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사태로 본 풀리지 않는‘문명의 공존’
레바논이 또 한 번 불탔다. “우리는 꿈을 가졌지만 그 꿈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우리가 이뤄 놓은 모든 것이 파괴됐다.” 한 레바논인의 슬픔과 분노에 찬 생생한 육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은 중동사태의 암울한 단면을 보는듯해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해 이른바 ‘백향목 혁명’으로 새로운 국가 재건의 꿈에 부풀었던 레바논이 다시 30여 년의 내전과 외세개입이라는 슬픈 역사로 되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레바논사태가 악화된 원인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공격하는 명분으로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에 대한 자기 방어와 헤즈볼라에 납치된 2명의 자국 병사 구출을 내세웠었다. 반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이후 오랫동안 분쟁지역이 된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아간 사람들을 빼내기 위해 간접적인 방식의 협상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처럼 급속히 폭력적으로 악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의 행위는 종종 복수심을 동반한다. 시온주의는 복수심이 가득하고 항상 그래왔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무장해제 하려는 결의안 1559호가 실행되기를 원할 뿐 아니라, 1982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레바논에 미국의 조종을 받는 정권을 세우길 원하고 있다. 헤즈볼라의 경우는 이스라엘과 포로 교환을 하고 나아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을 저지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이번 일을 시작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무엇보다 원하는 것은 무력을 유지하는 것이며, 레바논 최대 종파인 시아파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강점도 있다. 이번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했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놀라 즉흥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이스라엘이 레바논 포로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협상을 위해 이스라엘 병사들을 납치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해 왔다. 이스라엘도 2000년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남부 일부 지역을 여전히 점령해 왔으며, 육.해.공 전 영역에 걸쳐 레바논의 주권을 침범해 왔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에 설치한 40만 개에 달하는 지뢰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레바논에 넘겨주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해 왔다. 지금도 레바논어린이들이 이 지역에서 지뢰를 밟아 사망하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로빈 라이트’가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이번 위기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1559호를 이행하려는 국제적.지역적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헤즈볼라와 국제사회의 중론이다. 이번 공격의 출발점은 2005년 2월 암살당한 라피크 알-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가 2004년에 진행했던 일과 연관돼 있다. 그는 미국 및 프랑스와 공조해 1599호 결의안을 관철시켰다. 이 결의안은 레바논 정부로 하여금 헤즈볼라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것이 주요 사안인데 이스라엘과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등 아랍 정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결의안이 이행되는 것을 손 놓고 보고만 있을 헤즈볼라가 아니다. 헤즈볼라는 이를 위해 무기를 결코 버리지 않는 것이다.
천의 얼굴, 미국의 대 중동정책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궤멸할 가능성
결론부터 애기하자면 헤즈볼라가 궤멸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헤즈볼라의 군사력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잘 훈련받은 전사와 화력을 보유해 정규군 이상의 전투력을 갖추고 있음이 이번 전쟁으로 확인됐음이 분명하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내 헤즈볼라 거점에 공중폭격을 퍼부어 막대한 타격을 입혔으나 정치.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헤즈볼라의 정신력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스라엘이 국내외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레바논 민간인과 기간시설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데는 레바논 정부가 나서서 헤즈볼라에 재갈을 물리도록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전술은 먹혀들지 않았다. 헤즈볼라는 온건 이슬람 시아파 정치세력과 연합전선을 구축, 레바논 내 정치ㆍ사회에 든든한 지지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사태를 놓고 볼 때 이스라엘과 미국은 자신들이 감당해야할 정치적 비용에 타격을 입은 것만은 확실하다. 때문에 휴전이후 선택되어질 레바논과의 대결국면은 중동에 새로운 정치적 이슈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1982년처럼 레바논을 전면 침공했다면 레바논민중과 국제사회는 들고 일어나 이스라엘은 확실한 ‘침략자’로 낙인을 찍혔을 것이다. 이렇게 됐다면 패배자는 레바논과 중동 정권들이겠으나 승리자는 이스라엘이 아닌 무기 판매상들이 아니겠는가. 1982년 레바논 침공은 이스라엘 내에서도 가장 호응을 얻지 못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이 옵션을 이스라엘이 선뜻 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민간인 희생이 많았던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은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비난에 부닥쳤다. 강공이냐 휴전이냐를 놓고 골머리를 썩이던 이스라엘은 일단 헤즈볼라와 휴전을 택했다. 헤즈볼라로서는 휴전이 곧 전쟁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고 보면 이에 힘입어 더욱 강력한 군사조직으로 거듭날 것이다.
레바논사태의 해법은 없을까

미국의 패권주의에 침묵하는 국제사회
국제사회'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정부의 통제를 받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 왔다. 그들의 침묵은 레바논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지난 2년간 국제사회는 레바논과 그 주민들의 안위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말들이 거짓임을 이제는 사람들이 알게 됐다. 또한 국제사회의 침묵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목숨이 아랍 사람들의 목숨보다 가치가 있다는 인종차별적인 동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아랍인들의 생명이 이 지역에 사는 제국의 후손들의 목숨보다 귀중하게 취급된 적은 결코 없었다.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가 대등한 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려고 선전하고 있지만,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번 분쟁에서 양측은 결코 대등하지 않다.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도 우세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무고한 시민들을 대량 살상했다는점에서도 그렇다. 휴전은 됐지만 전쟁은 끝났게 아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패권이 중동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가 벌이고 있는 분쟁은 계속될 것이며, 이 악연이 장기화되면 시리아, 이란, 그리고 미국이 국지적인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망각한 역사적 교훈

미국의 오만한 착각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합법적인 정치단체로 활동하고 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테러집단으로 지목하고 있다 우린 역사에서 우리의 독립을 위해 죽음을 불사른 많은 이들을 가리켜 독립투사라 부른다. 헌데 미국과 이스라엘 식으로 표현한다면 우린 테러리스트 국가였다는 얘기가 된다. 과연 그 논리에 수긍할 우리가 어디 있을까. 그렇다면 레바논이 세계를 향해서 내던진 한마디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독립을 위해서 싸우는 우리를 테러리스트라고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테러리스트가 되겠다.” 중동의 평화를 빙자한 미국의 오만한 정치적 계산, 그것을 등에 업고 어린생명들까지 무참히 죽음으로 모는 이스라엘, 이들이 바라는 평화는 진정 무엇인지 의심스럽다.NP
| ‘헤즈볼라’의 정체 ‘신(神)의 당’이라는 뜻의 헤즈볼라는 1980년대 초 레바논의 혼란기에 결성돼 역내 이슬람 과격운동의 대표주자로 부상했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후 일단의 이슬람 성직자들이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서 저항운동을 전개할 투쟁조직의 결성을 구상했다. 특히 1979년 이슬람 혁명을 통해 집권한 이란 시아파는 레바논 과격 이슬람 시아파 단체‘이슬람 아말’과 이라크의 시아파‘다와당(黨)’간 연계를 모색하고 배후 지원했다. 그 결과 이슬람 아말과 다와당 레바논 지부가 연합해 헤즈볼라를 결성했다. -헤즈볼라의 투쟁목표 다(多)종교 국가인 레바논에 이란식 시아파 이슬람공화국 건설과 중동지역에서 비 이슬람 서구세력을 추방하는 것이다. 특히 레바논을 이스라엘 점령상황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투쟁의 1차 목표로 내세웠다. 따라서 이들의 직접적인 공격 목표는 이스라엘군과 남부 레바논에 주둔하는 친이스라엘 민병대인 남부레바논군(SLA) 그리고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과 서방국가들이다. -밝혀진 테러활동 헤즈볼라는 이란으로부터 활동자금을 지원받고 있으며 시리아로부터 무기를 지원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과 골란고원 반환문제로 대치하고 있는 시리아도 헤즈볼라의 게릴라 공격을 적극 지원해왔다. 헤즈볼라는 1980년대에는 주로 항공기 납치로 악명을 떨쳤지만 1990년대 들어와서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처럼 자살폭탄 공격을 테러수법으로 이용하고 있다. 헤즈볼라의 대표적 테러 공격으로는 1984년 12월 쿠웨이트 항공기 납치, 1985년 아테네 행 TWA 항공기 납치, 1987년 프랑스 항공기 납치, 1994년 영국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차량 폭탄테러 등을 들 수 있다. 1983년 베이루트 주둔 미 해병대원 241명을 살해한 자살 폭탄테러도 헤즈볼라의 소행이다. -사회적 시각에서 보는 ‘헤즈볼라’ 헤즈볼라의 무장활동은 2000년 5월 이스라엘의 남부 레바논 철군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헤즈볼라는 이후 팔레스타인 대의명분을 포용하면서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를 지원하고 이스라엘의 파괴를 촉구하고 나섰다. 헤즈볼라는 지난 20여년간 게릴라 활동과 함께 의회 진출을 통한 정치활동, 적극적인 복지 프로그램을 통한 자선활동에 주력해왔으며 덕분에 최근 들어 시아파 사회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1992년 총선에서 헤즈볼라는 시아파 사회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의회에서 8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기독교 사회 등 헤즈볼라에 반대하는 세력은 이 단체가 국가 불안을 획책한다며 비난하고 있다. 미국은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했으며 레바논 정부는 국민적 저항운동단체로 선언했다. 미국은 레바논 정부에 대해 헤즈볼라의 무장해제요구와 레바논의 후견국인 시리아에 대해 지원중단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에밀 라후드 레바논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 수감자 교환석방에 합의함으로써 헤즈볼라가 게릴라 조직이 아닌 합법 저항운동 단체임을 인정한 셈이라고 지적했다.NP |
임석빈 편집주간
similan@inewspeople.co.kr
