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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사진 에세이/칩 후퍼 편
사진 에세이/칩 후퍼 편

당신, 언제 오는가?
-물과 빛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찍는 사진가, 칩 후퍼(Chip Hooper)                                            취재 / 천수림 기자

바다 밑에서 소용돌이치는 격정적인 감정, 속울음을 삼키며 미친 듯이 달려가는 소리, 그것이야말로 바다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다.
가슴 속 깊이 파고 든 이름, 바다는 독기서린 아름다움을 들려준다. 매순간 내 마음이 그리로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팜므파탈! 칩 후퍼(Chip Hooper)의 사진은 끝없이 묻는다. ‘당신, 언제 오는가?’
바다에 갈 때면 늘 떠오르는 시가 있다. 오스트리아 시인 잉에브로크 바흐만(Ingeborg Bachman) 의 <누구나 떠날 때는>이다.  

누구든 떠날 때는 /한 여름에 모아둔 조개껍질이 가득 담긴 모자를 바다에 던지고/머리카락 날리며 떠나야 한다/사랑을 위하여 차린 식탁을 바다에나 뒤엎고/잔에 남은 포도주를 바닷속에 따르고/빵은 고기떼들에게 주어야 한다 /피 한방울 뿌려서 바닷물에 섞고/나이프를 고이 물결에 띄우고 /신발을 물속에 가라앉혀야 한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을 /언제 오는가?/묻지는 마라
-잉에브로크 바흐만(Ingeborg Bachman) <누구나 떠날 때는>

언제부턴가 바다로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엔 까닭 모를 비장함에 쌓이곤 했다. 마치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처럼. 마침내 만난 바다는 바다가 아니라 결국 내 모습이었다. 보고 싶지 않은, 혹은 너무나 열렬히 갈망하는 어떤 모습. 그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바다를 보았고, 거기서 위안을 얻어왔다. 그런 면에서 칩 후퍼가 보여주는 바다는 이야기를 나누고픈 아름다운 대화 상대이다. 새벽 안개에 휩싸인 바다, 달빛에 온 몸을 드러내 흐느끼는 문 라이트. 신화에나 나올법한 당당한 표정으로 우뚝 솟아있는 바다가 그렇고 어디론가 떠날 듯 날개를 편 바다새들이 그렇다. 그 속에서 고요하고, 아름답고, 당당하고 강인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 칩 후퍼의 바다는 그래서 고맙다.

조근조근 말을 건네는 칩 후퍼는 물과 빛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바다를 가장 잘 그리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8×10inch 필름의 카메라를 사용하는 후퍼는 그 장대한 스케일만큼이나 태평양의 바다를 신비하게 담아내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캘리포니아의 태평양Califonia's Pacific>시리즈 중 첫 번째 부분은 그 자신에게도 정수라 할 만하고 물을 포착하는 한 형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아트뉴스에서 렉스 데일고는 후퍼의 사진에 대해 “ Moonlight, Garrapata Beach(1999)는 바다의 수평선을 배경으로 해변에 고립되어 있는 거대한 바위를 보여주고 있다. 반질반질하게 윤택이 나는 돌의 디테일을 잃지 않으면서 후퍼는 모래, 물, 그리고 하늘을 순수한 빛의 세 빛살로 환원시켰다.  이 이미지는 캘리포니아라기보다는 토성의 고리 같아 보인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몬트레이 미술관과 포트랜드 미술관, 도쿄 사진문화센터에 소장되어 바다를 동경하는 모든 이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신비하고 명상적인 분위기 때문에 종종 신화적이거나 먼 우주를 연상시킨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모양이다. 그 역시 자신의 작업을 두고 “나에게 있어 사진을 창조하는 과정은 하나의 묵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최상의 사진은 나에게 한 장소에 머무를 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 장소가 선명하게 던져주는 고독감을 내가 발견했을 때 나온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서 명상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는 데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마냥 신비한 쪽으로 몰고 가는 데엔 동의하지 않는다. 그 대답은 <6개의 바위와 한 마리 새, 가라파타 해변 2002>이라는 작품에서 건져 올릴 수 있다.
어디론가 흐를듯한 안개 위에 떠 있는 바위 위에 한 마리 새가 있다. 전시장에서 멀리서 보거나 그저 휙 지나친다면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진실이다. 하늘과 바다와 바위의 고요 속에서 날아갈 허공은 새에게 자유이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인 것이다. 그 새는 보는 이에게 부재와 상실, 혹은 희망과 기쁨 등 자신이 놓인 위치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 보인다.  결국 바다는 자신의 자화상인 것이다. 멀리서 온 후퍼가 존재의 의미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후퍼와의 대화는 어디까지 깊어질 것인가. 아니 바다와의 연정은 얼마나 깊어질 것인가. 이 모든 것은 세상과의 소통이고 영혼과의 소통이다. 그리고 이 갈망은 이어짐과 관계가 있다.
그의 바다 사진에는 메르쎄데스 쏘사(Mercedes Sosa, 1935~    )가 부른 노래 중에 “인생이여 고마워요”가 가장 잘 어울린다.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혜택을 주어서/나에게 준 두 개의 밝은 별 그것을 열면/흑(黑)과 백(白)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으니까/높은 하늘 깊이 별들이 보이고/그리고 군중 속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네요.

삶의 계속됨 말이다. 가끔 생에서 멀찌감치 물러나 머뭇거릴 때, 그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거기엔 위대한 삶의 긍정이 도사리고 있다. 누가 이 이어짐을 끊으려 하겠는가. 생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바다가 이토록 환상적인데 말이다.



사진제공 김영섭사진화랑(Tel 733.6331_3)
*칩 후퍼의 사진은 김영섭 사진화랑에서 <캘리포니아의 태평양Califonia's Pacific>전으로 소개되었다. 사진은 www.gallerykim.com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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