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하늘과 바람의 손짓을 따라~

선선한 바람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가을의 절정 10월, 그 바람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떠나라고 손짓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할애해 홀연히 떠나보는 것도 복잡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천혜의 자연은 말할 것도 없으며, 문화재ㆍ역사인물탐방, 전설과 설화가 가득한 전남 무안군으로 떠나보자.

   ▲ 조금나루해변(일몰)
1. 회산 백련지(回山 白蓮池)
회산백련지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축조된 약10만평 저수지로써 인근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했다. 그러나 영산강의 풍부한 농업용수가 공급되면서 저수지 기능은 사라지고 현재의 백련자생지로 그 면모를 갖추게 됐다. 1997년 제1회 연꽃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해 매년 여름이면 연꽃축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연꽃은 진흙에서 맑은 꽃을 피우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상징하기도 하며, 빛과 극락정토를 상징하기도 하여 생명의 근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도와 이집트가 원산지인 백련은 7월~9월 사이에 하얀 꽃을 피우는데 일시에 피지 않고 3개월 동안 계속해서 피고 진다. 우리나라에 산재해있는 연꽃의 대부분은 홍련이며, 백련은 매우 희귀하여 백련의 집단 자생지로써는 동양최대의 규모이다. 또한, 이곳은 사라져가고 있는 가시연꽃의 집단자생지역으로 학계에 알려져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회산 백련지에는 백련ㆍ홍련ㆍ수련ㆍ어리연 등 각종 연꽃들과 50여종의 수생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수생식물 전시관이 있다.
   ▲ 회산 백련지
2. 초의선사 탄생지(艸衣禪師 誕生地)
초의선사는 조선 정조 10년(1786년) 4월 5일(음) 전남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에서 출생했다. 해남대흥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헌종으로부터 ‘대각등계보제존자 초의대선사’라는 사호(賜號)를 받았다. 또한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당대의 거유석학등과 종파를 초월하여 교유했으며 시(詩), 서(書), 화(畵), 다(茶), 선(禪) 다섯 가지 부문에서 오늘까지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인물로서 어느 한 부문만 훌륭한 것이 아니다. 이 다섯 가지의 부문에서 학문이나 종파를 초월해서 그 업적이 뛰어나다. 조선후기 침체된 당시의 불교계에 선풍을 일으킨 선승(禪僧)으로 한국 다도(茶道)를 중흥시킨 다성(茶聖)으로 추앙을 받아 1997년 5월 문화인물로 선정된 계기로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 산94-3번지에 생가와 추모각, 추모비 및 기념전시관을 완공하고 다(茶)문화관, 다(茶)교육관 등을 조성래 전국의 다인(茶人)들이 성지로 여기는 곳으로 이를 기념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매년 탄생일에 초의선사 탄생문화제를 개최하여 많은 관광객 및 다인(茶人)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 초의선사 탄생지
3. 백로ㆍ왜가리 번식지(白鷺ㆍ왜가리 繁殖地)
무안읍 용월리 상동 마을은 천연기념물 제211호로 지정된 백로와 왜가리가 주종을 이루는 집단 번식지이다. 해마다 3~4월이면 동남아지역에서 월동한 백로와 왜가리가 이곳을 찾아와 집단을 이뤄 번식하고 10월이면 동남아지역으로 다시 남하 이동해 가곤 한다. 해마다 이 마을 청용산에는 백로ㆍ왜가리ㆍ해오라기 등 4,000여 수가 찾아와 산을 하얗게 덮어 장관을 이룬다. 인근 용연저수지에 조성된 작은 인공섬과 한가롭게 노는 백로ㆍ왜가리의 모습이 어우러져 더욱 신비를 자아내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백로가 찾아와 집단 번식을 하면 풍년과 행운을 안겨다 준다고 해서 백로를 길조로 여겨 오늘날까지 잘 보호해 오고 있다.
   ▲ 백로ㆍ왜가리 번식지
4. 승달산(僧達山)
무안군 청계면과 몽탄면에 걸쳐있는 승달산은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위치한 해발 333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서쪽으로는 서남해안의 뛰어난 조망과, 남으로는 목포와 영산호가 동으로는 영산강 줄기가 유유히 흐르는 모습을 한눈으로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겨울에도 훈훈한 훈풍을 느낄 수 있는 명산이다. 승달산이라는 명칭은 고려 인종(1122년) 때 원나라 승려 원명이 이산에 올라와 교세를 크게 떨쳤는데, 당시 제자 500명이 찾아와 도를 깨달았다고 하여 산 이름을 승달(僧達)이라 했다고 한다. 승달산에는 법천사, 목우암, 총지사지, 석장승, 불상 등 불교 사적이 많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산에 묘를 쓰면 삼현, 칠현, 판서에 왕비가 배출된다는 설이 있어 다른 산에 비해 유난히 묘지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승달산 산행은 목포대학교 정문을 기점으로 매봉~ 깃봉~ 하루재~ 천지골을 거쳐 정문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 코스가 가장 인기가 높다. 하루재를 지나 남쪽으로 더 내려가서 정상을 밟은 뒤 서쪽 능선을 타고 목포대 운동장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도 애용되며 특히 주말에는 등산로가 완만하여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산행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5. 법천사 목우암(法泉寺 牧牛庵)
승달산 자락에 위치한 법천사 목우암은 신라 성덕왕24년(725)에 서역 금지국의 스님 정명이 세운 암자였다. 그 이후 고려 인종~ 의종 연 간에 중국 임천사 스님 원명이 고쳐지었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원명스님이 꿈에 백운산에 있는 총지사에서 소 한마리가 나와 이 암자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 잠에서 깨어난 스님이 이를 이상히 여겨 암자에 가보니 계곡바위에 소발자국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발자국을 따라와 절을 지었으니 목우암(牧牛庵)이라 했다 한다. 그밖에 원명스님이 풀로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오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법당요사체, 축성각, 석등, 부도가 있으며 특히 목우암 법당안에 봉안되어 있는 삼존불은 지방문화재 제172호로 지정관리 되고 있다.

   ▲ 목우암
6. 톱머리 해수욕장
망운면 피서리에 소재한 톱머리 해수욕장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썰물 때 펼쳐지는 길이 2km, 폭 100m의 넓은 백사장과  보호림으로 지정된 울창한 해송이 바닷가로 넘어질 듯 기울어져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해수욕장의 긴 백사장을 따라 횟집들이 자리 잡고 있어 해수욕과 함께 싱싱한 생선회도 즐길 수 있다. 썰물이 되면 광활하게 드러난 갯벌에서 갯벌체험을 할 수 있다. 편리한 교통편으로 가족 단위 피서객이 많이 찾으며, 호젓하면서도 빼어난 경관과 인근 해안에는 돔, 숭어 등 어족이 풍부하여 낚시 겸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또, 이 지역에서는 선물용으로 인기가 좋은 단감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 톱머리 해수욕장 해변
7. 조금나루 유원지
망운면 송현리 마을 끝에 툭 불거져 나온 조금나루 유원지는 현재의 도로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썰물 때는 마을과 연결되었으나, 밀물이 되면 섬이 되어 나룻배를 타고 다니던 곳이었다. 4km가 넘는 긴 백사장에 울창한 해송림까지 겸비한 천혜의 자연발생유원지다. 놀이공간이 충분해 여름 피서철에는 각종 단체나 모임에서 즐겨 찾는 곳으로 족구, 배구 등을 즐기며 인근 탄도만에서 어획한 싱싱한 활어회와 산낙지 등을 맛볼 수 있어 미식가들이 즐겨 찾고 있는 것은 물론 야영하며 바닷가의 정취를 즐기기에 좋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의 낙조는 매우 황홀하며 인근의 횟집에서는 이 지역만의 별미인 기절낙지와 각종 생선회도 맛 볼 수 있다. 또한 해당화 자연학습장이 조성돼 있어 어린이들의 관찰학습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8. 도리포(道里浦)
도리포는 자그마한 포구로 포구 앞에 횟집이 늘어서 있고 인근 영광군과 함평군을 경계로 하는 칠산 바다와 인접하고 있다. 도미, 농어 등 바다낚시로 유명하고 최근 인근바다에서 14세기경 고려청자 639점이 인양되어 국가 사적지로 지정, 도리포도 서해안의 여느 일출 명소와 마찬가지로 바다 쪽으로 길게 나와 있어 일출을 볼 수가 있다. 겨울철에는 함평의 바다 쪽에서 해가 뜨고, 여름철에는 영광의 산 쪽에서 해가 뜬다. 도리포 포구 반대편 칠산 바다 쪽의 일몰 또한 장관이며 일출과 일몰을 같은 장소에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인근에 무안생태갯벌센터를 2010년 개관해 갯벌의 생태는 물론 무한한 갯벌의 가치를 소개하는 ‘교육의 장’으로서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연구를 통한 실질적 생태환경교육과 체험을 통한 현장학습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다양한 볼거리 제공하고 있다.

   ▲ 도리포 일출
- 해제반도의 일몰 풍경
▲ 무안읍에서 서쪽 방향으로 현경 ~ 해제 ~ 신안군 지도 방향으로 가는 길(국도24호선)을 해제반도라고 칭한다.
▲ 이 길을 따라가면 높은 산이 없고, 도로 양쪽이 바다로써 모두 갯벌이 드러나는 구릉지대로,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 바닷물이 빠지고 나면 갯벌위로 반짝반짝 빛나며 떨어지는 석양빛과 조그만 어선 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며 드라이브 코스로 매우 좋다.
▲ 해제반도 가는 길 곳곳에 빨갛게 드러난 황토밭과 겨울철 ~ 이른 봄의 무안 들녘은 초록빛을 띠고 있어(국내 최고의 양파생산지가 구릉위에 펼쳐져 있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9. 홀통 유원지
무안군 현경면에 있는 자연발생 유원지로써 울창한 해송과 긴 백사장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해수욕, 야영, 바다낚시, 해수찜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여름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수심이 낮고 파도가 잔잔하여 해양스포츠의 꽃이라 불리는 윈드서핑의 최적지로 널리 알려지면서 전국 윈드서핑 동호인들의 메카로 자리 메김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매년 전국 윈드서핑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 홀통 해변
10. 무안 식영정(務安 息營停)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에 위치한 식영정은 한호(閑好) 임연(林煉)선생이 1630년 무안에 입향한 이후 강학소요처로 지은 정자로써 굽이 쳐 흐르는 영산강과 그 주변 경관이 잘 어울려 당시 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은 곳 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임연(林煉)의 증손으로 동사회강을 지은 노촌(老村) 임상덕(林象德)이 제현과 교류하는 등 나주임씨 강학교류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정자건립에 관한 자료는 1643년에 임연이 지은 복거록(卜居錄)에 자세히 나타나 있으며 교류한 문인들도 많이 나타나 있다. 정면3칸 측면2칸 팔작 단층기와 건물로써 문화재 자료 제237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참고로 담양에 있는 식영정(息影停)은 ‘그림자가 쉬어가는 정자’라는 뜻이며, 무안군에 위치한 식영정(息營停)은 ‘강학교류의 장소’라는 차이가 있다.

11. 호담항공우주전시장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에 위치한 호담항공우주전시장은 전 공군참모총장 옥만호 장군이 고향사랑의 실천과 우리공군의 발전과정을 소개하고 후세들의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사재를 들여 2003년 건림, 무안군에 기부ㆍ채납했다. 3,000여 평의 야외전시장에 실물항공기 12대가 전시되어 있으며 250평의 실내전시관 등의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전국 초ㆍ중ㆍ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 호담항공우주전시장

☞ 간추려 본 무안군 전설/설화
▲ 몽탄강 전설

고려태조 왕건의 후삼국을 통일하기 전이었다. 왕건은 후백제의 견훤과 일전을 하였는데 물밀듯이 밀려오는 견훤군의 인해전술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목숨을 걸고 부하들을 독력하며 싸웠으니 한번 기울어진 전세는 회복되지 않고 왕건군은 견훤군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삼면은 견훤군이 진을 치고 있고 앞으로는 비웃기라도 하듯 영산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포위망을 뚫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숫 적으로 몇 배나 우세한 견훤군은 오히려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모든 것은 절망적인 상태였다.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지 않고서는 이 위기를 도저히 극복할 수가 없었다. 왕건은 깊은 좌절의 늪에 빠졌다.

▲ 물바위 전설
아주 먼 옛날, 금술 좋기로 소문난 부부가 슬하에 두 남매를 두고 살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남매의 재롱 속에 세월 가는 줄을 모르고 살고 있었으나 오직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며, 평생을 가난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점이었다. 이는 곧 이들 부부의 한이 되어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하루는 이 가난한 집에 과객이 들게 되었다.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날도 어두워지고, 이 근처에는 숙식을 해결할 만한 주막도 없어서 하룻밤 먹어가게 해 주십시오” 가난한 부부는 생일이나 명절 때 쓰기 위해 감춰 두었던 찹쌀을 찾아 밥을 짓고 반찬을 잘 장만하여 극진히 대접하고 자기들이 덮던 이부자리를 손님에게 주고 집안 식구들은 이불을 덮지 못한 채 밤을 밝혔다. 과객은 너무나 감사해서 충분한 보상을 하였으나 착한 부부는 “가난해서 우리 집에 오신 귀한 손님에게 충분한 접대를 못한 것도 죄송스러운데 이렇게 숙박비까지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는 정 없 말씀하지 마십시오” 하고 완곡히 사양했다. “제가 수없이 많은 곳을 다녀 보았지만 진정 당신들 같이 따뜻한 인정은 별로 대하지 못했소. 보아하니 생활이 어려우신 것 같은데 주인장께서는 저를 따라가서 저와 같이 무역 일을 하면 어떻소” 과객은 자신은 중국 남경무역상을 하고 있는데 만금을 모았다. 한 번만 다녀와도 평생 먹고 살 돈을 벌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남편은 솔깃해서 과객을 따라 남경 장삿길에 올랐다. 남편은 산 설고 물 설은 중국 남경 땅으로 떠나보내 아내는 남편의 금의환향을 바라며 수개월이 지난 후부터 바닷가에 배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목욕재계를 하고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날마다 어린 남매와 함께 바닷가에 나가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마침내 백발이 성성했고, 남매 또한 성혼도 못한 채 늙어갔다. 주위 사람들은 이들에게 남경에 간 남편을 잊으라고 했으나 반드시 큰 부자가 되어 돌아온다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닷가에 나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기다렸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이들 가족은 추위와 굶주림에 병까지 얻어 남경 땅 소식은 끝내 들어보지 못한 채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이들 식구가 세상을 떠난 지 며칠 후 목화 같은 흰 구름이 온 바다를 덮고 기이한 굉음이 바다를 진동하면서 흰 구름 덥힌 물속에서 하나의 바위가 솟아올랐다. 이를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바위가 솟아 있다고 외치니 솟아오르던 바위가 그만 솟기를 그쳤다고 한다. 그 일이 생긴 이후부터 부인의 넋이 변화한 것이라 하여 ‘넋바위’라 하다가 물위에 있다하여 지금은 ‘물바위’라고 부른다. 이 바위는 그다지 높지 않으나 물이 바위를 넘지 않고 만조 시라도 머리부분40~50cm는 항상 물위에 나와 있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부인의 자태를 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물바위 위로 물이 넘으면 반드시 상스럽지 못한 일이 생긴다고 한다. 한일합방(韓日合邦)때도 물이 바위를 넘었고, 6ㆍ25 사변 때도 물이 바위를 덮었으며 5ㆍ18광주의거 때도 바닷물이 바위를 덮었다는 것이다. 또 물이 바위의 수위선보다 낮으면 흉년이 들고, 조금 높으면 풍년이 든다고 전해오고 있다.

☞ 문화재탐방(국가지정 문화재)
▲ 도리포 고려청자(사적 제395호, 1997년 4월 18일 지정)
1995년 10월 11일부터 1996년 11월 13일까지 3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청자대접 등 총639점의 유물이 인양됐다. 인양유물은 1370-1380년대 상감청자로 강진일대 도요지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유물의 문양은 상감기법의 연판문, 운봉문, 국화문등 내외에 거친 편으로 14세기 후반기 고려청자 쇠퇴기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출토유물은 주로 왕실 및 관청소용의 상감청자들이다. 특히 ‘청자상감연판문잔대’, ‘청자팔각접시’ 등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어 고려말기 청자형태나 문양 변천 양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지정해역은 3차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한바 지속적으로 유물이 인양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유물의 잔존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인양된 유물은 현재 목포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 무안 유교리고가(중요민속문화재 제167호, 1988년 1월 10일 지정)
본 전통가옥은 1912년 당시 전남지방의 천석꾼이었던 나종만에 의하여 건립됐으며, 현재 국가 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67호로 지정 보호를 받고 있다. 전체적으로 임좌 방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비교적 경사가 급한 지형을 3단으로 잘 정지한 후에 건물들을 배치했다. 대문간에 들어서면 자연석으로 포장된 경사로가 나타나며 그 끝부분에는 행랑채가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행랑채에 난 중간문을 통과하면 좌측에는 넓은 바깥마당이 있으며 그 중앙 아래쪽으로는 곡간채가 큰 규모로 건축되어 있다. 안채는 지형의 정지상 바깥마당과는 2단으로 석축을 한 후에 맨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안채와 곡간채, 그리고 행랑채, 대문간 등 4채 만이 남아 있으나 그 이전에는 당시주택건축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동재와 서재가 안채 뒤 후원에 독립적으로 건축되어 있었으며 사당과 사랑채등 많은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 무안 청천리 팽나무와 개서어나무 숲(천연기념물 제82호, 1962년 12월 3일 지정)
청천리마을 앞 국도1호선 도로변을 따라 길게 소재하고 있으며 나무들이 언제 심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현재 팽나무 66그루, 개서어나무 20그루, 느티나무 3그루가 있는 숲이 천연기념물 제82호로 보호 받고 있다. 일부 나무의 둘레는 평균 3m이며, 높이가 30m에 이르는 나무도 있다. 전설에 따르면, 대략 500여 년 전에 이 마을에 달성배씨가 들어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자손을 번창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서해의 해풍이 불어와 집은 물론 농사에도 많은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고민하던 중 한 나그네가 지나가는 말로 마을 앞에 팽나무와 개서어나무를 심으면 될 것이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100여 그루의 나무를 구하여 심었다.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바닷바람을 막아주자 자손도 늘고 마을도 번창했다고 한다.

▲ 무안 용월리 백로와 왜가리 번식지(천연기념물 제211호, 1968년 7월 18일 지정)
이곳에 백로가 처음 둥지를 튼 것은 1946년 3월로 처음에는 30여 마리가 찾아왔으나 6ㆍ25가 터진 1950년에는 총성에 놀란 듯 찾아오지 않았다. 그 후 1966년 마을 앞 청용산 등 사방 2㎞의 소나무 숲에 백로 2천여수와 왜가리 5백 여수, 해오라기 수십 수가 찾아들면서 천연 번식지를 이루게 됐다. 매년 청용산에는 백로ㆍ왜가리, 해오라기 등 4,000여수가 찾아와 산을 온통 하얗게 뒤덮어 장관을 이루곤 한다. 용연저수지에 조성된 인공섬과 한가롭게 노니는 백로ㆍ왜가리의 모습이 어우러져 더욱 신비를 자아내고 있다. 이곳에는 매년 3~4월 경이면 동남아 지역에서 월동한 백로와 왜가리가 이곳을 찾아와 집단을 이뤄 번식하고 10월이면 동남아의 월동지역으로 다시금 남하 이동해 가곤 한다. 최근 자연환경의 파괴와 환경오염 지역이 늘어나면서 이곳을 찾아오는 백로ㆍ왜가리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백로ㆍ왜가리가 서식하면서 부락에 액운이 없고 부흥해지고 있다고 믿으며 번식지 보호에 힘쓰고 있다. 백로ㆍ왜가리 번식지가 있는 이곳 상동마을은 환경친화마을로 지정되어 자연생태 학습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NP>

   ▲ 생태갯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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