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클로져’로 숨소리 짙은 연기를 저축하다

CF요정을 거쳐 원숙한 연기자로 거듭나고 있는 김지호는 그동안 여자로의 우아함과 사람으로서의 의연함을 적절히 오가는 양성성이 지극히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새롭게 느껴지는 매력이 있다. 서늘 서늘하면서 시원스럽고, 때로는 냉정할 정도로 태연하고 침착하며, 때로는 밝고 명랑하면서 성숙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초여름 밤, 아무 때나 덤벼드는 바람의 애무, 냅다 밀어붙이는 사람들의 억센 움직임, 문화와 낭만이 공존하는 대학로의 그 질펀한 공간에서 배우 김지호를 만났다. 지금 그녀는 어느 때보다 바쁘다. 94년 데뷔 후, 처음으로 도전하는 연극 <클로져>가 오는 7월 2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하기 때문이다.

▲ 데뷔 이후,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하는 김지호
밤의 바다에서 별빛 만남을 타다
은은한 음악, 실내 가득 퍼지는 커피의 향, 그리고 보들보들 감촉 좋은 의자는 늦은 밤 내게 졸음을 몰고 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연극 클로져를 끝내고 곧 보게 될 김지호와의 만남을 상상하며, 늦은 시각 내 피곤함을 달랬다. 이윽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왔다. 계속되는 공연으로 숨 돌릴 틈 없는 김지호는 그 고요한 공간에서 숨을 쉰다. 커피숍 창가에 내린 별빛이 그녀의 눈동자를 조각할 때, 그녀의 두 눈은 나를 응시하고, 그리고는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야무지게 하나 둘씩 이야기하는 그녀와의 만남은 참으로 즐거웠다.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말들이 오고가지만, 시원스러운 웃음으로 나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네는 그 순간까지 그녀의 열정과 삶이 녹아 든 소중한 시간이었다.

첫 눈에 반한 치명적 사랑‘클로져’
“사랑이 어디에 있는데? 볼 수도 없어, 만질 수도 없어, 들을 수도 없어, 물론 너의 말은 들지만 쉽게 내뱉어버리는 너의 말로는 어떻게 할 수도 없어.”영화 <클로져>에서 앨리스의 대사이다. 네 도시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갈등, 배신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조명한 연극 <클로져>는 토니상을 비롯해 연극에 관한 상이란 상은 모두 수상하였고, 줄리아 로버츠와 주드 로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돼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도심 한 복판, 소설가를 꿈꾸는 기자 대현은 인파속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지현을 발견한다. 첫눈에 반한 사랑의 운명을 예감한 두 사람은 그들의 이유 없는 동거가 시작된다. 대현은 지현을 소재로 쓴 소설로 작가로 데뷔하고, 표지사진을 찍기 위해 만난 태희에게 강렬한 설렘을 느낀다. 또 다른 사랑의 시작, 알 수 없는 치명적 유혹은 대현과 지현, 그리고 태희 모두를 혼란에 빠뜨리게 만든다. 김지호는 이번 공연에서 차분하고 이지적이면서도 때로는 유혹에 흔들리는 사진작가 태희 역을 맡아 섬세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원숙한 깊은 내면연기를 선보인다.

Q . 연습 할 때와 지금의 마음상태
A : 시작 전에는 조금은 막연했어요. 연극을 하면 이런 저런 재미가 있다는 이야기들을 주위에서 말해주잖아요. 관객의 반응, 희열 같은 것들을요. 안 해봤기 때문에 말로만 듣고‘관객이 바로 앞에 있으면 어떨까?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생각에 대개 설레었어요. 첫날에는 긴장하고 떨어서 많이 힘들었는데, 둘째 날부터는 자신감이 생겨서 점점 편해지더라고요. 지금은 매번 관객의 호응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극을 끌어가는 배우들과의 호흡도 잘 맞고, 내가 하는 연기에 대한 반응을 바로바로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한 배우가 긴장감을 가지고 한 극을 시작해서 끝을 낼 수 있다는 것도 너무 맘에 들고요.

Q . 캐스팅 된 사연과 주위의 반응
A : 남편이 먼저‘3월의 아트’에 캐스팅 제의가 들어와서 악어컴퍼니 대표님을 만나는 자리에 저와 같이 갔는데, 남편은 드라마 스케줄 때문에 아쉽게 출연할 수가 없었어요. 우연히 그 자리에서‘클로져’얘기가 나왔어요. 평소에 남편과 영화 클로져를 너무 재미있게 봤다며 한 번쯤 해보고 싶다고 했거든요. 그러다 저한테 그 역할이 잘 맞을 것 같은데 해보지 않겠냐고 대표님이 그러시면서 대본을 주셨죠.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하는 공연을 2번 보기도 했죠. 연극을 한다니까 주위에서“연극? 연극을 한다고?” 연극 하는 걸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한편에서는“너한테 굉장히 필요해!”“넌 연극 하면 정말 잘할 거야”라는 반응도 있었죠.

Q . 자신이 극 중‘태희’라는 인물이었다면
A : 태희라는 캐릭터에 이해가 가요. 저 역시 남자한테 깊은 상처를 받았다면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뿌리치려고 했을 거 에요. 하지만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잘 생기고 매력적인 남자가 계속 대시를 하는데, 어떻게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어요? 안 된다, 오지 마라, 오지 마라해도 결국은 끊임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에게 마음이 가게 되고, 다시 또 상처를 받는 거라고 생각해요. 태희의 캐릭터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제 나이 또래의 모습인 것 같아요.

Q .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장면이나 대사
A : 갈등이 생기면서 헤어지려고 할 때, 내가 그렸던 쿨한 모습과 멋진 이별이 아닌, 비열하고 섹스에 집착하면서“그 남자하고 잤어? 맛은 어떤데? 나보다 좋았어? 몇 번이나 오르가슴을 느꼈지?”그렇게 말하는 그 모습에서 처음에는 미안했다가 나중에는 상처받고 치욕감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나가버리는 신이 인상적이에요.

Q . 브라운관의 배우들, 왜 무대에 몰리는가
A : 우리나라 국민들의 문화수준이 매우 높아졌고요. 뮤지컬이 먼저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점점 스케일 커지고 멋있는 배우와 스텝들이 훌륭한 무대를 만들어 나갔는데, 그러면서 연극도 탄력을 받은 거 같아요. 배우들이 무대에 몰리는 이유는 한 번 해본 경험자들이 다른 배우에게 추천을 했거나, 했던 배우들이 또 다시 무대에 오르는 모습에 다른 배우들에게도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싶어요. 근데 제가 막상 해보니까 TV나 영화와는 다른, 배우로서 많이 저축을 하고 리프레시 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에요. 한 마디로 공부죠. 그동안 흩어지고 너무나 소모적이었다면, 작품을 하는 동안 학교를 다니는 만큼의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배우로서는 대개 많은 것을 배워가는 것 같아요.

Q . 데뷔 초와 현재 달라진 점
A : 더 좋아진 것도 있고, 잃어버린 것도 있어서 결국에는 다 평균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데뷔 때에는 연기에 대한 깊이도 몰랐지만, 젊기 때문에 무서움도 없었고, 누구든 다 용서해 줄 거라는 어떤 익스큐즈에 대한 비밀무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뭘 해도 신나고 씩씩했죠. 지금은 세상에 대해 점점 알아가면서 이해는 많이 하게 되지만, 세상이 조금은 두렵고, 고민하는 것도 많아진 것 같아요. 배우로서는 인생을 알아가는 시간들이 큰 도움이 됐고요.

Q . 연극 <클로져>가 가져다주는 의미
A : 그동안 배우로서 뭔가 갈증이 있었는데, 이 연극으로 50%이상의 답을 얻어 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공부를 좀 하고 싶었는데, 여기에서 공부를 하고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 도전하는 연극이라 동경 내지는 두려움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제가 해냈다는 것이 기쁘고요. 지금은 너무나 재미있게 연기를 하고 있고, 무대 위에서 놀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저에게 새로운 자신감과 전환점을 줬다고 생각해요. 다시 TV로 돌아갔을 때는 또 다른 느낌으로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연극 <클로져> 포스터
Q . 항상 연인 같은 부부가 사는 가족이야기
A : 연극이 올라가기 전에는 연습과 빡빡한 스케줄로 시간이 없어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오히려 공연 중인 지금이 더 한가해졌어요. 매주 하루 쉴 수 있으니까요. 내일은 애기 데리고 동물원 갈 거 에요. 사람들이 저희를 보고 아직도‘연인 같다’라는 말들을 많이 해주시는데, 둘 다 웃음이 많고 같은 직업의 취미나 취향, 관심사 등이 비슷해서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들 때문에 그렇게 비춰진 것 같아요. 이벤트를 한다거나 닭살스러운 멘트를 서로가 못하지만, 친구처럼 그냥 편하게 지내요. 평소에 남편과 같이 있을 때는 아이를 위해서 절대적이고요. 남편과는 틈틈이 영화도 보고, 옷 예쁘게 차려입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기도 하면서 서로를 위한 시간을 갖죠. 가끔은 저 홀로 창밖을 보면서 차를 마시며 사색에 잠겨보고 싶기도 해요.

Q .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한 마디
A : 배우이기 때문에 단순한 연기가 아닌 한 번 더 꼬아서 연기를 할 수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100% 다 줘서 관객들이 바라봐 주는 게 아닌, 절제된 감정을 그들이 찾을 수 있는 연기로 다가가길 바라죠. 끝으로, 연극‘클로져’를 통해 브라운관이 아닌 무대에서 직접 관객들과 만나서 매번 떨리고 설레어서 좋아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제 연기를 보러 오신 모든 분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전하고 싶네요.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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