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그들의 음악이 울리면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지하철역에서 안데스 음악을 연주하는 페루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너무도 어여쁜 모습의 여인이 즐겁게 흥을 돋우고 있다. 그들은 친구도 연인도 아닌 부부였다. 지난해 여름 인간극장이라는 휴먼다큐에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적 있던 그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여전히 안데스 음악을 연주하는 라파엘과 그의 음악을 전적으로 후원해주는 여종숙으로 살아가고 있다. 부부라는 운명으로 묶인 채. 그들의 사랑이 궁금하다. 그들의 인생이 궁금했다.
베사메무쵸‘열정적으로 키스해 줘’

잘나가는 광고 회사 커리어우먼이었던 그녀, 현재는 회사를 그만두고 라파엘의 공연을 관리하고 녹음 작업 등을 따라다니며 그의 음악을 전적으로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페루 청년이었던 라파엘은 여종숙씨로 인하여 한국에서 음악을 하고 여종숙씨는 그의 음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함께 하기 위해 회사도 그만두었다. 너무 무모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들을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나의 생각은 오만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 충무로의 지하철 역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의자에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97년 공연 때문에 한국을 찾았던 라파엘 몰리나Rafael Molina, 2003년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그 때 여종숙씨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10월의 어느 날 대림역에서 있었던 안데스 음악을 하는 다른 팀의 공연을 보기 위하여 그들은 각기 그 곳을 찾았다. 첫 눈에 반한 것은 아니었단다. 그러나 다음날 라파엘의 공연장에서 해후한 그들. 라파엘은 그 순간부터 가슴이 뛰었다고 고백한다. 여종숙씨 역시 그의 공연을 인상 깊게 보면서 그의 팬이 되었다. 그 날의 공연에서 라파엘은‘베사메무쵸’를 불렀다. 평소 여종숙씨가 너무도 좋아하던 그 노래를 불렀단다. 당시에 그런 노래를 하는 팀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라파엘이 여종숙씨의 마음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공연장에서의 모습은 화려하잖아요. 그런데 공연이 끝난 뒤 뒷모습이 애틋하고 안쓰럽고 그러더라구요.”애틋함과 안쓰러움, 그리고 안데스 음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그들 사랑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랑은 라파엘의 고백으로 시작되었다.“당신 좋아요.”라는 라파엘의 고백으로 시작된 그들의 사랑. 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 음악 하는 사람과의 사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친구로만 남기를 바랬다던 그녀. 그러나 뒤돌아가는 그의 축쳐진 어깨가 또 다시 안쓰러웠다. 그래서 생각해보겠다는 말로 대답했던 그녀, 그리고 그들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3년의 연애 끝에 그들은 서로의 반려자가 되었다.
라파엘과 여종숙의 2세에 대하여

그들의 일상을 담았던 다큐에서 그들은‘아기’문제로 작은 다툼을 일으켰던 사실을 떠올렸다. 당시 아이를 갖자고 조르던 라파엘과 한사코 안 된다고 말하던 여종숙씨의 모습이 기억났다.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하여 다시 한 번 물었다. 반갑게도 변화가 있었다. 여종숙씨는 아직 망설이고 있기는 하나 내후년 중에는 그들의 2세를 가질 계획이란다. 라파엘은 이제 한국에서 아기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다고 여종숙씨가 전한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그들이 꼭 그들의 2세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넘치는 사랑과 애틋한 눈빛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생명이 보고 싶다.
얼마 전 그들은 3개월 동안 함께 페루에 다녀왔다. 라파엘의 부모와 형제들이 살고 있는 나라, 페루. 그 곳에서 그들은 서로를 조금 더 알고 더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외국인과의 결혼이 관심을 살 만한 일은 아니죠

안데스 음악, 그것은 그들을 소통시키는 도구
라파엘이 푹 빠져 있는 그의 음악은, 그리고 여종숙씨가 매료되어 버린 그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가 하는 음악은 라틴 음악이다. 그 중에서도 안데스 음악과 중미음악이라고 한다. 안데스 음악에 대한 설명을 하며 그는‘엘 콘도르 파사’를 이야기한다. 이 음악은 그의 조국 페루의 곡이며 안데스 음악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가장 유명한 곳이란다. 그의 부모, 그의 땅은 바로 안데스 음악이 피고 자란 곳이란다. 그 정서가 자연스럽게 습득되어 있는 음악을 그와 그녀는 너무도 사랑하고 있다. 그의 팬 카페에는 7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이 두 사람을 걱정해주고 배려해 주는 것을 느낄 때 행복이라는 단어를 실감한다고 이야기한다.“사람 부자라는 말씀을 어느 분이 하시더라구요. 세상에 우리를 걱정해주는 이들이 우리자신 말고도 이렇게 많다는 걸 알았을 때 가장 행복했고, 이것이 미래 완료형이길 바라고 있어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우리의 사는 이야기를 읽고 더함도 덜함도 없이 있는 그대로만큼만 보여 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주변의 나와 다른 현상이나 대상들을 이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다양한 사회를 뒷받침하고 있는 요소들로 인식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라파엘의 1집‘디페렌시아-차이 혹 다름’을 발표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다양함을 지속적으로 느끼다 보면 전혀 다른 세계로 와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2집 제목은‘Salida-비상구’에요. 음반 작업은 단순히 곡을 정하고 녹음하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이것은 라파엘과 나 자신을 여러분에게 소통시키는 큰 도구죠.”
그녀의 마지막 이야기에서‘소통’이라는 단어에 자꾸만 마음이 간다. 소통은 단순히 말로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말이 서툰 남편을 위해 스페인어를 배워 대화를 하는 아내. 공연 사회를 보며 함께 시간을 공유하며 행복해하는 부부의 모습. 아내가 보이지 않으면 우울하다가도 멀리서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입가 가득 웃음이 번지는 남편.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사랑’이라는 것에 대하여 정의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그 하나의 형태를 마치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그들을 보면서 그들의 국적을 이야기하는 대신 그들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들이 빠져 있는 음악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바래본다.NP
임보연 기자
limby@inewspeopl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