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장, 터프우먼
21세기는 3F(Female, Fiction, Feeling)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각 분야에서 여성의 활약과 도전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젊은 여성 CEO들이 화려하게 등장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흔적도 없이 조용히 사라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30년 넘게 굴지의 기업을 경영하며 정상급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여성 기업인이 있다. 애경그룹의 총수 장영신 회장이다.
터프우먼 장영신

소꼽동무, 남편의 유업을 잇다
경영학자들은 남편 뒤를 이어 CEO가 된 장 회장이 어떻게‘경영의 천애고아’에서‘경영의 어머니’가 됐는지를 설명하며, 그를 사실상 애경의 창업주로 규정하고 있다. 1970년 남편이 갑자기 타계했을 때 장 회장의 나이는 35세였다. 네 아이의 어머니로 평범한 주부였던 그는 경영에 관여하던 친오빠와 경영층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접 경영에 나섰다. 장 회장이 경영참여를 선언하자 시댁과 친정 가족은 물론 회사 임원들까지 반대하고 나섰다.“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부터 “그만두겠다.”고 협박하는 임원들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애경이 얼마 가지 않아 망하겠다.”는 말도 했다. 남편이 죽은 뒤 사장 자리를 맡고 있던 둘째 오빠 고 장성돈씨는 장 회장이 취임하자 회사를 나가버리기도 했다. 오로지 그의 친정 어머니만이‘너의 결심이 그렇다면 해봐라. 내가 도와주마’라며 살림을 맡고 아이들을 키워 줬다. 장 회장은 1971년 남편 타계 1주기가 끝나자마자 경리학원에서 복식과 부기를 배웠고 이듬해인 1972년 8월1일부터 출근했다.1954년 6월 남편 고 채몽인씨가 5000만환으로 세운 ‘애경유지공업주식회사’가 현재 LG그룹의 모태인 비누제조사 락희화학과 경쟁을 벌이며 사업확대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다.
당시의 심경에 대해 장 회장은“잠자리에 들면서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매일 일감을 집으로 가져와 밤늦도록 공부했고, 관청에선 담당공무원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다는 이유로 동행했던 회사 임원으로부터 책상 밑으로 구둣발에 차이기도 했다. 경제인 모임에서는 홀로 여자라는 자격지심에 기둥 뒤에 숨어 몇시간이나 서 있다 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잘해보겠다는 일념으로 겁없이 뛰어들었지만 기업환경도 나쁜 것뿐이었다. 경영에 참여한 1972년 말부터 오일쇼크에 따른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시작됐다. 그러나 장 회장은 더욱 힘을 냈다.‘불황에 투자하라.’를 모토로 공장을 지방으로 확대 이전하는 한편 남편이 계획만 했던 석유화학 원료제조 분야를 애경의 미래 지표로 삼아 애경유화·애경화학·애경PNC(전 애경공업)·애경정밀화학·코스파 등 관련 회사를 속속 설립했다. 비누 산업에는 한계가 있지만 본격적인 화학공업은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분야는 지금까지도 애경에서 매출 비중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사업군이다. 남편이 설립한 비누회사도 소홀하지 않았다. 제품을 고도화시키는 데 집중했던 만큼 히트 상품도 꾸준히 내놓았다.
그녀에게 듣는다
“한국 여성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우수한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여성들은 똑똑하고 능력도 있고 교육도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여성을 중간관리직에 앉혀 놓으면 도무지 남자들이 그 밑에 붙어 있질 않는 겁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누구보다 똑똑하기는 한데 사람을 다룰 줄 모르고, 문제가 발생하면‘내가 책임진다’는 자세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인재 중시’입니다. 오랫동안 회사 경영을 하며 내린 결론은 우수한 인재처럼 큰 재산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일쇼크나 외환위기 때도 유능한 인재들이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저는 업종 내 최고 회사를 지향해 왔습니다. 소비자가 그 회사 제품이라면 안심하고 쓸 수 있고 그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명예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는 경영을 하면서 일관되게 지켜온 철학입니다. 업종 최고라는 명예를 갖고 싶었지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이 된다거나 돈을 가장 많이 벌고 싶다거나 하는 욕심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저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오는 스트레스를 굳이 부정하고 피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항상 어려웠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해나가다 보면 난관이 하나하나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 때 느끼는 성취감은 스트레스를 상쇄하고도 남지요.”NP
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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