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은 최소한, 성숙은 최대한

한나라당은 7월 11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제 8차 전당대회를 열어 대표최고위원과 최고위원을 선출했다. 이번 대회는 전국의 당원·대의원 등 9,000여명이 참석한 큰 자리였다. 내년 대선을 포함한 향후 2년간 당운영을 책임질 대표로 강재섭 대표 최고위원이 당선되었고, 최고위원으로는 이재오 위원, 강창희 위원, 전여옥 위원, 정형근 위원이 각각 최고위원의 자리를 차지했다. 각종 구태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었다는 지적과 5·31지방선거의 압승을 거둔 한나라당의 자축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이번 전당대회. 과연 대선을 향한 한 발짝 진보였을까.


축제의 한마당, 한나라당 전당대회

▲ 제 8차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강재섭 대표 최고 위원
축제라고 했다. 이번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이례적으로 당원과 대의원들의 참석이 그 어느 전당대회보다 많았고, 5·31지방선거의 승리로 전당대회는 시종 축제의 의미를 다지는 분위기였다. 전당대회는 때마침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6일째를 맞은 시국이 불안정한 상황인데다가 그 중차대한 사건에 정부는 변변한 대응이 없이 보내고 있던 시기였다. 이에 전당대회 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허태열 대의원의 사태보고문에는 노무현 정권의 경제 불안, 세금 고통에 하나 더, 안보 불안을 보탤 수 있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비리와 추태를 의식해서인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당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당 홈페이지를 통해 전 과정이 생중계 되었던 이번 전당대회는 규모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나 확실히 축제를 의도한 것이었으나 실제로는‘그들만의 축제’였다. 8명의 전당대회 후보자 모두 박근혜 전 대표와의 친분을 강조했고, 이명박 전 시장과 손학규 전 지사와의 유대관계도 부각시켰다. 그들 모두는 자신을 희생하고 오로지 대선 후보의 안위를 보장했고, 차기 대통령 후보를 잘 뽑고,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것이 자기네들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차기 대통령을 위한 희생만 있고, 국민을 위한 희생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당을 위한 정치만 있을 뿐 국민을 위한 정치는 없었다.

민심은 조금 부족했을지라도

한나라당의 새 대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강재섭 대표는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계시한 각 후보들의 투표 전 자신이 쓴 글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한나라당의 운명을 위해 대권 도전을 포기하고 당 대표로 출마한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민자당 대변인과 총재 비서실장, 신한국당 원내총무와 이회창 대통령 후보 정치 특보 등을 거쳐 한나라당 부총재와 원내대표를 지내는 등 대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요당직을 섭렵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수도권 등 타 지역에서는 지지기반이 약하고 인지도도 낮다는 평을 받았으나 이번 대표경선 승리를 기반으로 여론을 뒤집을 전망이다. 강 대표는 당선 소감에서 영남·호남의 다리를 튼튼히 하고, 충청·강원의 허리를 강하게 하고, 대한민국의 심장인 서울·경기·인천에 눈높이를 맞추어서 반드시 정권을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강 대표의 예측대로 전당대회 여론조사의 결과에서는 이재오 의원에게 뒤졌다. 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의 표심으로 강 대표는 이번 경선에서 승리했다. 강 대표는 이날 당선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전당대회 열기를 모아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는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사학법 재개정 문제와 관련,“민생 문제는 연계하지 않고 철저히 국민 편의, 복지를 위해 신속히 대처하되, 사학법에 대해서도 줄기차게 개정노력을 할 것”이라며,“신문법 등 위헌소지가 있는 법안도 새로 법안을 내겠다”고 덧붙였다.


충격인가, 후유증인가

이번 전당대회의 여론조사 결과는 이재오 최고위원이 가장 앞섰다. 대권 출마자의 대리전이라고도 불렸던 전당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의 표심이 이 최고위원에게는 불어오지 못했다. 국민의 신임이 될 지도 모르는 여론조사의 결과를 가지고 이 최고위원이 내적위안을 삼기에는 부족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다음날인 12일 첫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면서 대표경선의 후유증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이 최고위원은 경선 직후 며칠 조용히 지내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전남 순천의 사찰에 칩거했다. 이때 이 최고위원은 측근을 통해“대표 경선을 치르면서 특히‘색깔론’공세에 깊은 상처를 받아 치유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한나라당이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당을 위해 할 수 있는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또한 전당대회장에서 이 위원이 연설을 할 때 박근혜 전 대표가 자리를 이동한 것과 관련“사실상 연설을 방해한 행위로 밖에 안 보인다”며 배신행위로 치부하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단지 자리를 옮긴 것뿐이지만 이것조차 선거에 영향력을 미친다고 이재오 최고위원 본인과 당내 의원들은 물론 언론조차도 그렇게 평가했다. 다시 말해서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 하나하나가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파악하는 이재오 최고위원은 선거의 패인을 특정 후보를 감싼 당내의 경선 분위기에서 찾고 있었다. 한편 강재섭 대표는 전남 순천의 선암사를 방문해 선거 이후 칩거에 들어간 이재오 최고위원을 찾아가 당무복귀를 설득하기도 했다.

피해자만 있는‘대리전’구도 양상

이번 대표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지도부간 감정의 앙금이 이재오 최고위원의 행동에서 여과 없이 노출되면서 논란에 휩싸였던 당내의 대리전과 줄세우기 여론이 그 실태를 드러내는 듯하다. 강재섭 대표 최고위원이 지난 달 9일“나는 이재오가 아닌 이명박 시장과 싸우는 것 같다”며 대리전 논란을 촉발했다. 이는 경쟁 후보였던 이재오 최고위원과 이명박 전 서울시장측의 연계에 맞선 발언이었고, 이는 박근혜 전 대표측이 강재섭 대표 지원에 나서서 이번 경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어느 쪽이 먼저 대리전을 시작했는지 서로의 말로는 경계를 지을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의원들 스스로가 후보 연설 당시 색깔론, 대리전을 운운하며 이번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과거로의 퇴보로 비춰지기도 했다. 경선 전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계시한 인터뷰에서 이재오 최고위원의 말처럼 한나라당은 5·31지방선거로 인해 자만하고 오만했던 것일까. 지금의 한나라당 여세는 현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반사이익일 뿐이라는 한나라당 내의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이번 전당대회에서 보여준 한나라당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과거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까지 나서서 이번 전당대회의 대리전 관련 당의 과오를 걱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정치에도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는 것일까. 이번 전당대회가 사실상‘박근혜-이명박’대리전 구도로 치러지면서 두 대선주자 진영이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는 분석과 함께 차후에 있을 한나라당 내의 대선 경선까지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다. 이미 최고위원에 당선된 강창희·전여옥 위원도‘친박(박근혜 쪽)’으로 분류되고, 당연직 최고위원인 원내대표 경선에서 당선된 김형오 의원도‘친박’세력에 가깝다. 또한 이재오 최고위원은‘친MB(이명박 쪽)’로 분류되어 당내의 파벌이나 편 가르기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대선까지 남은 시간동안 한나라당의 나아가야 할 방향과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도 적지 않은 진통이 따를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재오 최고위원의 돌출 행동이후에 당의 내분 양상이 예상외로 심각하다는 주장도 야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나라당의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강재섭 대표는 당을 수습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기자간담회를 통해“자꾸 갈등을 부추기려 하지 말라. 앞으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든, 박근혜 전 대표든 손학규 전 경기지사든 누구든 공정히 링 위에 올라와 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특정주자를 편들어 줄 아무런 입장에 있지 않으며 공정히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나라당의 내분이 잠잠해지더라도 소위 말하는‘앙금’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대부분이다. 박 전 대표와 가까운 인물들이 강 후보를 지원했고 결과적으로 경선 승리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의 향후 행보는 한결 가벼울 것으로 보인다.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당내 대선후보 선출 국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고도 평가된다. 하지만 이명박 전 시장 진영에서 현재의 흐름대로 상황이 전개될 경우 대선 후보 당내 경선에서 어려운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파벌싸움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곳이 또 다른 진영의 중도 소장파 의원들이다. 내부 경선까지 거쳐 권영세 의원을 단일 후보로 내세웠지만 전체 6위로 최고위원 입성에 실패했다. 한나라당 미래모임 소속 의원들은 전당대회 이후 이러한 결과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식지 않은 인기‘색깔 논쟁’

이번 전당대회에서 대리전만큼이나 자주 등장했던 단어는 바로‘색깔론’이다. 대부분의 후보들은‘친북 좌파세력을 용서하지 말고 결단코 처단해야 한다’는 식의 색깔론을 운운했고, 당내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번 전당대회에 색깔론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전당대회의 결과는 보수 성향의 지도부가 구성됨에 따라 굳이 따지자면 한나라당은 이제 오른쪽으로 치우친 색깔을 가지게 됐다. 그간 당내의 혁신과 구성 의원들의 노력으로 인해 본래 한나라당이 가졌던 이미지는 한껏 중도 쪽으로 옮겨졌었다. 기껏 다잡은 분위기를 깨는 듯 이번 전당대회의 결과는 한나라당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심리를 더욱 떨어뜨린 것일 수 있다. 김성희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은“한나라당 최고 지도부에서 제복 입은 과거 정치를 떠올리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재오 최고위원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열린우리당이 과거 청산을 요구했을 때 한나라당은 왜 과거만 캐고 미래를 보지 못하느냐고 했는데 그런 한나라당이 색깔 공세를 하고 있으니 이런 정체성으로 갖고 어떻게 집권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길을 걸어온 동지로써 강 대표의 이 최고위원에 대한 사상범 운운에 강한 서운함을 드러냈다. 한나라당을 둘러싼 이러한 정체성 시비나 색깔 논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도로 민정당’,‘영남본색’,‘보수일색 수구정당’이라는 수식어들로 현재 한나라당의 이미지는 흔들리고 있다. 12일 정책위 의장에 당선된 전재희 의원은“대리전 논란을 일으킨 전당대회 이후 분열이 치유되지 못하고 지속되고, 집안싸움을 하는 순간 우리가 갈 길은 없다”고 경고했다. 한나라당내의 중용 의사를 밝힌 소장파 의원들 쪽에서는 사태의 핵심 원인이 강대표의 ‘색깔론’ 공세였던 만큼 강대표의 유감표명 같은 분명한 입장개진이 없을 경우 당직을 맡지 않는 쪽으로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전당대회 이후 한나라당은 당 안팎으로 어지러운 상황을 맞이했지만‘어느 전당대회든지 다소의 후유증은 있기 마련’이라는 강재섭 대표의 표현처럼 지금의 이 위기가 이 순간 지나가는 태풍이 되어야 할 것이다. 태풍의 피해는 속히 복구하여 다시는 같은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처럼 한나라당의 자체적인 고뇌와 반성이 충분히 이루어 져야한다.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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