘 지내고 있네요.”
농담 반으로 털털하게 웃어넘기며 이제는 또 다음 목표를 말한다.
“궁극적 목표라면 국회의장이나 한번 해보고 싶네요. 의장이 되는 건 혼자 힘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당이 제 1당, 다수당이 되어야 하니, 좀 더 가까이는 우리 당이 정권 창출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잃어버린 정권을 우리 손으로 찾아주고 나가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정권 되찾기’가 나의 마지막 남은 책무이고 임무입니다. 전선의 선봉에 나서 정권 되찾기에 온몸을 바칠 것입니다.”
그는 잃어버린 정권을 되찾으려는 사명으로 모든 것을 걸고 이번 7월 당 대표에 나서려고 한다.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각오가 되어있다. 이번 당 대표는 관리형 대표로서, 경선의 모든 것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경선 후에도 후보들이 서로 깨끗한 승복과 화합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자신과 같은 중립적 인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선을 하다가 당이 분열해버린 쓰라린 패배의 경험도 있고, 경선으로 인해 국민 앞에서 많은 것을 잃은 경우도 많기에, 깨끗한 승복으로 국민이 경선을 잊게 하는 것이 당 지도부 제일의 임무일 것이라고 한다. 한편, 경선 이전에 치러질 지방선거에 대해서는 또 한 번 현 정권과 나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낸다.
“이번 지방선거는 단순한 지방선거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것은 무너지고 있는 나라를 구하는 운동입니다. 우리가 아니면 나라를 구할 정치 세력이 없기에, 무너져 내리는 나라를 위한 구국운동, 애국운동이라는 생각으로 승리를 쟁취할 것입니다. 이번 선거는 현 정권을 심판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한 길로, 다음 정권교체를 위한 확고한 발판이 될 것입니다. 특히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높은 지지를 확인하는 과정이고, 국민들이 우리와 뜻을 같이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용기를 얻을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의 세상 ‘우일촌’을 기다리며
박희태 부의장의 이와 같은 나라와 국민, 그리고 정치에 대한 생각들은 혼자 산책하며 사색하는 시간으로부터 나온다. 그는 소박하게 한강변이나 호젓한 길, 조그만 공원을 거닐면서 사색하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 시골 조그만 섬에서 태어나 바닷가를 한없이 걷고 달리며 생각하던 습성이 남아있다고 한다. 산책 중에 연설연습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정치란 무엇이냐는 제자들의 물음에 공자는 ‘정자 정야’니라 하였다. ‘정자 정야(政者正也)’,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다. 제 생각은 바른가, 제 말은 정직한가, 행동은 올바른가, 끊임없이 자문하고 뒤돌아봐야 한다. ‘최고의 선을 물과 같다’는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되새기며 그는 자신을 뒤돌아본다. 물은 끊임없이 자세를 낮추고 변화에 따라 자기모양을 고집하지 않으며, 흘러내리지만 세력이 점점 많아지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해주며 만물이 소생하는 개념이다. 이 글귀가 쓰여져 박 부의장의 방에 놓인 도자기는 그가 자필로 써서 구운 것이기도 하다.
부의장실 벽에는 ‘山重水復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산중수복의무로 유암화명우일촌’. 송나라의 유명한 애국시인 육유의 ‘유산서촌’이라는 칠언 율시 중 2연으로 ‘첩첩산중 없는 길을 가다보니, 버들 그늘 깊고 꽃 밝은 마을이 있었네’라는 풀이의 이 족자는 사연이 있어 그곳에 놓였다. 이 글귀는 박 부의장이 평소에 즐겨 하는 말로, 좌천 등으로 불만족스러워하는 검찰 후배들을 보면서 ‘언제나 희망은 또 다시 떠오른다’며 써 보냈던 글귀이다. 그런데 한 모르는 서예가가 자신이 부의장 된 후 선물로 이 글귀를 보내온 것이다.
금나라에 항복하고 군신관계를 맺음으로 풍전등화와 같던 송나라의 모든 국민이 실의에 빠져있을 때이다.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시인 육유가 생각에 잠겨 걷다가 길이 끊어졌다 생각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복숭아꽃이 붉게 핀 마을이 나타났고 그 마을 사람들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산은 중첩하고 물은 복잡하게 얽혀 이제 다시는 길이 없는가 의심했더니, 버드나무 그늘 우거지고 아름답게 꽃피어있는 또 하나의 마을이 나타나더라는 내용의 일화가 우리도 언제나 ‘우일촌’을 믿으며 언제나 살라는 교훈을 준다. 박 부의장도 국민들에게 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오늘의 위기를 이겨내려고 한다. 그는 “암울한 시대에 야당생활을 하는 자신을 보고, 마음이 통한 한 팬이 보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선물한 사람이 어떻게 알고 보냈는지 참 궁금해, 시간이 날 때 꼭 한번 찾아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박희태 부의장은 마지막까지 ‘국민의 사랑은 알파요 오메가’라며 국민의 사랑받는 정치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연속극 같은 정치가 오기를 함께 바래보자고 부탁한다. 역시 ‘촌철살인의 귀재’답게 인터뷰 내내 입담을 자랑하던 그는 이미 연속극 속의 주인공과 같았다. NP
강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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