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한 운명,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

‘정치 테러’란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해 암살, 파괴 등을 수단으로 하는 테러리즘의 일종이다. 사적인 이해관계 등에 의한 살인이나 폭력이 아닌 정치적 목적이 개입된 조직적인 행위를 뜻하는 개념이다.


전국 동시 지방 선거를 불과 십여 일 앞두었던 지난 5월 20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지원 유세 도중 괴한에게 흉기로 상해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문구용 커터칼을 든 50대 남자에 의해 박 대표는 오른쪽 귀 밑에서부터 턱으로 내려오는 10센티미터 정도의 자상을 입었고, 60여 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았다. 잘못하면 경동맥이 다칠 수 있었던 살인미수에 가까운 테러였다. 민주국가에서 이토록 야만적인 행위가 일어난 것에 대해 국민들은 개탄했다.
이 사건을 두고 한나라당과 각종 언론은 정치적 음모의 가능성을 제기하며, 사건의 배후를 철저히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 용의자의 통화내역, 자금출처 조사 등을 통해 결국은 사회에 불만을 품은 한 남자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이 났으나, 유력 대권 후보에 대한 피습이었던 만큼 다양한 음모설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으며, 온 국민은 거물급 정치인이 테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에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양친을 모두 정치적 테러로 잃은 박 대표였기에 이번 사건은 더욱 비극적이었다. 이제껏 한국 정치사에는 각종 이념다툼, 노선분쟁 등에 의한 정치적 테러가 꾸준히 있어왔다. 정치테러 의혹이 불거졌던 박 대표 피습 사건을 계기로 한국 정치사에 뿌리 깊었던 정치적 테러리즘을 조명해 본다.

정국의 혼란 속, 아까운 거목들 희생

우리나라에선 1945년 해방 직후 혼란기부터 주요 정치인들에 대한 크고 작은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어왔다. 광복 초기, 대립되는 이념이 공존하는 정국의 혼란 속에서 아까운 거목들이 희생되었다. 좌·우파가 함께 주도해 만든 건국준비위원회 활동에서 나타나듯 광복 초기 자주적 독립국가 수립을 위하여 좌익과 우익은 손을 맞잡았으나,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신탁통치안’에 대해 찬탁과 반탁을 둘러싼 대립이 격화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 민주당의 수석 총무로서 신탁통치에 반대했던 송진우가 자택에서 자신의 경호원 출신인 한현우에게 피격을 당해 사망한 것이 거물 정치인에 대한 본격 테러로는 처음이다. 그 후, 1946년 5월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됐고, 6월에 이승만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며, 정치계의 골은 깊어져 갔다. 이 과정에서 통일된 독립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좌우합작위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좌익계 인사 여운형이, 귀가하던 길 극우파 청년 한지근의 저격으로 숨졌다. 여운형의 경우 해방 후 2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10차례나 습격을 당했을 정도로 해방 직후에는 정치테러가 빈발했다. 같은 해 한국 민주당 정치 부장이던 장덕수가 종로경찰서 경사의 저격을 받고 숨지는 일도 벌어졌다.

여운형이 암살된 이후에 통일독립정부 협상은 계속해서 결렬되었고, 남한의 단독 총선거 실시로 우리나라는 분단국가가 되었다. 광복 정국에서 정치 테러로 희생당한 가장 큰 정치적 거목, 남북한을 오가며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 의견을 고수하던 백범 김구는 결국 암살당하고 만다. 독립운동가 출신의 정치가 김구가 1949년 6월 집무실인 경교장에서 현역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해 피살된 사건은 아직까지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안타까운 서거이다. 송진우, 여운형, 김구 등은 모두 이념적 대립 속에서 좌익 혹은 우익 테러범에 의해 암살당했으나, 그 배후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광복 후 정치적 혼란 도중에 민족을 이끌어 갈 지도자들이 암살당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앞날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직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

박정희 정권 하에서는 주로 야당 정치인들이 테러 대상이 되었고, 그에 대한 정권 차원의 개입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었다. 1969년 6월 대표적 야당 정치인이던 김영삼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의 자택 부근에서 매복한 괴한들이 김 총무의 승용차 창문에 초산을 뿌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신병 치료차 일본에 체류 중이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 씨가 1973년 8월 일본 도쿄의 팔레스 호텔에서 납치돼 한국으로 끌려와 외교 문제까지 비화된 일도 있었으나 정확한 진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 후 1974년 북한공작원이 포섭한 재일교포 문세광의 총탄에 육영수 여사가 살해되었고, 1979년 우발적 충동사고를 위시한 내란 음모설일지 모른다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인 10·26 사태도 아직까지도 명확히 풀리지 않은 정치테러로 남아있다. 정치적 테러로 무너진 한 정권의 종말이었다.

특정 개인을 향한 테러는 아니지만 1966년 9월 당시 국회의원이던 김두한 씨가 국회에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을 향해 분뇨를 투척한 웃지못할‘국회 똥물투척 사건’도 있었다. 당시 삼성이 비료공장 건설 명목으로 수입금지 품목이던 사카린 원료를 대량 반입하며 불거진 권력형 부정사건을 겨냥해 정치적 목적으로 저질러진 사건으로, 그는 의원직을 사퇴하고 구속되었다. 1987년엔 통일민주당 지구당 창당 집회에 폭력배가 들이닥쳐 행사를 방해한 일명‘용팔이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이 기소되었다.
제5ㆍ6공화국 이후로는 주요 정치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테러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1991년 6월 새로 임명된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가 취임을 앞두고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나오던 한국외국어대에서 대학생들이 던진 달걀과 밀가루를 뒤집어 쓴 일화가 있다. 1999년 6월 퇴임 후 첫 외국출장을 나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박의정 씨가 던진‘페인트 달걀’을 맞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71세 노인 박 씨는 사건 직후 붙잡힌 뒤 구속기소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위대한 지도자들의 못 다 이룬 꿈들

외국의 정치 테러 사례로 가장 유명한 것으로 케네디 家의 비극을 들 수 있다. 1963년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유세지인 댈러스에서 자동차 퍼레이드를 벌이던 중, 리 하비 오즈월드에게 저격당해 피살됐다. 미 사법당국은 오즈월드의 단독범행이라고 발표했지만, 용의자역시 살해됨에 따라 배후를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종전을 주장하던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직후, 미국의 대외 정책은 바뀌게 된다. 각종 사고와 정체 테러로 운명을 달리 한 가족이 많은 케네디 가는 여러 차례 비극을 맛봤다. 1968년 케네디의 동생이자 민주당 대통령 후보이던 로버트 케네디도 로스앤젤레스의 한 호텔에서 캘리포니아 예비선거 승리를 자축하는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던 중 괴한이 쏜 총탄에 숨졌다.
흑인 청소부의 파업에 동조하기 위해 멤피스에 들른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은 한 백인 암살범이 쏜 흉탄에 목숨을 잃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제임스 얼 레이는 살인죄로 99년간의 감옥형을 선고받았다. 인도의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도 1948년 정치적 반대자에 의해 희생되었다.

영원히 사라져야 할 테러리즘

정치적 테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있어왔다. 각종 이권다툼이 펼쳐지는 정치권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숙적을 제거해 자신의 정권을 굳히려 한 정치술수가들이 얼마든지 많았다. 로마시대 줄리어스 시저의 암살사건부터 조선시대 왕권다툼으로 인한 혈족 간의 유혈사태 또한 정치적 테러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의 반열에 들어선 우리나라에서 한동안 잠잠하던 정치적 테러가 발생한 것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위대한 정치 지도자의 탄생, 그리고 부재에 따라 역사는 뒤바뀌게 된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테러라는 비열하고 불필요한 스캔들은 영원히 추방되어야 할 것이다. NP

<해방 이후 국내 주요 정치 테러>
1. 1945년 송진우, 자택에서 괴한으로 변장한 한현우에게 피살
2. 1947년 해방 후 2년 동안 10차례나 피습을 당해온 정치인 여운형은 청년 한지근이 쏜 총에 맞아 피살
3. 1949년 백범 김구, 별장이자 자택인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해 피살
4. 1969년 신민당 원내 총무인 김영삼의 자택 앞에 매복해 있던 괴한들이 총무의 승용차 창문 부분에 초산을 뿌렸던 사건
5. 1973년 일본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야&#45873; 김대중, 도쿄 팔레스호텔에서 납치당한 뒤 사형 직전까지 갔으나 무사히 살아남
6.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전 박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 문세광에게 저격당해 피살
7.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정보부장 김재규의 피격으로 숨짐
8. 1991년 취임을 앞둔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는 대학 강의 후 건물에서 내려오는 출구에서 학생들로부터 달걀과 밀가루를 세례 받음
9. 1999년 김영삼 전 대통령, 김포공항에서 60대 남자가 던진 붉은색 유성 페인트가 들어있는 달걀 맞음

<외국의 주요 정치 테러>
1. 1948년 인도 마하트마 간디, 조국통일 위해 단식투쟁을 하던 중 힌두교도에게 피살
2. 1963년 텍사스에서 자동차 퍼레이드 중이던 존 F 케네디 대통령, 저격당해 사망
3. 1968년 로버트 케네디 민주당 대선 후보, LA에서 총격 받아 사망
4. 1968년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백인의 총탄에 사망
5.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 70일 기념 오찬 후 호텔 앞에서 총격 받아 부상
6. 1983년 대선 출마위해 망명지에서 귀국하던 필리핀 베니그노 아키노, 공항에서 피격돼 사망
7. 1984년 인도 인디라 간디 총리 경호원에 의해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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