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한 편으로 밀리지 말아야 할 것’

우리들만의 건축양식 처마: 작은 생명까지 수용하는 따뜻함
우리의 건축물에는 서양건축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가 있다. 바로 처마이다. 처마는 건물의 기둥이나 벽체의 바깥으로 내민 지붕을 일컫는다. 이는 여름철 높게 뜬 해가 방과 마루를 길게 비추는 것을 막아주어 실내를 시원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겨울에는 이와 반대로 실내를 따뜻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비가 내리는 날이면 효과적으로 막아주기도 한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마저 피하는 공간인 처마.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뛰어들던 공간도 처마 밑이었으며 강남 갔던 제비가 따뜻한 봄이 되면 돌아오는 곳도 처마였으리라. 처마를 찾아들었던 제비는 그 안에 제 집을 짓는다. 사람들은 제 집을 찾아 보금자리를 마련한 새들을 쫓지 않고 더불어 살았다. 오히려 따뜻한 남쪽으로 떠나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오는 3월을 기다리기까지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연관이 그대로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양적인 자연관, 자연에 거역하지 않고 순응하며 그들을 닮아가고 어느 순간 동화되어가는 그 과정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건축 양식이 점점 서양의 것을 닮아가면서 처마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실이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한다.
恨의 정서, 살풀이의 마주함
내가 한국 사람임을 강조하는 일이 글로벌이니 세계화니 하는 단어에 역행하는 촌스러운 행위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으나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거의 무지의 상태로 전통이라는 것을 마주하였음에도 가슴 속에 무언가가 뜨거움을 토하게 되는 것. 살풀이라는 춤사위를 눈앞에 마주하던 순간 역시 그러했다. 고작 삼십년도 못 채운 나이에 가슴 속에 무슨 한이 있을까. 그런 기자가 살풀이라는 춤사위를 마주했을 때 느끼던 뜨거움이란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작년 여름 한혜경 교수의 공연을 보기 위하여 찾았던 공연장. 그녀의 무대는 보는 이의 숨을 턱 멈추게 하는 힘이 있었다. 하얀 한복을 입은 그녀가 어두운 무대 위로 등장했을 때, 이미 굉장한 것을 보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살풀이’라는 이름의 춤사위는 조용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공기를 파괴해나가고 있었다. 마치 한을 털어버리고 날아오르려는 듯 그녀의 움직임은 서글프고 애잔했으며 한편으로는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단호함 같은 것을 품고 있었다.
막이 열리고 불 꺼진 무대 위에 실핏줄 같은 여린 조명이 한줄기 비쳤다. 그리고 하얀 한복을 입은 춤꾼이 등장했다. 흑과 백의 명확한 대비, 그리고 살풀이춤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하얀 소매 끝 맵시 있는 손놀림과 살짝 들어올린 치마 끝에 비치는 버선코가 아련했다. 맺힌 것을 풀어내기 위함에도 여전히 속을 감추고, 여전히 조금씩 참으면서 보는 이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다. 그 순간 똑바로 응시하지 않으면 놓쳐버릴까 하여 자세도 꼿꼿이 하고 있었다. 어느새 그 움직임에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고 춤의 공기에 휩싸였다. 그런 멋진 기분을 선사하는 춤꾼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라의 명맥을 잇다: 옥새

삼국유사에서 기록하고 있는바 우리 최초의 고대국가는 하늘의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받아 국가를 열었다고 전해진다. 옥새는 한반도에 고대국가가 탄생하고 인(印)이라는 용어가 쓰이면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상징물인 것이다. 조선시대 나라 안으로는 왕권의 상징이자, 나라 밖으로는 조선이라는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물이었던 옥새. 한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함께 하던 그 존재의 혼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나라의 명맥을 공고히 하는 것은 아닐까?
옥새전각전수자인 민홍규는 전통의 모습을 이어가는 장인의 그림자가 깃들어있다.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응축과 한 우물을 파는 고집스러움이 필요하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에 어지러움이 느껴지기까지 한 요즘이기에 그의 모습에 더욱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가 만들고 있는 옥새는 단순히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들어있는 혼을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그리고 국가적 자존심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리라.NP
임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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