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실패를 더 이상 용납지 않은 민심(民心)

이번 5.31지방선거에서 국민은 노무현정권의 무능과 독선을 가차 없이 응징했다. 한마디로 열린우리당에게 더 이상 국가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얘기다. 또한 여당의 실정이 빌미가 되어 반사이익으로 다시금 부활한 한나라당,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그 대안일까? 5.31지방선거 결과의 가장 큰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


비틀거리는 여당

17대 총선에서 단독 과반수의석을 차지한 후 기세등등하게 장기집권을 부르짖던 열린우리당, 인간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불과 2년만에 당의존립여부조차 불투명한 정당으로 바뀌고 말았다. 집권여당이자 제1당이 이처럼 짧은 기간에 큰 정치적 변란을 겪지 않고 오합지졸이 되어버린 경우는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왜 열린우리당의 눈에는 실업에 고통받고 불경기에 허덕이는 국민들이 보이지 않았을까. 국민들은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집권당의 오만과 독선이라 답했다. 민심은 결국 현 정권에 등을 돌렸다. 그것도 아주 가혹할 정도로 국민의 냉정함과 엄정함을 확인할 수 있었던 선거였다. 여당 관계자들조차도 국민의 표심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지만 이정도 까지 철저히 외면당하리라고는 상상치 못했었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동영의장은 선거참패에 책임을 지겠다며 물러났고 그 후임으로 당내 재야파 수장인 김근태 의원이 당의장을 맡으면서 열린우리당은 비상대책위까지 가동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동영 계보가 대거 포진해 있어 김근태 당의장이 당을 추스르기에 아직은 버겁기만 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전인 2월26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이번 선거는 형식적 논리적으로는 중간평가이지만 제대로 된 업적 평가가 아니라 이미지 평가일 수밖에 없다”고 미리 자신의 책임에 대해 회피성 발언을 드러낸바있다. 집권여당이 선거사상 최대의 궤멸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민심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는 상투적 언급과 함께 열린당 더러“멀리 보고 준비하며 인내할 줄 아는 지혜와 자세가 필요한 때”라고 한 것을 보면 5.31지방선거와 자기는 무관하다는 뜻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이것은 무능과 독선 보다 더 큰 잘못이다. 사실 이 정도까지의 선거참패는 바로 노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탄핵수준이기에 남은 임기에 심각한 레임덕을 초래할 수 있다. 아무튼 국민은 엄정한 심판을 내렸고 그 결과 집권여당은 철퇴를 맞았다.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난 국민의 열망이 무엇인지 직시해 환골탈태로서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선택은 왜 한나라당일까?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54%의 정당 득표율을 얻었다. 열린우리당이 얻은 21%보다 두 배가 훨씬 넘는 득표율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거결과를 만든 원인을 묻는 여론조사에서는‘한나라당을 신뢰해서’라는 응답은 단 9.5%뿐이었다. 때문에 득표율 대부분은 국정운영의 실패 등 현정권의 무능에 따른 반사이익과 그에 대한 심판일 뿐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괄목해졌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선거결과를 놓고 자당이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럼 왜 유권자들은 집권당을 외면했을까? 가장 큰 이유로는 경제정책실패를 꼽을 수 있다. 서민들의 일터는 줄어가는데, 유가는 치솟고, 손님을 기다리는 동네가게와 식당, 택시기사들은 아우성치는데, 그로인해 체감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안보이고 점점 침체 되가는데, 노무현 정부는 모든 경제지표가 파란색이라며 안심하라니, 참다못한 국민들은 경제 불감증에 걸린 현 정권에 철퇴를 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나라당은 무엇을 두려워해야할 것인가? 이 정권이 부동산정책과 교육정책, 국민의 복지정책을 소리 칠 때 한나라당은 어디에 있었는가. 또한 이정권의 대북정책이 북핵(北核)에 막혀 국민들이 낸 피 같은 세금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북에 쏟아 붓고 납득할만한 성과 없이 곤두박질 칠 때 한나라당은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북(北)에 가면 진보요 안가면 수구라는 유행에 밀려 부화뇌동하지 않았는가. 또한 이 정권이 자당(自黨)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해당언론에 목을 죄고 사상 유래 없는‘신문법‘을 만들때 그때 한나라당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말이다. 한나라당이 이런 질문에 주저 없이“나는 그때 거기서 이렇게 했었다”라고 국민에게 확실히 납득이가도록 답할 수 있다면 이번 선거가 진정한 승리요, 그러지 않고서는 잠깐 동안 맛본 미래를 보장 못하는 승리일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이번선거에서 단체장 및 이들을 견제할 지방의회까지 거의 모두를 차지하다시피 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언제든 한나라당 역시도 이번과 같은 실패의 결론이 예비(豫備)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만약 이번선거출마자들을 총망라하여 당적만 바꿔놓으면 과연 정 반대의 선거 결과가 나타났을까. 때문에 한나라당은 공(功)없이 거둔 승리 이후를 진정 두려워해야 할 때이다. 열린우리당이 싫어서가아니라 한나라당이 좋아서 표를 던져주는 적극지지층을 확보해야한다는 얘기다. 그러기위해선 열린우리당이 밟은 전철을 타산지석으로 삼고 국민 앞에 변화된 모습으로 다가서야 할 것이다. 어쩌면 5.31지방선거의 결과로 국민통합과 경제 활성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이룰 새로운 정치세력이 출현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또 여당의 참패가 예상보다 큼으로써 그러한 정치세력이 나올 수 있는 대중적 정치기반은 더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당공천제 이대로 좋은가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의 참패는 자업자득으로 보인다. 애초에 열린우리당이 개혁당론으로 제기했던 기초단체장까지 정당공천베제를 관철시켰더라면 이런 망신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대통령탄핵열풍’덕분에 극적으로 과반수의석을 확보하는데 성공했었다. 그러나 그 후 여당으로서 국민들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국가보안법, 언론 관계법등 4대 개혁입법추진으로 소란만 떨었지, 민생의 안위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게다가 국회구성 후 1년간 활동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이렇다 할 성과 없이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배제는커녕 국회의원 권한강화를 위해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제로 개악(改惡)해 버렸다. 그것은 결국 자충수를 둔 꼴이 되 버렸고 그 결과 이번선거는 ‘노무현정권 심판론’이 대세를 이룬 ,소위 ‘묻지마선거’가 돼 버렸던 것이다. 이번선거에 처음 도입된 구체적인 참 선거공약제도인‘매니페스토’도 정책선거의 한 획은 그었지만 생각만큼 큰 효과는 없었다. 그 이유는 후보개인의 면면과 지방자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공약들을 꼼꼼하게 살펴보기보다는 현 정권에 대해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반대급부적으로 야당출마자에게 너도나도 표를 몰아 준 것이다. 거기에 생명까지 위태로웠던 야당대표의 테러사건까지 겹쳐 표심은 인물이 아닌 정당으로 바뀐 것이다. 이로 인해 앞으로 4년간의 지방자치제는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우선 국회의원들은 자치단체장이나 의원들 위에서 이권개입 등 제왕적권한을 남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현재의 정당공천제가 갖는 허(虛)인 것이다.

이것이 계속 유지되는 한, 자치단체장이나 의회의원들은 다음선거에서 당의 공천을 받기위해 어쩔 수 없이 국회의원들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 폐해는 지방자치라는 본연의 생활 밀착형으로 가야할 지방정치가 정당 또는 중앙정치밀착형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정당공천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품관련에 따른 부정부패의 우려도 무시할 수 없긴 마찬가지다. 지난 4년간 통계를 보면 자치단체장중 무려 31.5%가 갖가지 비리에 얽혀 사법처리 됐거나 처리중이다. 따라서 여당이던 야당이던 이번 선거결과와 관계없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바로 기초자치단체에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법안제출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당보다는 인물 됨됨이에, 또 인물이 내놓은 매니페스토에 무게를 실어 표는 얻는 진정한 인물중심의 선거풍토가 정립돼야 한다. 적어도 내고장의 살림을 책임질 정체가 당이 아닌 인물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지방자치의 본질이 아니던가. 이제 국민의 눈과 귀는 냉철하다. 앞으로 정당이던 단체장이던, 민생의 안위를 책임지고 향상시키지 못하는 경제정책으로는 더 이상 국민의 심판을 피해갈수 없음을 정치인들은 새로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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