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것에 대한
                                  <꽃게 무덤>의 작가 권지예

소설가 권지예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왠지 자주빛이나 청록빛의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그것은 본래의 색에서 한 톤씩 어두워지거나 깊어진 색들이다.
소설들을 읽는 내내 뭔가 확연하지는 않지만, 알 것 같은 느낌을 주기고 하고,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끌고 내려가는 묘한 매력을 풍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펑하고 사라져버린다. 그것이 권지예의 소설이다. 더 깊게 들어가기에는 뭔가 위험해 보이지만, 그래서 더 매혹적인...
최근 이년 만에 <꽃게 무덤>이라는 소설집을 내고 독자들을 맞이한 권지예 씨를 오늘 만나보았다.  아쉽지만, 다음 작품의 준비를 위하여 지방에 내려간 관계로 서면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취재/임보연 기자

다음 작품의 준비라...  
그녀는 현재 미술책을 집필중이라고 한다. 원래 개인적으로 그림그리기와 보는 것을 모두 즐기는 편이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그녀의 작품 속에서 그림에 대한 흔적을 얼핏 대하기도 했었다. 특히나 <뱀장어 스튜>에서는 피카소의 그림인 ‘뱀장어 스튜’를 소설 첫머리에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또 그만큼 강렬한 느낌을 남기기도 했었고 말이다. 이번 미술책은 화가의 삶과 그림 중에서 특별한 영감을 주는 요소를 찾아서 단편소설처럼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업이라고 한다. 이미 그녀의 소설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쓴 것도 제법 있다고 하니 이번 작품 역시 미리 기대를 해본다.

나는 묻는다. 그녀의 소설을 읽어오면서 보았던 것에 대해여... 소설을 보면 그녀가 항상 이야기하고자 하는 ‘무엇’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가? 내 생각으로는 인물들을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으로 몰아넣음으로써 그 안에서 사랑(혹은 성욕)이나 죽음, 삶에 대한 탐욕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렇게 몰아넣음으로써 무엇을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인가?
그녀가 대답했다.
“저는 세계가 무척 폭력적이고 절망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좀 비관론자인지 모르지만. 그런 세계 속의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바람과는 상관없이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릴 수가 있습니다. 소설에서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인간들이 자신들의 실존을 향해 부단히 애쓰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희망을 보여주든 절망을 보여주든 우리는 현재 이곳에 살고 있으며,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즉 삶의 위대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대답이 참 맘에 든다.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나에게 <꽃게 무덤>이라는 제목은 참 신선하다. 그녀는 그 제목을 통해서 사랑의 무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들 죽은 육체의 집이 무덤이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를 다루고 싶었습니다. 결국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주인공 여자는 사랑하는 옛사람의 죽음을 바다에서 꽃게를 먹는 행위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꽃게를 먹는 집요한 식욕이야말로 지독한 사랑의 집착 아닐까. 그 여자를 사랑하는 주인공 남자는 육체적 사랑이란 버릴 수 없는 입맛과 같은 것이고 결국 무덤같이 공허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소설에서 보면,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이야기가 만들어가는 것 같다. 식욕과 요리에 대한 묘사, 그리고 그를 통해 드러내는 성욕과 죽음이 통하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그녀는 인간에게 음식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조건이라고 말한다. 고로 식욕은 기본적인 욕구이고, 식욕과 성욕이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인간의 음식에 대한 욕구를 통해 사랑에 대한 욕망이나 생존 욕망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대답이 시원스레 느껴지는 건 왜일까?

또 그녀에게 묻는다. 주인공들에게는 항상 결핍된 것이 있다고. 피붙이의 부재, 사랑의 상처로 생긴 공허, 그리고 결국은 죽음으로 세상에 자신의 빈자리를 남기는 인물들을 보았다. 그들의 결핍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꽃게무덤>이라는 소설은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보면 됩니다. 공, 즉 결핍, 비어있음이 색이라는 우리의 모든 욕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지요. 결핍은 무언가를 갈구하게 되고 무언가는 결국 공허한 것이 되고... 결핍은 결국 어쩌면 창조의 원동력, 삶의 동력을 주는 엔진 같은 걸로 볼 수도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으로 남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사랑’으로 고통 받기도 하고, 구원을 기대하기도 한다. 과연 권지예 씨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
“사랑은 서로의 존재를 채워주고 존재를 변화시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잃고 나면 존재가 흔들리고 공허감을 느끼고 하는 거지요. 사랑이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의존한다든다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아요. 서로의 존재에서 느끼는 조화로운 충만감이 사랑이 아닐까 싶어서요.”

그녀는 소설을 쓰고 나서, ‘아, 이제 만족스럽다’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늘 어딘가 좀 부족하고... 그러니 계속 ‘여전히’ 쓰고 있다고 말한다. 이야기의 끈이 끝까지 풀리진 않겠죠... 라고 한다. 그런 그녀가 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특별히 바라는 것은 없지만, 다만 그들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자신들의 인생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신을 참 복잡한 인간형이라고 생각하는 작가 권지예.
여러 가지 캐릭터를 섞어놓은 듯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속으로 열정이 끓고 있지만 평범한 사람이라고.

서면 인터뷰로 진행을 하였기에, 대신에 인터뷰 기사를 쓰는 내내 권지예 씨의 소설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러다보니 나도 사랑이 하고 싶어졌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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